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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들이 짖어도 마차는 움직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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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1994년 '북.미 기본합의'의 북한 측 협상 주역이었던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이 최근 베이징(北京)을 다녀갔다. 북한의 6자회담 복귀 신호라는 희망적 해석과 그렇지 않다는 비관적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

강석주를 처음 본 것은 93년 7월 스위스에서였다. 북.미 고위급회담의 북한 측 수석대표로 제네바에 처음 나타났을 때였다. 양측 대표부를 번갈아가며 진행된 회담은 취재기자들에게는 '장막 속 흥정'이었다. 온종일 회담장 주변을 서성이며 대표단이 나오기를 눈 빠지게 기다렸지만 소득은 없었다. 황급히 회담장을 빠져나가는 참석자들로부터 '솔직한 대화' '건설적 논의' 같은 별 도움 안 되는 말 몇 마디를 주워듣는 것이 고작이었다.

10여 년의 세월이 흘러 이제야 궁금증은 풀렸다. 미측 수석대표였던 로버트 갈루치 전 북핵대사가 북한과의 협상 과정을 낱낱이 기록한 책이 최근 출간됐기 때문이다. 94년 1차 북핵 위기 당시 미측 핵심 실무자였던 대니얼 폰먼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비확산담당 특보 등과 함께 쓴 '북핵 위기의 전말'(모음북스.김태현 역)이 그것이다. 이 책은 한반도를 전쟁 직전의 위기 상황으로 몰고 갔던 당시 사태의 전말과 협상 내막을 손바닥처럼 보여준다.

강석주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좋아한다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이용해 미국을 협박한 비화도 비로소 알게 됐다. "서로 말문이 막혀 침묵이 흘렀을 때 그는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나오는 대사 한 구절을 인용하겠다고 했다. 강석주는 천천히 영어로 '개들이 짖어도 마차는 계속 움직인다'(The dogs bark, but the caravan moves on)고 읊었다. 그 어떤 것도 평양을 막을 수는 없다는 뜻이었다."

북한의 '햄버거 외교' 일화도 공개됐다. "다들 지치고 짜증이 났다. 갈루치가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치면서 긴장은 극에 달했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노크를 했다. 한 북한관리의 부인이 근처 맥도널드에서 빅맥 햄버거를 사가지고 쟁반에 들고 들어온 것이었다. 양국 대표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리고 햄버거를 들고 먹기 시작하자 긴장이 풀리기 시작했다."

이들은 북핵 위기를 관리하는 것은 여러 판의 장기를 동시에 두는 것과 같았다고 회고한다. 북한.한국.일본.중국.국제원자력기구(IAEA).유엔.의회.언론 등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상대가 없었지만 그중에서도 한국을 상대하는 것이 가장 힘든 일 중 하나였다고 털어놓는다. 그래서 그들은 북한과 장시간 회담을 마친 뒤 녹초가 된 몸으로 한국에서 온 관리들에게 회담 내용을 전했고, 때로 저녁식사와 술을 함께하기도 했다. 심지어 주한 미 대사관 정치과 직원을 대표단에 합류시켜 '탄광 속 카나리아' 역할을 맡기기도 했다. 한국이 수락하기 어려운 협상안을 미국이 제안할 때마다 이를 저지하는 것이 그의 역할이었다. "한국이 미국이라는 개의 꼬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한국인의 일반 인식과 달리 워싱턴은 한국의 의견에 큰 비중을 두었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북한이 핵을 가져봤자 그걸 가지고 무엇을 하겠는가'. 흔히 던지고 웃고 마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이 질문에 미국과 한국이 안주해서는 안 된다고 이들은 경고한다. 94년 당시 두 나라는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래도 긴밀하게 협력했고, 이를 통해 위기를 해소했다는 것이다.

북핵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려면 한국의 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과 북한과의 양자대화를 병행해 당근은 무엇이고 채찍은 무엇인지 분명히 알려줘야 한다는 것이 1차 핵위기 해결 경험을 통해 이들이 얻은 교훈이다.

배명복 국제문제담당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