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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3>승진도"좁은 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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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지난해 1년간 공무원 3만4천3백88명이 승진했다. 전체공무원의 약6%에 해당한다.
공무원에 있어서 승진은 출세의 지름길이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가장 큰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중앙부처의 과장이 국장으로 올라가면 당장 10가지가 달라진다. ①봉급이 오르는 것은 물론 ②승용차가 생기고 ③전용사무실에 ④「소과」가 놓여지며 ⑤여비서가 생긴다 ⑥A급 식당에 출입할 수 있어 직접 밥을 날라다 먹지 않아도 되고 ⑦수위로부터 거수경례를 받으며 ⑧전용전화로 시외전화까지 마음대로 걸 수 있다. 이밖에 ⑨부하가 많아지고 ⑩동시에 결재서류에 도장을 많이 찍게된다.

<1년에 6%가 승진>
공무원의 「꽃」을 「국장」이라고 세상에서 말하는 이유도 이런데 있는 것 같다. 그렇다고 공무원 누구나가 다 국장까지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일반직 3급 1만9천여명에서 지난해 부이사관으로 승진한 공무원은 1백16명으로 1%가 안된다. 일반직공무원 27만명 중 2급이 1천1백여명이니까 0·4%정도고 따라서 2백50명에 l명의 국장이 나올 수 있다고 단순화 할 수 있다.
정부종합청사의 B부에 근무하는 L주사는 출근하자마자 행정법 객관식문제집만을 펼쳐놓고 공부만 한다. 며칠 후에 치를 3급을류 승진시험준비에「피치」를 올리고 있는 것이다.
과장·계장이 양해를 해줘 서너달 전부터 거의 업무를 제쳐놓고 있는 상태이며 퇴근시간이 되기가 무섭게 학관으로 달려간다. B부에서 승진시험을 준비하는 5명의 후보자가 거의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L씨는 주사생활 7년이고 그 동안 두 차례나 승진시험에 떨어졌기 때문에 이번을 마지막으로 알고 대학입시이상의 집념을 보여 주위사람들이 같이 걱정해주는 처지다.
지방에 근무하는 공무원 중에는 아예 시험공부를 구실로 서울로 올라와 하숙방을 구해놓고 학관에 나가는 사람도 있는 형편이다.
4급 공무원이 사무관으로 임관하려면 총무처가 실시하는 승진시험에 반드시 통과되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군의 상사처럼 평생 주사에 눌러있어야만 한다. 일단 3급에 올라가야 능력에 따라 장관까지 바라볼 수 있게된다.
공무원법상 규정된 승진소요연수를 보면 ▲5을에서 5갑=1년6개월 ▲5갑에서 4을=1년6개월 ▲4을에서 4갑=2년 ▲4갑에서 3을=2년6개월 ▲3을에서 3갑=3년이고 3급에서 1급까지는 3년씩으로 통일되어 있다.

<승급에 평균4년반>
따라서 5을 동서기로 들어간 공무원이 3급을류인 사무관으로 승진하려면 최소한 7년6개월이 걸리며 1급까지 올라가려면 최소한 7년6개월이 소요된다.
이것은 법적으로 규정된 필요조건이고 실제로 승진하는데는 더 많은 기간이 걸리고 제일 어려운 관문이랄 수 있는 서무관 승진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
고삼주사들이 늘 대기하고있기 때문이다.
79년의 공무원「센서스」에 따르면 승진에 필요한 기간이 평균 4·5년으로 통계되어 있다. 이 기준으로 서기보에서 관리관 (1급) 까지 올라가려면 36년이 걸린다는 계산이다.
74년의 조사에서 평균승진소요연수가 4·2년으로 다소 낮았던 것과 비교할 매 점차 인사정체가 심화되는 추세라 할 수 있다. 8만2천명의 일반직 국가공무원 중 같은 직급에서 30년 이상 근무한 공무원이 1천7백60명으로 2%가 넘는다. 그 중 4급을(주사보)이 7백93명으로 장기근속하고 있다.
4급갑(30년 이상이3백89명)과 3급을(3백95명)공무원 중에서도 장기근속자가 많다는 것은 사무관·서기관의 관문이 좁다는 것을 의미한다.
거기다가 고시를 거친 공무원이 늘어나는 추세여서 주사출신이 전신만고 끝에 사무관으로 올라가도 산너머 산이다. 더욱이 공무원의 직급구조가「피라미드」형이기 때문에 경쟁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3급까지는 ▲근무성적 40 ▲훈련성적 25 ▲경력 35점에 각종 훈장·특기에 따라 근무평점에 따른 서열이 매겨지지만 2급으로의 승진에는 승진소요연수 3년만 채우면 소속기관장 재량의 능력 및 업적평가로 박탈된다.
주사에서 올라간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같은 고등고시 출신이라도 계장에서 차관보에 이르기까지 승진 「스피드」는 천차만별이다.

<부하가 추월하기도>
C부처의 L과장은 자신이 대리고 있던 P계장을 마침 증설된 과장자리에 천거했더니 나중에 P과장이 직속 국장으로 되고 뒤이어 차관으로까지 승진하여 거꾸로 L과장을 국장으로 승진시켜 주었다는 것은 관가에 널리 알려진 얘기다.
고시출신으로 가장 승진이 빠르기로는 장덕진 전 농수산부장관이 기록.
사법고시(10회) 행정고시(12회)와 외무고시(13회)를 다 거친 장씨는 63년5월 사무관으로 시작해서 77년12월 농수산부장관으로 임명됨으로써 14년7개월만에 공무원의 정상인 장관에까지 올랐다.
장씨와 행정고시동기인 염보현씨는 치안본부장, 강경식씨는 기획원 기획차관보, 하동선씨는 재무부재산관리국장을 지금 지내고 있다.
비고시출신 중에서는 주사에서 장관에까지 오른 정종택 농수산부장관을 비롯해 김창식 청와대정무수석비서관 (재직 중 고시합격)·김수학 국세청장 등이 입지전적인 인물로 꼽히고있다.
지난날에는 공무원승진 때 더러 「스캔들」이 나오곤 했으나 요즘엔 각 부처에서 대개 다음 승진서열이 정해져 있어 「무리」는 범하기가 어렵게되어 있다. 적어도 순수한 사무가여야할 국·과장까지는 성실한 공무원이 사다리를 타듯 꼬박꼬박 올라갈 수 있는 풍토를 만드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고흥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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