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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복희 "위안부 유린한 그 만행에 나도 떨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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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배우 윤복희씨는 눈 화장 이외엔 분장도 하지 않고 염색도 하지 않는다. 맨얼굴 그대로인데도, 무대에 오르면 청춘으로 보인다. [사진 ㈜뮤지컬 꽃신]

“위안부 피해자들의 아픔을 담은 뮤지컬 만든다고 해서 어떤 역할이라도 좋으니 하겠다고 했죠. 할머니들 살아계실 때 위로가 돼드리고 싶었어요.”

 30일부터 다음 달 17일까지 서울 대흥동 마포아트센터에서 공연하는 뮤지컬 ‘꽃신’에 재능기부로 출연하는 윤복희(68)씨는 “아픈 역사를 우리 국민에게 더 많이 알려서 다시는 나라가 힘이 없어 이런 슬픔을 겪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고령 현역 뮤지컬 배우로 창작 초연 뮤지컬 ‘꽃신’에 출연한 그는 이 작품으로 지난 14일 제8회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 딤프 어워즈에서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꽃신’에서 그는 일본군 장교 스즈키 역을 맡았다.

 “위안부들에게 너무나 잔인했던 일본군의 행태에 같은 인간으로서 치욕감을 느끼고 일본군 사령관을 죽이는 인물입니다. ‘나도 여자로서 이건 정말 진절머리가 난다’고 하죠.”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 할머니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뮤지컬 ‘꽃신’은 제작진 ·배우 모두 노개런티로 참여했다. 김진태·강효성·서범석 등 유명 배우들이 출연한다.

 1952년 뮤지컬 ‘크리스마스 선물’로 데뷔, 올해로 63년째 뮤지컬 무대를 지키고 있는 그는 “평생 뮤지컬로는 번 돈보다 쓴 돈이 더 많다”고 말했다. ‘빠담빠담빠담’ ‘피터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등의 초연작에 출연하며 번번이 출연료를 받지 못했다.

 “스폰서를 못 구해서예요. 차비만 받아도 다행이었죠. 요즘도 창작 뮤지컬은 제작비 메우기가 힘들어요. 해외에 로열티 내고 만드는 라이선스 뮤지컬에만 투자가 몰리니까요.”

 그는 “우리 뮤지컬이 세계 시장에 진출하려면 우선 국내 무대에서 활발하게 만들어지고 공연돼야 한다”면서 “기업들이 라이선스 뮤지컬의 10분의1이라도 창작 뮤지컬에 투자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한국 ‘뮤지컬 1세대’인 그는 칠순을 앞둔 지금까지 여전한 현역이다. “내년 4월까지 스케줄이 잡혀 있다”고 했다. 10월엔 한국전쟁 의용군을 소재로 한 신작 뮤지컬에 엄마 역으로 출연하고, 내년 2월엔 후배들이 그에게 헌정하는 뮤지컬 무대에 오른다. 그의 일생을 드라마 뮤지컬로 그린 작품이다. 또 11월부터는 국내외 공연장을 순회하며 단독 콘서트를 진행할 계획이다.

그는 “그저 흥미거리로 만든 허망한 작품, 유행가를 연결시켜 만든 주크박스 뮤지컬엔 출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메시지가 분명한 작품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르”라고 덧붙였다.

 “아직도 연출·제작자들의 출연 제의가 끊기지 않으니 감사하다”는 그에게 건강 관리 비법을 물었다.

 “그런 거 없어요. 배가 부르면 식곤증이 오니까 공연 전에 많이 안 먹는 것 정도랄까. 성대 근육도 계속 쓰니까 노화될 틈이 없나봐요.”

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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