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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헌정의 조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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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국민모두가 대망 하던 개헌안이 공고되고 이제 이 달 하순쯤이면 국민투표가 실시되어 제5공화국의 민주헌정을 출범시킬 본격적인 정지작업이 개시될 예정이다.
국가의 기본질서인 헌법을 만들고 뜯어 고친지 이번으로 꼭 8번째, 이제야말로 중단과 단절 없는 안정된 헌정질서를 길이 유지해야겠다는 여망이 국민 모두에 사무쳐 있다.
가장 최근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건국 30여 년을 통해 평화적 정권교체가 한번도 성공한 적이 없고 그때마다 초헌법적인 비상상태가 헌정자체를 단절시키곤 했던 지난날의 파란 많은 헌정사를 돌아볼 때 국민의 이러한 염원은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닐 것이다.
평범하고 성실하게만 살려는 일반국민의 입장에서는 정치란 생업에 지장을 줄 정도의 극단적인 상충을 초래함이 없이 만사 순리대로 잘 풀리기만 하면 그만 이요 만족인 것이다.
격렬한 충돌과 극한투쟁·혼란·변칙적인 사태변화 등이 만성화 할 때 국민의 생업활동은 위축되고 국가의 존립자체가 위태로워질 것은 뻔한 이치다.
이로 인해 정치의 이상은 자연 이견의 극단화와 극한투쟁을 지양하고 대화를 통한 타협 모색을 제도화하려는 것으로 모아지는데, 그것이 다름 아닌 민주헌정이라 할 수 있다. 「민주」란 바로 양극의 격돌을 피하자는 자세와 기술이며, 「헌정」이란 그것을 법으로 규정해놓은 규범이요 약속인 까닭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과연「민주헌정」이란 약속의 지속적인 작동과 장기적인 안정을 보장하는가.
여기서 일차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헌법의 내용이 우선 좋아야하고 민주적이어야 하겠다는 점이다. 헌법상의 계약내용 자체가 어느 한 당사자에게만 압도적으로 유리하게 작성되었을 경우엔 아무리 대화와 타협을 권해도 별 소용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헌법의 내용 자체가 아무리 잘 짜여져 있어도 그것만으로는 헌정의 지속적인 안정이 길이 보장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지난날 우리정치사에 있었던 숱한 변칙적인 헌정중단은 반드시 헌법이 나빴다는 단 한가지 이유만으로 일어난 사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좋은 헌법을 토대로 성립한 민주헌정을 길이 유지하고 살찌우게 하려면 어떤 조건을 갖춰야만 할 것인가. 이것은 지난날의 우리 정치문화와 정당사 및 헌정사에 대한 뼈저린 통찰과 반성에 의해 그 해답이 구해져야 하리라고 본다. 그리고 이 조건의 만족할 만한 창출이 가능해야만 앞으로의 우리 민주헌정도 공고하게 뿌리를 내리고 토착화할 수 있으리라 믿어진다.
지난 3차례에 걸쳐 본란은 이미 이번의 개헌안이 현행유신헌법에 비해 국민 기본권 조항에 있어서나 권력구조 및 법원·국회조항 등에 있어 획기적으로 발전된 민주헌법 안임을 여러모로 분석·명시한 바 있다. 따라서 앞으로 생각할 문제는 정치문화와 정치형태의 차원에서, 그리고 정당정치와 정계편성의 측면에서 그런 훌륭한 헌법과 헌정질서를 어떻게 그르침이 없이 잘 구현하고 가동시키며 길이 정착시킬 것인가 하는 데로 집약되어야할 것이다.
서양의 헌정사를 두고 볼 때 안정된 민주헌정은 제당사자들이「중앙」으로 근접하여「전부」냐「무」냐 의 흑백논리대신 호양의 공존기술을 체질화했을 때 비로소 성립·발전했다. 반면 오늘의「니카라과」 등 중남미 제국을 돌아보면, 극단적인 변혁 논과 극단적인 권위주의가 촌보의 양보도 없이 격렬하게 상충하는 가운데 국민 파 국가가 하루도 쉴 날이 없이 시달리고 있음을 보게 된다.
한번 날이 새면 극렬 파의「데모와「테러」가 판을 치고, 또 한번 날이 새면 질서를 회복하기 위한 비상한 반작용이 방출되고 하여 이러한 악순환이 거듭되는 가운데 사회질서는 물론 국민경제가 극도로 위축당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정치사에 있어서도 4·19이래 자유와 질서, 민주와 안보, 변화와 안정이란 두 명제가「온건자유」대「온건보수」사이의 조화적이고 타협적인 교호작용으로 정착하지 못하고 자유주의와 권위주의 사이의 소모적인 극한대립으로 양극화된 탓으로 언해, 헌법이 아무리 좋았다 해도 헌정이 변칙적으로 중단되는 파국을 맛보곤 했던 것이다.
이점에서 전두환 대통령이 그 취임사에서 정치적 이견의 극단화가 중화될 것을 희망하고, 다시 개헌안 공고에 즈음한 담화문을 통해서는 극단적 자유주의와 극단적 권위주의의 폐단을 다같이 지적한 것은 정치적으로 매우 뜻깊은 일이었다고 생각된다.
두 번 다시 혼란과 극한대립 또는 헌정의 파국을 맛보지 않기 위해, 그리고 이번의 개헌 안이 담은 민주이념을 진이 정착시키기 위해, 앞으로의 우리 정계는 온건한 여와 온건한 야가 중앙 다수 세를 형성하는 정계구도를 이룩할 수 있었으면 한다.
다시 말해「계획성 있는 민주주의」라는 현대민주주의의 경향을 하나의 경계선이라 상정할 때, 이를 축으로 해서 그 양편에「온건보수」와「온건자유」가 비교적 근접한 위치에서 상호 대화할 수 있는 안정된 여야관계를 설정하면 좋겠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여야 관계 하에서도 권위주의 대 자유주의라는 극단적인 흑백의 대결이 지양되어 있기 때문에 여와 야의 정권교체가 국가기본노선의 현격한 변환을 수반하리란 공포심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여와 야의 중앙다수세로는 피차간의 정책적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주어진 한반도 상황의 냉엄한 안보조건에 대해「바이파티산」적으로 공감하는 것이 가능하고 여가 야의 의견을 관용 있게 경청하는 대신 야는「데스퍼리트」(desperate)한 자세를 취할 필요가 없이 점진적이고 온건한 노선을 따르게 되는 것이다.
혹자는 이러한 설「래디칼리즘」상태를 이상론이라 말할지 모르나 이러한 자세는 실은 이상론이 아니라 민주헌정 성립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이다.
민주적인 개헌안의 국민투표와 정치인구의 교체, 그리고 정당법·선거법의 개정과 정치풍토의 쇄신작업을 앞두고서 그러한 일련의 정치발전 계획에 합당한 우리 자신의 정치문화와 정치심리 및 정치형태의 합리화를 구하는 마음 간절하다. 어느 개도국이든 이에 대한 철저한 성찰과 개선 없이는「중남미형 정치불안」으로부터의 완벽한 탈피란 기하기가 어렵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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