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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장관 몰아세운 김무성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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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쾅!”

국회 본청 새누리당 대표실. 김무성 대표는 단 일곱 문장을 말하는 동안 책상을 네 번 내려쳤다. 육군 28사단의 윤모 일병이 선임병들의 가혹행위로 지난 4월 숨진 사실의 진상이 뒤늦게 드러난 것과 관련해 3일 오후 한민구 국방장관으로부터 현안 보고를 받으면서다.

김 대표=“천인공노할 이런 일을 당했는데, 지금까지 파악한 바에 따르면 살인사건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어요. 장관은 자식도 없어요. 그걸 또 왜(쾅!) 비공개로 하려고 그래. 4월 7일에 발생한 건데, 쉬쉬하고 덮으려고 그래요. (쾅!)”

한 장관=“저희가…”

김 대표=“(말 끊으며) 이런 엄청난 사건이 벌어졌는데, 문책범위가 이것밖에 안 돼요. (쾅! 쾅!) 치가 떨려서 말이 안 나와요.”

잠시 정적이 흐른 뒤, 김 대표는 이인제 최고위원 쪽으로 마이크를 밀었다. 이 최고위원은 “내무반 병사들 사이에서 이런 어마어마한 일이 벌어졌다는 건 군 전체의 기강이 완전히 무너졌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장관이 “분골쇄신해서 이런 분위기를 치유하겠다”고 하자 그는 “교과서 같은 얘기 하지 마시고, 각 부대 창고부터 장부대로 있는지 비교해보라. 틀림없이 엉망일 거다”고 비판했다.

육군 중장 출신인 국회 황진하 국방위원장은 “군 출신으로 창피해서 고개를 들 수가 없다. 국민 앞에 무릎 꿇고 석고대죄한 뒤 군복을 벗어버리든지 하라”고 했고, 해군 참모총장출신인 김성찬 의원도 “가능한 축소하고 넘어가려는 모습이 몇 년간 쌓이며 곪아 터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새누리당은 윤 일병 사망과 관련해 처벌 확대를 요구했다. 한 장관의 보고가 끝난 뒤 김성찬 의원은 “관련 내용을 적나라하게 따져서 일벌백계해야 한다”고 했다. 국회 국방위는 4일 오전 회의를 열고 관련 내용을 캐물을 예정이다.

이날 긴급 보고는 전날 김무성 대표의 지시로 당에서 요청했다. 일요일에 국회에서 긴급보고회의가 열린 것은 이례적이다. 당초 한 장관은 보고 대상에서 제외됐지만, 사안의 중요성을 감안해 당에선 책임자를 직접 부르기로 했다. 김 대표는 회의 후 주변에 “이 정도까지 할 건 아니었는데, 흥분한 측면이 있다”며 “그러나 국민정서가 얼마나 나쁜가”라고 말했다.

앞서 한 장관은 전날 주요지휘관을 서울로 소집해 “병영 내 구타 사망은 21세기 문명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질타했다. “군에 입대한 장병을 건강하게 부모님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것은 군 지휘관들의 의무”라는 문안을 직접 작성한 그는 전 군에 병영 내 ‘구타ㆍ가혹행위 색출, 근절 작전’을 시행하라고 지시했다.

권호 기자 gnomon@joongang.co.kr

사진=뉴시스, 노컷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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