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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과말소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전과자의 범질·형량에 따라 일정기간이 경과하면 그 전과기록을 말소해 주는 방안이 국보위에 의해 구체적으로 추진되고 있다고 한다.
전과자의 재범을 방지하고 이들이 사회에 복귀해서 선량한 시민으로서 정상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보장해 주는 조치가 국보위의 지시에 따라 내무부에서 마련중이며, 필요하다면 전과말소법의 제정 등 입법조치도 하리라는 것이다.
과거의 잘못을 깨끗이 씻어주어 전과자들도 밝고 명랑한 사회풍토를 조성하는데 동참시킨다는 것은 형사 정책적인 면에서는 물론 사회 정책적인 면에서도 분명히 바람직한 일이다.
해방후 지금까지의 전과자는 무려 4백90여만명이나 되는 것으로 집계되었다. 더욱이 현대사회가 복잡다단해지면서 각종 구류와 벌금 등 경미사범이 해마다 증가추세에 있어 그 수만 해서 93만명에 이르고 있다.
이처럼 많은 사람이 일시적인 잘못으로 사회생활을 하는데 있어 여러 가지 불이익을 감수하고 그늘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은 사회발전이나 국민화합의 견지에서 무언가 잘못된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현행 형법의 통념은 실형선고를 받은 경우만 전과자로 인정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제도의 미비·법운용의 경직성 등으로 즉결심판에서의 구류까지 포함해서 형사처벌을 받은 모든 사람이 전과자 취급을 받고 있는 것이 우리의 숨김없는 실정이었다.
물론 현행법상 형의 실효 선고나 대통령의 사면 등 구제장치가 마련되어 있고 국경일 때마다 그런 혜택이 주어지고 있지만 그런 조치 뒤에도 전과사실만은 그대로 남아 사회의 냉대를 쉽게 면할 수 없는 입장에 놓여졌었다.
몇10년 전의 사소한 과오에도 불구하고 이미 개과천선해서 건실한 시민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적지 않은 터에 그 전과사실 하나만으로 완전한 사회복귀가 불가능하다는 것은 여간 비현실적인 일이 아니다. 교도소에서의 복역 등으로 응분의 처벌을 받고서도 교도소 밖에서 다시 사회적 제재를 받는 결과를 뜻하기 때문이다.
또 범죄예방이란 측면에서 보아도 전과자란 낙인이 지워지지 않아 재범·3범을 하고 끝내 범죄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마는 경우가 많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
주지하다시피 이런 문제는 작년 정기국회 때 연좌제와 관련, 논의된바 있고 정당에 의한 입법 움직임까지 있었지만, 결국 하나의 과제로 미루어졌었다.
이번 국보위가 마련하고 있는 전과기록제도의 구체적인 쇄신방안은 아직 소상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내란음모 등 중범죄를 제외한 죄질·형량·전과횟수 등에 따라 일정기간에 경과한 후 전과기록을 말소토록 한다』고 한 사실에 비추어 일단 잘못을 저질렀던 사람이라도 일정기간이 지나면 자동적으로 실질적인 사회복귀의 길을 터주는 방향인 것은 틀림없을 것 같다.
우리는 「국민화합」이라는 시대적 진운과도 맥락을 같이하는 전과말소제도가 특히 국보위와 같은 결단력 있는 기구에 의해 추진된다는 것을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혜택이 우선 수백만명에게 돌아감으로써 사회발전과 순화에 큰 기여를 하리라는 기대에서도 그렇지만 이러한 제도 정비가 이제야말로 실현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행형의 목적은 비록 일시의 과오를 저질렀어도 개전을 한 사람에겐 사회복귀를 도와주는 것이며, 그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사회발전을 함께 도모하는 희망을 주는 것이어야 한다. 따라서 전과말소는 그 「희망」을 법적으로, 제도적으로 보장하겠다는 국가의 의지로 풀이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국보위에 의한 전과기록제도의 쇄신·정비는 새 시대 건설에 긍정적 파급효과를 거둘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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