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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부터 살려놓고 봐야한다"|김준성 한은 총재는 말한다|대담 최우석 본사 경제부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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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최우석 부장=대단히 실례인 말씀 같습니다만 5년 전 대구에서 거의 신인 금융인으로 상경, 영전을 거듭하여 제일·외환은행장과 산은 총재를 거쳐 금융계의 정상인 한은 총재까지 되셨는데 거기엔 무슨 비결이라도 있습니까. 다른 분들은 평생 한번 해보기도 힘든 자리들이 아닙니까. 세상엔 김 총재는 무슨 배경이 없는 그야말로 「자수성가」라는 소문입니다.

<문제 의식 갖고 개선>
▲김준성 총재=사실 저 같은 사람이 명예로운 중앙은행 총재 자리에 앉아 한편으로 영광스럽고 다른 한편으론 죄송스런 느낌입니다. 한은 총재는 금융인이라면 한번쯤 동경은 해보지만 쳐다보기 힘든 자리가 아닙니까. 저는 갑자기 이기도 하지만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그동안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그것만으로 다 되는 것이 아니니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겠지요.
저는 어디서 일을 하든 조금 다른 방법을 씁니다. 항상 문제 의식을 갖고 모든 사물을 성실하게 바로 보려고 애를 쓰고 조직을 활성화시키는데 가장 신경을 씁니다.
제가 은행 경영을 처음 한 것은 고향인 대구에서 사업을 하다가 대구은행 설립에 관계하여 행장을 맡고 나서인데 행장 7년 동안 은행 고객의 입장에서 한번 경영을 해보자 하고 많은 것을 시도했지요.
대구는 직물 관계의 중소기업이 많습니다.
그래서 이들을 어떻게 도와줄 것인가 하고 궁리를 한끝에 중소기업자 4인을 묶어 담보 없이 대출을 해주고 수출 금융을 서울까지 안가고 대구에서 직접 받을 수 있게 하는 등 여러 조처를 했습니다. 또 대구은행 주식을 철저해 분산시켜 명실상부한 공개기업으로 했읍니다.
그 좋아하던 문학도 잠시 손을 떼고 열심히 했지요(김 총재는 문예지에 정식 추천된 작가이기도 하다). 이런 것들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어 서울로 올라오고 서울에 와서도 그런 식으로 일을 했지요. 어느 조직이나 문제 의식을 갖고 보면 고칠 점이 많을 것입니다. 또 고칠 수도 있고요.

<시은 자율화 폭 넓혀>
-최=가만 못 있는 성미를 가진 분이 오셨으니 다소 보수적인 한국은행 분들이 긴장하겠읍니다. 밖에서 볼 때 한은에서 고쳐야 할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했읍니까.
▲김=물론 고쳐야 할 것이 없지는 않겠지만 역시 한은은 전통 있고 훌륭한 곳입니다. 요즘은 될 수 있는 대로 한은 체질 속에 용해되도록 노력하고 있읍니다.
-최=이제 시은을 떠났읍니다만 시은에서 고칠 점은 무엇입니까.
▲김=급격한 내외 여건의 변화에 못 따라가지 않느냐 하는 점입니다. 변화에 적응하여 새로운 활로를 찾는 유연성을 지녀야지요. 또 원가 관념이 너무 희박한 것 같습니다.
금융기관은 공익적인 성격도 강하지만 상업주의도 무시해선 안됩니다. 항상 고객 편에 서서 무엇을 고칠 것인가를 생각하고 그야말로 「장사」를 해야지요.
은행은 활성화돼야 합니다. 은행 활성화하면 대뜸 민영화부터 생각하는데 이건 너무 성급합니다. 민영화가 당장 이루어질 수는 없을 것이니 차차 자율화의 폭을 넓히는 것에서 시작해야지요. 제한된 여건 안에서나마 은행이 합리화·효율화를 통해 상업성을 추구해 나가야 합니다.
-최=요즘 경기 현상을 두고 논란이 많은 것 같습니다. 김 총재께서는 경기 현황과 전망을 어떻게 보십니까.
▲김=경제 이론과 오랜 현장 경험을 결부시켜 볼 때 「감」으로 느끼는 것은 기업들이 무척 어렵다 하는 것입니다. 자본주의 경제에선 기업이 밑바탕인데 기업이 활력을 상실해선 큰 문제가 됩니다.
어느 정도의 경기 자극책이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하반기를 지나 가을바람이 불면 다소 나아지리라 생각되지만 상반기 경제 성장이 「마이너스」를 기록했고 경기 예고 지표가 0·4까지 갔다는 것은 주목해야할 현상입니다.
-최=긴축 기조를 다소 수정해야할 만큼 어렵다는 뜻입니까.
▲김=물가 안정을 위해 긴축을 견지해야 한다는 것은 기본명제지요. 그러나 이를 너무 경직적으로 운용해선 안됩니다. 경기가 정 어려우면 다소 후퇴하고 그래서 경기가 나아지면 또 죄고 이렇게 산 경제를 신축성 있게 다뤄야지 기계적으로만 밀고 나가면 어떻게 되겠읍니까.

