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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정부, 일본 약탈 문화재 환수 적극 나서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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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일본이 일제 강점기 때 한국에서 반출해간 문화재 목록을 작성했으면서도 한국의 반환 요구를 우려해 숨겨온 것으로 밝혀졌다. 또 1965년 한국에 일부 문화재를 반환하면서 희소가치가 큰 문화재는 제외한 정황도 드러났다. 일본 시민단체인 ‘한·일회담 문서 전면공개를 요구하는 모임’이 그제 홈페이지에 올린 도쿄고등법원 판결문에서 확인된 사실이다.

 오노 게이치(小野啓一) 일본 외무성 동북아과장은 일 정부를 대리해 도쿄고등법원에 제출한 진술서에서 “시민단체가 공개를 요구한 문서에는 그동안 한국 정부에 제시하지 않았던 문화재 목록이 포함돼 있다”며 “이를 공개할 경우 한국이 반환을 요구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공개 대상 문서에는 한국에 양도한 일부 서적에 대해 학술적 평가가 낮다는 일본 관계자의 발언도 포함돼 있다”고 밝혀 가치가 작은 문화재 중심으로 반환이 이루어졌음을 시사했다. 그는 “반출 경위가 공개될 경우 한국 정부와 국민이 일본에 대해 강한 비판적 감정을 갖게 될 것”이라는 말도 해 불법적으로 강탈한 문화재도 있음을 암시했다. 그의 견해를 받아들여 도쿄고등법원은 1심 판결을 뒤집고 비공개 결정을 내렸다.

 한·일 양국은 65년 ‘한·일협정’을 맺으면서 부속 조약 중 하나로 ‘한·일 문화재 및 문화협력에 관한 협정’을 체결했다. 협정에 따라 한국은 약 4000점의 문화재 반환을 요구했지만 일본은 1431점만 반환했다. 하지만 이번 판결문을 통해 당시 일 정부는 한국의 반환 요구에 대비해 광범위한 목록을 작성했고, 그중 희소가치가 작은 일부 문화재만 돌려준 것으로 확인된 셈이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파악한 일본 내 한국 문화재는 6만6800여 점에 달한다. 이 중 상당수는 일본이 약탈해 간 문화재일 개연성이 크다. 전체 목록과 반출 경위를 알면 한국이 당연히 반환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에 일 정부도 그동안 숨겨온 것이다. 새로운 사실이 드러난 만큼 정부는 정확한 진상부터 파악해 일본에 요구할 것은 요구하고, 따질 것은 따져야 한다. 내년은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이 되는 해다. 문제를 제기하기에 좋은 타이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