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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게 들리지 않게 … 경제수석 기본 역할은 상충 정책의 조정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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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호 06면

1987년 주요 경제인들과 만찬 중인 사공일(오른쪽 둘째) 재무 장관. [중앙포토]

보이지 않게, 그리고 목소리도 들리지 않게(faceless and voiceless).

청와대 경제수석을 위한 어드바이스

 사공일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이 주문한 청와대 경제수석의 일하는 방식이다. 경제수석은 대통령을 보좌하며 부총리와 관련 부처를 뒤에선 적극적으로 돕되, 전면에 드러나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경제수석의 역할과 중요성을 가장 잘 아는 인물이다. 1983년부터 87년까지 4년여간 최장수 경제수석비서관을 지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83년 미얀마(옛 버마) 아웅산 묘역 폭탄 테러로 사망한 고 김재익 경제수석의 후임으로 당시 산업연구원장이던 사공 이사장을 발탁했다.

 사공 이사장은 재계와 여론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80년대 초 시작된 안정화 정책을 흔들림 없이 지켜 오늘날 한국 경제의 기틀을 닦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경제수석으로 임명될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이 “전임자가 없으니 내가 직접 경제 현안을 인수인계해 주겠다”며 그에게 경제수석의 역할과 주요 현안들에 대해 브리핑해 줬다고 한다. 전 전 대통령은 또 수석으로서 제대로 일하려면 두뇌집단을 잘 활용해야 한다며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을 사공 수석과 생각을 같이하는 사람으로 뽑아 함께 일하라”고 인사를 맡기기도 했다.

 사공 이사장은 경제수석의 역할로 각 부처 간 상충되는 정책 조정 기능을 우선 꼽았다. 그는 “농림부가 농민들의 입장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것처럼 부처는 기본적으로 관련 부문의 이해관계자 집단의 입장에서 경제 사안들을 볼 수밖에 없다”며 “배후에서 부총리를 도와 각 부처 간 상충된 정책을 조정하는 게 경제수석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그는 “일은 각 부처 장관 중심으로 추진되는 것이기 때문에 장관들 책임하에 일할 수 있도록 뒤에서 돕고 공은 장관에게 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제수석이 적극적인 역할은 하되 막후의 조정자로서 결코 앞에 나서면 안 된다는 생각이다.

 실제 사공 이사장은 경제수석 시절 한 차례도 정책에 관한 한 직접 기자회견을 한 적이 없다. 85년 사공 이사장이 미국 뉴욕에서 열린 세계 부채 서밋에 참석했을 때 당시 미국의 베이커 재무장관이 원화절상을 압박하기 위해 만나자고 했을 때 “주무 장관이 아닌 대통령 비서가 미국 재무장관과 공식 면담을 할 수 없다”고 버텼다. 그의 이런 고집에 양측 모두 배석자 없이 비공식 미팅을 했다.

 그는 또 “경제수석은 대통령에게 경제 정보와 지식을 제공하고 정책 자문을 하는 브레인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경제 전문가가 아닌 대통령이 올바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경제수석이 대통령의 국내외 경제를 보는 시각 정리와 프레임 마련을 위해 지근거리에서 수시로 대통령 자문역을 해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 하버드대 로런스 서머스 교수의 경우 미국 국가경제위원회 의장 시절 매일 적어도 30분씩 오바마 대통령에게 경제 브리핑을 하면서 대통령의 경제 이해도를 높였다”며 이러한 역할을 잘 수행하기 위해 “경제수석은 KDI 등 전문가 집단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일류 정부란 결국 일류 정책을 생산하는 정부”라며 “일류 정책 생산을 위해 미국 정부처럼 싱크 탱크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풍토가 조성돼야 하고 복잡한 경제정책을 뒤에서 기획·조정하는 경제수석의 경우 이것은 필수적이다”라고 강조했다.

 사공 수석은 경제수석을 두고 ‘미움 받을 각오를 해야 하는 자리’라고도 했다. 정치권이나 이해집단의 압력으로 나오는 선심성 정책에 대해서는 경제수석이 직접 나서서 막아낼 배포와 용기가 있어야 한다는 의미에서다. 그는 “여당이나 부처들은 이해관계자들의 압력에 약해 인기영합적 시책을 고집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선거철이 되면 그런 욕구가 더 강해진다”며 “이럴 때 청와대 안에서 안 된다고 해야 할 사람이 경제수석”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경제수석은 특히 다른 청와대 수석들과의 소통과 의견교환을 위해 각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도 했다. 사공 이사장은 “대부분 형식적인 국무회의에서는 타 부처 소관 정책에 대한 허심탄회한 논의가 어렵다”며 “사전에 청와대 내에서 수석들끼리 수시로 난상토론을 벌여 정책을 다듬고 그렇게 만들어진 정책은 해당 부처를 통해 집행할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수기 기자 retali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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