<긴축은 기본 명제>
안정도 좋지만 경제가 복원력을 잃을 정도로 몰아붙이면 물량 공급원이 고갈되어 더 큰「인플레」를 몰고 오기 쉽습니다.
우리 나라는 여러 특수한 상황에 있는 만큼 어떡하든 금년에 3%이상으로 성장율을 끌어 올려야합니다.
-최=중앙은행 총재가 이렇게 말씀하시니 경제계에서 참 좋아하겠습니다. 기왕이면 경제계에서 애타게 요구하는 금리 인하도 취임 선물로 주면 어떻습니까.
▲김=이것 잘못하면 중앙은행 총재가 「인플레」보다 기업 걱정한다고 야단 맞겠읍니다. 그러나 자본주의 경제에선 역시 기업이 건실하고 활력이 있어야 경제도 활발해질 것이 아닙니까.
현재 기업의 금리 부담이 무거워 물가와 투자에 큰 부담이 되고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금리를 내리면 고물가속에 저축이 어려운 등 여러 문제점이 있으므로 현재 신중히 검토 중에 있습니다. 적은 소득에서 한푼 두푼 아껴 저축하는 사람들도 보호해야 되지 않겠읍니까.
앞으론 금리를 탄력화 시켜 수시로 변동 할 수 있도록 할 생각입니다. 미국에선 한 2개월 동안에 금리를 거의 반으로 내렸읍니다.
우리 나라는 금리를 너무 경직적으로 운용하고 있읍니다.
-최=일부에선 어차피 이번에 긴축을 더 강행하여 한계 기업들을 도산시켜 경제 체질을 강화하는 것도 한 방법이 아니냐는 생각도 있는 것 같읍니다.
또 지금 경기 자극책을 쓰면 「인플레」가 재연되지 않느냐는 우려도 있읍니다.
▲김=과거 일본 같은 데선 한계 기업을 무자비하게 도산시킨 예도 있고 또 지금도 그런 정책을 쓰지만 한국은 사정이 다릅니다.
현재 가장 어려움을 받고 있는 것이 중소기업들인데 이들을 없애고 경제를 어떻게 끌고 갈 것입니까. 경제적으로나 정치·사회적인 고려에서나 이들을 꼭 살려야 합니다. 정부에서 지원할건 지원하고 대기업과 연결시킬 건 연결시키고 해서 중소기업을 튼튼히 길러야 경제도 튼튼해지는 것입니다.

<도산 좌시 해선 안 돼>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경제의 앞뒤바퀴와 같은 것으로서 둘 다 균형 있게 키워야 합니다.
우리 나라에선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계열화가 좀 잘 안 되는 것 같은데 이점에 특히 유의할 생각입니다.
물가 안정도 국민 경제 발전과의 조화 위에서 추진해야지 안정을 위해서 안정을 하자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항상 「인플레」를 경계하면서도 경제가 「오버·킬」되어 위험할 국면에 빠질 우려가 있을 땐 유연한 대응을 해야지요.
우리 나라는 무엇보다도 남북 대치 상황에 있고 기업의 저력이 얕아 외국과 같이 무자비하게 내버려둘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해야겠읍니다.
-최=중소기업들엔 무척 자비로운 복음이 될 것 같습니다. 이것만으로도 많은 격려가 되겠읍니다.
▲김=확실히 기업들이 위축되어 있으므로 이들에게 활기를 불어넣을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나라 기업가들의 기업의욕은 어느 나라보다도 왕성하므로 지금 좀 주춤하다고 해서 조금도 걱정할 것은 없읍니다.
저는 장기적으로 한국 경제의 앞날을 낙관하고 있읍니다.
-최=과연 듣던 대로 시원스럽고 또 전향적입니다.
장시간 대단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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