인생을 낭비한 죄|이숙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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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살인누명을 쓰고 남「아메리카」 「프랑스」령 「기아나」의 <악마의 섬>에 종신형으로 수감되었던 「파피용」이 빛이 차단된 독방에서 굶주림에 지쳐 몽롱한 환상에 빠진다.
멀리 지평선에 제복을 갖춘 법관들이 늘어서 있다가 가까이 다가오는 「파피용」을 향해 『너, 인생을 낭비한 죄, 사형』하고 준엄하게 외친다.
어떤 초월자의 심판 같은 충격이 영화를 보던 내 가슴에 부딪쳐왔다.
모든 인류가 각자에게 주어진 삶을 마치고 신 앞에 나가 심판을 받는다면 그 척도는 인간사회에서 통용되던 도덕이나 윤리·법질서와는 차원이 다른 기준에 의해 심판이 내려질 것 같다. 그렇게 볼 때 인생을 낭비한 것은 역시 중죄에 속할지도 모른다.
단 한번의 생이 주어져서 세상에 나올 땐 누구에게나 이미 어떤 사명이 주어진 것이 아닐까. 들에 핀 이름 없는 풀 꽃도 사람의 마음에 기쁨을 주는데…
부귀에 묻혀 사치의 늪에 빠져있는 것이나 아닌지, 안정된 생활을 하면서 자신도 깨닫지 못하는 사이 안일하게 무위도식하지나 않았는지…. 한끼의 라면도 아껴가며 먹어야하는 저임금 근로자를 생각해보면 남편이나 부모의 덕으로 부를 누리며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안일 속에 빠진다는 것은 사회의 질서 차원에서라도 송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내 이웃 중에는 정말 무서울 정도로 열심히 사는 이들도 많이 있다.
연탄 한 장을 아껴가며 팔리지 않는 그림을 그리는 남편의 뒷바라지를 한다. 가난한 살림을 윤이 나도록 쓸고 닦는다. 새벽에 일어나 쌀을 씻으며 남편의 세계적인 성공을 염원하는 마음을 간절히 기구 한다. 남편이 먹을 밥에 그 주부는 소망을 같이 넣어 짓는 것이다. 그리고 틈틈이 나는 시간을 아껴가며 조그마한 그림을 수수한 정열로 그린다.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고 자기만의 기쁨을 위해….남편과 자식이 잘되기 위해서라면 내한 몸 부서진들 어떻겠냐는 헌신적인 주부도 있다.
뗘들썩하게 명성을 떨치는 여류들도 있다. 살림을 살며 내조도 하며 자기 일에 점진하며 얼마나 많은 각고를 치러야 했을까마는, 반면 보이지 않는 그늘에서 자기의 이장과 꿈도 포기하고 콩나물을 다듬고 한 푼이라도 절약해서 잘살아 보려고 애쓰는 어여쁜 현대의 주부들이 얼마나 많은가.
어떤 일본여행객이 한국인들의 열기에 찬 강한 생활력에 전율을 느꼈다고 쓴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이러한 한국주부들의 숨은 정성이 남편들을 활기차게 하고 국력을 신장하게 하는 밑거름이 되지 않았을까.
모든 남편들이 인생 낭비 죄를 짓지 않고 살아가는 그러한 아내들의 정성을 잊지 않고 마음에 새겨 두었다가 어느 날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라도 한 곡 불러주었으면….

<동양화가·홍익대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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