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치범에 겁먹은 河씨 "10억 줄테니 놔주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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河씨를 납치해 살해하기까지는 40분도 걸리지 않았다.

지난해 3월 공기총을 맞고 숨진 여대생 河모(22)씨 피살사건을 수사 중인 경기도 광주경찰서는 15일 오전 5시부터 河씨가 납치된 서울 강남구 삼성동 모 아파트 앞에서 현장검증을 시작했다.

현장검증에서 河씨를 납치.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尹모(41).金모(40)씨는 河씨를 승합차로 납치하고 검단산 중턱에서 河씨의 머리에 공기총 여섯발을 쏴 살해하기까지 범행 과정을 재연했다.

수갑을 차고 포승줄에 묶인 채 현장에 나타난 尹씨 등은 사건 당시를 재연하면서 때때로 죄책감에 온 몸을 떨기도 했다.

특히 金씨는 쌀부대에 싼 河씨를 산에 내려 놓고 공기총으로 살해하는 장면을 재연하는 과정에서는 눈을 감은 채 얼굴을 돌렸고 尹씨는 심경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죽고싶다. 죄송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현장 검증은 지난해 3월 6일 오전 5시30분쯤 이들이 승합차를 세워 놓고 河씨 아파트 출입구 양쪽에 잠복해 河씨를 기다리는 장면부터 시작됐다. 이들은 수영장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선 河씨가 승합차 옆을 지나가는 순간 양쪽에서 달려들어 河씨를 차안으로 밀어넣었다.

겁에 질린 河씨가 "아저씨, 10억 줄테니 놔주세요"라고 사정했지만 金씨는 테이프로 河씨의 눈과 입을 가리고 두 손을 묶었다.

尹씨 등은 올림픽대로를 약 30분간 달려 오전 6시5분쯤 미사리 카페촌 인근의 검단산 기슭에서 내렸다. 金씨가 河씨를 쌀 부대에 넣은 뒤 어깨에 메고 산으로 올라가자 尹씨는 트렁크에서 공기총을 꺼내 金씨를 뒤따랐다.

金씨는 50m 정도 산을 오른 뒤 河씨가 든 부대를 내려 놓고 尹씨로부터 공기총을 건네받았다. 河씨와 사돈뻘인 尹씨는 차마 살해 장면을 볼 수 없었는지 공기총을 넘겨주고 바로 산을 내려갔고 잠시 후 여섯발의 총소리가 정적을 갈랐다. 공포에 질린 河씨는 비참하게 죽음을 맞기까지 비명 한번 제대로 지르지 못했다.

이들은 河씨를 살해한 뒤 곧바로 승합차를 타고 인천시 창전동 사우나로 이동, 오전 8시24분쯤 공중전화로 범행사실을 尹모(58)여인에게 보고하는 장면까지 재연했다.

손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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