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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순 진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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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요즘 어느 강연회에서『정말 순 진짜 참기름』이라는 얘기가 나와 청중들의 고소를 자아낸 일이 있었다. 서울 남대문시장의 어느 기름가게에 나붙은 광고문이라고 한다.
「정말」 「순」「진짜」등 은 모두 「진」을 수식하는 말들이다. 참기름의 「참」도 어원은 역시 「진」이다. 한방을 기름의 순도를 믿지 않는 고객들에게 그 상인은 얼마나 답답했으면 그런 문구를 생각해냈는지 동정이 간다.
「진」을 한두 번도 아니고 서너 번이나 강조하고 있다. 거의 「히스테리」에 가깝다.
언젠가 무슨 표어 가운데도 그런 것이 있었다. 『불 불 불 불조심』-. 요즘은 길거리의 한가운데에 『선·선·선을 지키자』는 교통질서 표어가 나와 있다.
글쎄, 이런 「캐치·프레이즈」나 광고문이 세상 어디에 또 볼 수 있을지 궁금하다. 세태의 각박 이랄까, 비정의 한 단면을 보여 주는 것 같아 다시금 고소를 짓게된다.
필경 그것은 불신풍조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 사의에 불신이 가득하면 「진실」은 고립되고, 소외당하기 마련이다. 「정말 순 진짜 참 기름」은 그건 심리의 표현이다. 그 기름마저 순도가 의심스럽다면 이다음엔 무슨 수식어를 보태야할지 절망적인 생각마저 든다.
교회에서도 「진리」만으로는 부족해서 『정말 순 진짜 진리를 믿읍시다』는 설교가 나올 것 같아 두렵다.
요즘은 어린아이 둘 까지도 무슨 말을 하면 『짜진?』이라고 애교 아닌 애교를 부린다. 『진짜냐?』는 확인이다. 『짜가지!』하는 속어도 역시 마찬가지다.
한자의「믿을 신」자는 인과 언의 합자이다. 믿음은 곧 사람의 말에서 시작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역경』에 이런 말이 있다.
『신급돈어지』-, 사람의 신의는 돼지나 물고기도 감화시킨다는 의미다.
공자는 그래서 정치의 근본을「신」에서 찾고 있다. 언행에 거짓이 없으면 백성은 그에게 정치를 맡긴다(신칙민임언)고 했다. 『신칙인임언』도 역시『논어』에 나오는 글귀다.
새 시대가 지향하는「밝고 바른 사회는 무엇보다「인문신뢰」의 회복에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신뢰의 바탕은 상호존중에 있다. 이를테면 밀고가 횡행하고, 투서가 잇따르는 사회 분위기는 신뢰보다는 불신을 조장할 뿐이다.
사회가 밝고 바르면 사람들의 언행도 밝고 바르다. 음산한 사회일수록 사람들은 서로 불신하고 서로를 감시하며 적대시한다. 그만큼 염치가 없는 사람이 되어 버린다.
도덕 감의 바탕은 「부끄러움」이다. 부끄러운 줄 아는 사람만이 도덕적이라고 할 수도 있다. 부끄러운 줄 아는 사람만이 도덕적이라고 할 수도 있다. 부끄러움의 회복-. 그때야 비로소 「참기름」이 「참기름」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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