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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람] "나눔과 자비는 내 삶의 모든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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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인생을 최후까지 활화산처럼 살다 가고 싶어요."

세계 52개국의 가난하고 병든 이들을 도운 박청수(朴淸秀.66) 원불교 강남교당 교무. 교무직 정년(68세)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가운데 그가 '나눔'과 '자비'를 국내외에서 의욕적으로 펼치고 있다.

그는 지난달 25일 캄보디아 제2도시 바탐방에 무료 병원을 열었다. 당시 구호품을 받기 위해 모여든 5백여명의 주민들에게 일일이 옷을 나누어 주기도 했다.

朴교무는 지난 3월엔 경기도 용인에 수도권 최초의 대안중학교인 헌산중을 개교했다. 지난해 전남 영광에 문을 연 국내 최초의 대안중학교인 성지송학중에 이어 두 번째 대안중학교다. 이 학교를 세울 때는 현지 주민들의 반발로 마음고생을 한 탓에 척추 연골이 빠져 39일간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그래도 현재 44명의 학생이 집과 같은 학교에서 공부하고 지내는 것을 보면 설립과정의 시름은 눈 녹듯이 사라진다고 한다.

갑자기 2개의 대안학교를 세운 것은 94년 대한성공회 송경용 신부가 서울 봉천동에서 비행청소년들을 위한 쉼터를 운영하는 것을 본 게 계기가 됐다.

"미래가 불확실한 청소년들에게 애정을 쏟는 것이 이상하게 보였어요. 그때까지 장래성 있는 사람에게 많은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죠. 제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 인생의 길목에서 방황하는 청소년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1937년 전북 남원서 태어난 朴교무는 9세 때 아버지를 여의었다. 27세에 혼자 된 어머니는 자신의 삶에서 큰 좌절감을 느꼈던지 딸에게 그같은 삶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서 시집을 가지 말라고 했다.

"어머니는 여자가 며느리로 살면 아무리 똑똑하고 부지런해도 칭찬받기가 어렵다고 하셨어요. 이왕이면 넓은 세상에 나가서 많은 사람들을 위해 큰 살림을 하라고 당부하셨죠. 특히 고향에 있는 교당 교무님의 삶을 흠모해 교무(원불교 교역자)가 되라고 하셨죠."

딸을 교무로 만들기로 작정한 어머니는 朴교무가 전북고녀(현 전주여고)를 다니는 동안 나중엔 입을 수 없다며 색색의 고운 치마 저고리를 만들어 입혔다고 한다. 朴교무는 59년 19세 때 출가했다.

그는 30대엔 국립맹학교 시각장애 학생들을 교화하면서 시각장애자 스스로 원불교 교전을 점자로 만들도록 했다. 또 75년 이후 지금까지 천주교 복지시설인 성 라자로 마을 한센병 환자들을 보살폈다.

그가 해외봉사에 눈을 돌린 것은 88년 서울서 열린 세계도덕재무장회의(MRA)에 참석하면서부터다.

"캄보디아의 한 젊은이가 눈물을 흘리며 오랜 내전으로 인해 겪는 참상을 소개했어요. 길거리를 헤매는 고아들, 식수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지뢰 등…. 젊은이가 빈손으로 돌아가면 안된다는 생각에 강남교당을 중심으로 모금운동을 벌여 1백만원을 지원했어요."

또 인도 북쪽의 히말라야 3천6백m 고지에 있는 라닥에 학교를 세웠다. 또 물이 없어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우즈베키스탄의 고려인들을 러시아 남부의 볼고그라드로 이주시켰다. 최근에는 이라크 전쟁 부상자를 돕기 위한 성금을 대한적십자사에 기탁했다.

글=하재식,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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