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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 공감대 옅어지자 ‘유족 배려 폭’ 놓고 다른 목소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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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5호 04면

세월호 참사 100일을 맞아 24일 팽목항 방파제에 ‘하늘나라 우체통’이 설치됐다. 진도군교회연합회와 사단법인 ‘하이패밀리’가 가족을 찾지 못한 이들의 아픔을 위로하고 떠나간 이들을 기억하기 위해 만들었다. [뉴시스

“세월호 피해자. 도대체 왜 특별히 하늘같이 비싼 사람들인가? (…) 의사상자. 현재 국가유공자가 받는 연금액의 240배까지 받을 수 있는 대우라고 한다. 이러니 ‘시체장사’라는 말이 나올 만도 하다. (후략)”

세월호 100일 … 우리 사회 배려와 포용은 어디까지

‘김지하 시인의 세월호 가족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라는 제목으로 최근 일간베스트 등 인터넷 사이트 게시판을 통해 퍼진 글의 일부다. 글에는 ‘개인 목적의 여행을 하다 사고를 당한 사람들인데 어째서 국민 모두가 물어 줘야 하느냐’는 내용과 ‘전원 의사상자 지정은 터무니없다. 비겁한 거지 근성’이라는 적나라한 표현까지 담겨 있었다.

확인 결과 이 글은 김지하(73) 시인이 쓴 것이 아니었다. 김 시인은 중앙SUNDAY와의 통화에서 “나는 컴퓨터도 제대로 쓸 줄 모르는 ‘컴맹’이다. 누군가 나를 가장해 쓴 것”이라고 말했다. 김 시인의 부인인 김영주 토지문화관 이사장도 “해당 글을 네이버와 다음 등 주요 포털 사이트에서 모두 삭제토록 했는데도 계속 퍼지고 있다. 상황이 심각해지면 고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참사 100일째이던 지난 24일에는 보수단체인 대한민국 어버이연합 회원들이 집회를 보러 온 여학생 2명에게 막말을 쏟아내 학생들이 울음을 터뜨리는 일도 있었다. 두 학생 모두 세월호특별법 찬성을 주장하는 전단을 들고 있었는데, 이를 본 회원들이 “유족도 아닌 것들이 쇼를 한다” “간첩이 시켰느냐”며 소리를 질러 벌어진 일이었다.

현재 세월호 가족대책위원회가 주장하는 특별법에는 ‘의사자 지정’이나 ‘대학특례입학’과 관련된 요구사항이 담겨 있지 않다.

하지만 이 사안들은 어느새 특별법을 둘러싼 여론의 주요한 프레임(Frame)을 형성했다. 익명의 누군가가 올린 거짓 정보들이 ‘반대 진영’의 논리로 파고드는 상황이다. 슬픔의 공감대는 옅어졌고, 찬반 갈등은 거세졌다. 일각에선 우리 사회에 배려도 포용도 없어졌다는 한숨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공정 세계관’이 분열 가속 역할
세월호 침몰사고가 일어난 지 100일을 넘자 국민이 슬픔의 정서에서 벗어나 이성적·합리적인 판단을 하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가장 최근에 일어난 사건을 기준으로 삼고 상황을 평가·판단하게 된다는 ‘신근성 효과(Recency Effect)’ 때문이다. 근래 일어난 논란을 중심으로 다른 사례와 비교 분석을 하는 등 합리적인 방안을 찾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 틈을 ‘특별법이 전원 의사자 지정과 대학 입학 특혜를 위한 것’이라는 ‘거짓·과장 정보’가 파고들었다. 주로 인터넷 공간을 통해 확산됐다. ‘세월호 유가족을 도와야 한다’는 공감대가 이미 절대적으로 우위를 차지한 가운데 이에 대해 ‘아니다(No)’를 외치기는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놓고 반대 의견을 내기 힘든 오프라인의 상황은 되레 온라인상 반대 여론에 불을 붙였다. 반발심에서다. 가족대책위원회가 나서 ‘우리는 의사자 지정과 대입 특례를 요구한 적이 없다’는 내용의 인터넷 홍보문을 직접 만들어 배포하고 있지만 논란은 쉬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사회심리학자 최창호 박사는 ‘공정 세상관(Just World Belief)’이 분열을 가속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듯 노력한 만큼 거둬야 한다는 우리 내부의 의식을 일컫는다. 나에게 직접적으로 피해가 되지 않아도 누군가에게 과다한 혜택이 가는 것은 불공정하다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자신의 논리에 맞는 정보만 인지하게 되기 때문에, 설령 그것이 잘못된 정보일지라도 이를 확대해 받아들이고 있다는 게 최 박사의 설명이다. 찬성도 반대도 서로 의견을 듣지 않고 평행선을 달리게 된 것이다.

