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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는 사랑을…제자는 믿음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코흘리개들의 손을 잡고 초등학교에 몸담고 있을 때의 일이다. 준 교사자격으로 처음 부임하여 교육관도 몸에 베지 못하고 교단에 섰을 무렵이었다. 어느 날 나는 큰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주의가 산만하고 떠든다는 이유로 반 아이들 모두에게 벌을 가한 것이다. 티 없이 밝게 자라나는 어린이들을 사랑으로 감싸야한다는 생각을 갖지 못 했기 때문이었다.
그 이후로 그때의 생각은 나의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초등학교를 떠나 중학교·고등학교로 자리를 옮기면서도 그때의 잘못은 교직생활의 귀감으로 남게되었다. 「사랑」과「이해」, 이것만이 교사로서 제자들로부터 신뢰를 획득하는 첩경이라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된 것이다. 서두르는 채찍보다는 사람의 손길과 이해를 바탕으로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는 것만이 그들의 내일을 올바른 젊은이로 길러내는 묘방임을….
그러나 교사 쪽의「사랑」과「이해」만으로 사제간의 문제가 완전히 해소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또한 알게 되었다.
스승이 제자에게 아무리「사랑」과「이해」를 쏟는다 해도 제자가「믿음」을 가지고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한 그「사랑」과「이해」는 물거품이 되기 쉽다.
스승에 대한 제자의「믿음」이 여러 가지 사회의 여건이 바탕을 이룬 학교의 올바른 교육적 풍토에서 싹트는 것이라고 볼 때 이제까지 우리나라 학교사회에서 스승의 「사랑」과 「이해」제자의 「믿음」이 생성되기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왜 과외공부를 하느냐』는 질문에 많은 학생들이 『학교선생이 믿음직스럽지 못해서』라고 대답했다는 이야기를 돋는 학교선생님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제자가 스승을 믿지 못하는 풍토에서 교사에게만 일방적으로 「사랑」과 「이해」를 강요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 같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대다수의 교사들은 「사람」과 「이해」로써 제자들을 감싸왔음을 나는 알고 있다. 그것은 대가 없는「사랑」과 「이해」였다. 그리고 이제 교육풍토의 전반적 개선과 함께 그「사람」과 「이해」는 올바른 스승상의 확립으로 꽃피울 때가 되었다.
나는 일선교사의 위치를 정원사나 농사꾼에 비교하고 싶다. 모든 나무와 곡식이 정원사나 농사꾼의 손길에 따라 곱고 풍성하게 자라듯, 어린 새싹 역시 스승의 손길에 따라 곧고 밝게 자랄 수도 있고 삐뚤게 자랄 수도 있다.
만약 교직자가 자기의 직업을 천직이나 성직으로 알지 않고 「밥벌이」를 위한 하나의 평범한 직업으로 생각한다면 그는 스스로 안일에 빠져 새싹을 키우는 일에 등한히 하게 될 것이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어떤 포수가 멧돼지를 쫓아 험한 산을 몇 개씩 넘고 칡덩굴에 감기고 나뭇가지에 찢기고 넘어지면서 사투 끝에 멧돼지를 쏘아 눕혔다고 하자. 이때 포수가 그것을「목적 달성」의 의미로 받아들였다면 그가 겪은 역경은 하나의 쾌감으로 느껴지게 되지만 그것을「밥벌이」로만 생각했다면 그 역경의 과정은 고통으로 되살아 오르고 쓰러진 멧돼지는 몇 장의 종이돈의 의미로 밖에 남을 수 없을 것이다.
올바른 스승 상을 확립하기 위해 교직자가 가져야할 또 하나 중요한 자세는 끊임없이 연구하는 것이다. 교직자의 연령과 관계없이 수10년 전의 교육내용과 지금의 그것이 똑같다면 새 시대를 살아가는 새싹들에게는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할 것이다. 또한 교직자가 연구하는 것이 순수한 교육자로서의 목표를 벗어나 승진에 급급한 것이어서는 곤란하다.
사회와 국가의 입장에서 볼 때 자라나는 새싹은 희망의 꽃이다. 꽃이 아름다워야 하는 것처럼 그들도 곱게 길러야 한다. 됨됨이가 훌륭한 인간으로 자라도록 그들의 세계로 힘차게 이끌어 주어야한다.
농부가 봄에 씨를 뿌려 싹이 트기를, 꽃이 피기를, 그리고 열매맺기를 바라는 것과 같이 교직자들은 김매고 가꾸고 북돋는 정신으로 그들에게서 튼튼하고 소담한 열매가 맺도록 온갖 점성을 다하지 앉으면 안 된다.
『어느 여학생이 가수나 배우의 이름은 알아도 쌀밥을 지을 때 물을 얼마 붓는지를 모른다』고 하는 비정상의 교육이 이게는 없어야겠다.
목표지향의 교육이 되어야한다.
일선교사는 무엇보다 소신대로 살아가는 자세가 중요하다. 교사상 아니, 「올바른 스승상」정립에 최선을 다해야한다.
우리 일선 교사가 오로지 학생을 위한 바람직한「스승상」을 정립할 때 당국은 교사에 대한 우대를 더욱 아끼지 않을 것으로 기대된다.
안일을 탈피하고 부단한 연구를 거듭하는 새로운 교육풍토 조성에 전력을 다해야 될 때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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