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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7·30 민심, 세월호를 넘어 민생을 선택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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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7·30 재·보선이 새누리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세월호 사태가 중심이 됐던 6·4 지방선거만 해도 여야가 8 대 9라는 무승부였다. 그로부터 두 달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 이런 결과가 나온 건 국민이 세월호를 넘어 민생을 선택한 것으로 판단된다. 세월호가 심각한 사건이었지만 이를 수습하는 방법은 합리적이며 미래지향적이어야 한다고 유권자는 판단한 것이다. 야당이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않고 세월호를 정치쟁점화하려는 전략에 유권자는 ‘노(no)’를 선언했다.

 야당에 대한 유권자의 이런 거부감은 명백하게 드러났다. 중도(中道)지역이라고 볼 수 있는 대전·충남·충북에서 유권자는 지난 지방선거와 달리 과감하게 새누리당을 선택했다. 이런 성향은 서울 동작을과 수원 등 수도권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났다. 수도권에 출마했던 손학규·김두관·정장선 등 야당의 원로·중진 스타들은 커다란 표차로 패배했다.

 가장 의외인 것은 전남 순천-곡성에서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가 당선된 것이다. 호남은 민주당에 뿌리를 둔 새정치연합의 텃밭이어서 이곳에서 영남을 지역기반으로 하는 새누리당이 당선자를 내는 것은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런 곳에서 새누리당 후보가, 그것도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됐다. 유권자는 작심하고 새누리당에 표를 던졌으며 이런 결심은 순천에서 강하게 나타났다고 봐야 한다.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가 지역개발 공약을 내세운 것이 영향을 미친 측면이 크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부분적인 것이다. 근본적으로 표심이 변화하지 않고는 이런 결과가 불가능하다.

  이제 중요한 것은 7·30 결과를 수용하여 여야가 향후 국정운영에 합리적으로 대처하는 것이다. 지난 6·4 지방선거와 7·30 선거는 세월호 사태를 둘러싼 ‘정권심판 정국’이었다. 이제 7·30은 집권세력과 야당 모두에 하나의 분수령이 되어야 한다. 지금부터 2016년 4월 총선까지 21개월 동안은 큰 규모의 선거가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집권 2기를 위한 여러 준비를 갖췄다. 선거 전에 개각도 단행했고 최경환 경제부총리를 내세워 총체적인 경기부양책도 밀어붙이고 있다. 마침 대통령은 여름휴가 중이다. 대통령은 집권 1기의 인사 참사와 세월호 위기관리 실패를 점검하고 집권 2기를 새롭게 구상할 것이다. 앞으로 박 대통령이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시간은 사실상 2기 20여 개월밖에 없다고도 볼 수 있다. 2016년 총선 이후에 정국은 급속도로 차기 대선국면으로 진입할 것이다.

 대통령은 안보·외교·경제·사회에서 여전히 어려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북한 김정은 정권은 악화되는 고립을 탈피하려 핵과 미사일로 다시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이 크다. 많은 이가 우려하는 급변이 발생할 수도 있다. 대통령은 중국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일본에 대처하면서 동시에 한·미·일 동맹을 강화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세월호로 제기된 국가 개조작업은 대통령과 정부가 주도해야 하는 것이다. 이를 잘 실행하려면 ‘1기의 맹점’으로 지적된 불통과 인사 실책이 되풀이돼선 안 된다. 대통령은 통치 스타일을 개선해 소통과 광폭의 인재 발탁으로 2기를 지탱해야 할 것이다.

 새누리당의 김무성 체제는 첫 시험을 치렀다. 선거 결과는 현 체제에 우호적으로 나왔지만 그렇다고 여당의 문제가 덮어진 건 아니다. 정권이 흔들릴수록 집권당 내에선 주류-비주류 간 갈등과 차기 권력다툼이 불거진다. 7·30 전에 새누리당은 벌써 이런 징조를 보였다. 만약 집권 2기에도 여당이 이런 풍조에 사로잡히면 정권 전체가 위기에 봉착할 것이다. 대통령이 성공하지 못하면 여당도 차기 대선구도에서 매우 취약해진다. 여당은 국정의 한 축으로서 야당을 설득해 입법으로 정권을 도와야 한다.

 세월호에서 드러난 국정 파행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건 야당의 중요한 임무였다. 하지만 두 차례 선거와 국정조사, 감사원 감사 그리고 검찰수사를 통해 세월호 사태는 상당 부분 통과 절차를 거쳤다. 새정치연합은 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계속 세월호를 정쟁에 이용하려 했다. 선거 패배는 새정치연합의 이런 태도가 지나쳤음을 보여줬다. 야당은 이제는 사태수습을 마무리하고 근본적인 재발방지 대책을 세우는 데에 협조할 필요가 있다. 토론은 진지하게 하되 합리적인 선에서 특별법과 ‘관피아 개혁방안’ 등에 동의한다면 성숙하고 대안을 지닌 야당이란 평가를 받을 것이다.

야당의 실패에는 원칙과 명분이 없는 공천 파동이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새정치’가 실종됨으로써 야당은 존재감에 상처를 입었다. 야당은 지도부 교체 파동에 휩싸일 것이다.

 박근혜 집권 1기를 상징하는 단어는 단연코 ‘세월호’일 것이다. 2기는 국가 개조와 경제살리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21개월 동안 큰 선거가 없으니 여당과 야당 그리고 차기 주자들은 정책을 공부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일로 경쟁해야 한다. 정치권의 선도 노력이 있어야 사회 전체가 7·30을 계기로 바다 밑바닥에서 올라올 수 있다. 그러한 부상(浮上)이 진정으로 세월호의 희생을 기리는 것일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