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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유니언시티 일본군 위안부 기림비 앞에서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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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상렬 기자 중앙일보 수석논설위원
미 뉴저지 유니언시티 주민들과 함께 기림비 앞에 선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 [AP=뉴시스]
이상렬
뉴욕 특파원

4일(현지시간) 미국 뉴저지주 유니언시티에 또 하나의 일본군 위안부 기림비가 세워졌다. 미국에서 7번째 위안부 기림비다. 비석엔 “한국을 비롯해 각국의 수많은 여성이 일본군에 의해 ‘성적 노예(Sexual Slavery)’로 강제 동원됐다”는 내용이 새겨졌다.

 기림비가 선 곳에선 미국의 심장이라는 뉴욕 맨해튼이 내려다보인다. 몇 걸음 떨어진 곳에 9·11테러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모비가 있는 지역 명소다. 하루에도 맨해튼과 뉴저지를 오가는 수십만 대의 차량이 이곳을 지나간다. 유니언시티 측은 보다 많은 사람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만행을 되새겨보고 위안부 피해자들의 넋을 기릴 수 있도록 기림비 장소를 이곳으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기림비 건립은 미국 지방정부가 적극 주도했다. 한인 사회가 주도권을 쥐고 정치권을 움직였던 다른 지역 기림비 건립과는 전개 과정이 달랐다. 유니언시티 관계자들은 기본 인권 유린이라는 위안부 문제의 본질을 꿰뚫어 봤다. 루시오 페르난데스 시의원은 “위안부 문제는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와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브라이언 스택 시장은 “기림비는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후세에게 교육시키고,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제막식의 주인공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옥선(87)·강일출(86) 할머니였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한국에서 찾아온 두 할머니는 자신들이 겪은 참상을 직접 증언했다. 이옥선 할머니는 “우리가 강제, 강제로 끌려갔는데 일본은 한국 딸들을 하나도 강제로 끌고 간 것이 없다고 한다. 이게 옳습니까. 위안부는 사람 살 데가 아니라 사람 잡는 도살장입니다”라고 절규했다. 할머니의 몸은 떨렸다.

 제막식에 참석한 주민들 중 상당수가 눈물을 흘렸다. 카르멘 리베라도 그 속에 있었다. 그녀는 “할머니들이 정말 용감하다고 생각한다. 그분들이 정말 자랑스럽다. 앞으로 매일 그들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말했다.

 이옥선 할머니의 얘기 중엔 우리가, 우리 정부가 뼈아파 해야 할 대목이 있다. 할머니는 “원래는 나라와 나라끼리 해결해야 되는데, 몇십 년 동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추우나 더우나, 매주 수요일 일본 대사관 앞에 서 있지만 사과를 듣지 못했다”면서 “우리 힘으로 할 수 없어서, 이 먼 곳을 찾아왔다. 우리의 명예회복을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사력을 다해 자신들이야말로 일본 정부가 그토록 부인하는 강제동원 위안부의 증인임을 알리고 있다. 일본의 진실된 사과를 받기 위해 우리 정부와 우리는 할 일을 다하고 있는지 자문해볼 때다.

이상렬 뉴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