“보수적일수록 공정성 훼손 경계”
조너선 하이트 뉴욕대 교수도 중앙SUNDAY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이념적 차이로 인해 공동의 의견을 도출해 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하이트 교수는 그의 저서 『바른 마음』에서 ‘옳은 의견’들끼리 서로 맞부딪힐 때는 각자 의견이 나오게 된 기저를 살펴야 한다고 설명했다.

세월호 유가족의 고등학교 3학년 자녀 및 단원고 3학년 학생들에 대한 대학특례입학을 예로 들었다. 이 소식을 접한 사람들은 직관적으로 ‘찬성’ 또는 ‘반대’에 손을 들게 되는데, 이 선택은 개개인이 살아온 배경에 의해 정해진다는 것이다. 만일 희생자 가족 대학 특혜에 대해 마음이 불편하다는 느낌(직관)을 인지했다면 그 사람은 ‘공정함’에 대한 사회적 가치를 중요시하는 배경에서 자라 왔을 것이란 설명이다. 반면 이 특혜에 대해 당연하다고 인지했다면 그 사람은 감성적인 공감에 더 길들여진 삶을 살았을 거란 이야기다.

여기서 든 배경이 ‘이념’이다. 하이트 교수는 “진보 성향의 사람들은 보다 감정적으로 더 열정을 가지고 피해자를 도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데 비해 비교적 보수에 있는 사람들은 ‘공정성’에 무게를 두는 경우가 많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국가적인 비극을 겪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슬픔의 공감대에 있는 것은 당연하다”며 “다만 사고로 죽지 않은 사람들에게까지 특혜를 주는 것에 대해서는 도덕심리학적으로 볼 때 공통적으로 동의를 할 수 있을지 확실치 않다”고 말했다.

하이트 교수는 ‘우리’와 ‘그들’이 각각 다른 느낌을 받고 다른 주장을 하는 이유는 각자에게 각기 다른 이념적인 배경이 내재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관용 꼭 필요한가” 사회 가치관도 변화
관용(tolerance)과 포용에 대한 사회적 가치와 생각도 예전과 달라졌다. 영국 철학자 마이클 레이스윙은 “관용은 다른 의견을 묵살시키는 모순점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양성이 높아진 현대사회에서 관용이 아닌 것은 무조건 ‘그른 것’으로 여기는 것 또한 관용의 정신에 어긋난다는 아이러니를 이야기한 것이다. 과거엔 ‘당연히 옳은 것’이던 관용이 이제는 일종의 ‘편견’으로도 여겨지는 것이다.

소수집단을 우대하는 내용의 미국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도 최근 ‘역차별’ 논의에 부딪혀 금지 철퇴를 맞았다. 2006년 미시간주가 주민투표로 통과시킨 ‘인종·성별·피부색·출신 민족 및 국가를 근거로 차별하거나 우대해선 안 된다’는 내용의 주 헌법 수정안에 대해 당시 인권운동가들은 ‘연방 수정헌법의 평등보호 조항을 어긴 것이 아니냐’며 소송을 냈다. 이에 대해 연방대법원은 지난 4월 “유권자가 투표로 의결한 것을 법관이 바꿀 권리는 없다”며 ‘어퍼머티브 액션 금지’에 합헌 판결을 내렸다. 앞서 텍사스대에 지원했다가 이 조항 때문에 불합격했다며 소송을 낸 백인 여성 애비게일 피셔 건에 대해서도 연방대법원은 지난해 6월 피셔의 손을 들어 준 바 있다. 과거의 잘못을 후대가 대신 짊어지는 것에 대한 생각도, 사회의 잘못을 개인이 대신 변제해야 하는지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도 줄곧 이어지고 있다.

‘소유’ 강박 버리고 서로의 의견 경청해야
일각에서는 ‘왜 세월호 희생자에게만 특혜를 주느냐’며 불편함을 드러낸다. 수능만 해도 “각종 사건사고로 가족을 잃고 수능을 쳐야 하는 이들에게도 특혜를 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나온다. 이는 세월호특별법 반대 서명운동으로까지 번졌다. ‘4·16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 및 피해자 지원 등에 관한 특별법안’이 올라온 국회 입법예고 사이트에는 960건의 반대 서명이 올라왔다.

최창호 박사는 “우리 사회가 아직 소유하는 것에 대해 강박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높아 남에게 나눠 주는 것에 대한 가치관이 정립되지 않았다”며 “우리 사회는 아직 과도기에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공정세상관을 파괴하지 않으면서도 사회적 포용이 이뤄질 수 있도록 문화 토대가 형성돼야 할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미국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 교수는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도덕적 의견이 다르더라도 이를 서로 경청하고 수용하며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상호 존중의 토대가 마련될 것”이라고 밝혔다. 도덕적 이견을 보이는 철학 문제에 대해 자꾸만 질문하고 도전해야 더 ‘좋은 삶’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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