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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위기」… 염려할 정도는 아니 라지만|현재론 물량걱정은 거의 없어|이란제재 계속되면 「변리」예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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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자원패권주의가 낳은 모순>
『소련군은 드디어 중동공격을 개시했다. 목적지는 「이란」 최대의 유전인 「아바단」. 미대통령은 국가안보회의를 긴급소집, 무력대응을 논의하고 있다」
가상소설 「석유전쟁」의 이 같은 한 토막이 과연 80년대의 극한적인 현실로 나타날 것인가.
아니라면 일본에서 방영돼 충격을 던진 「유단」 같은 소동이 머지 않아 우리들 가까이 에도 닥쳐 올 것인가.
미국 및 주요 서방국가들의 대 「이란」 집단경제보복 움직임에 대해 「이란」이 소련을 포함한 동구권과의 무역증대로 맞서겠다고 나섬으로써 석유 위기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있다.
「이란」은 실제로 일본· 「포르투갈」 에 「배럴」 당 35「달러」 의 원유공급을 중단하고 서독 등에 대해서도 중단경고를 함으로써 미 측 입장에 동조하는 나라에 관해서는 앞으로 석유를 영구히 전면 금수 하겠다는 태세다.
『중동의 현대사는 포연이 아니라 검은「잉크」(석유)로 얼룩져 있다』는 비유처럼 중동의 중요한 정치적 사건 이면에는 항상 석유이권이 도사려있기 마련이다.
사실「이란」혁명의 목표도『석유자원을 왕의 지배에서 국민의 손으로』라는 「슬로건」을 달성하는데 있었다.
「검은 황금」의 혜택이「이란」내의 특수계층, 국외의 특정집단에만 독점돼서는 안도고「이란」국민전부, 세계전체의 이익으로 분배돼야 한다는 것이 「호메이니」의 석유 철학이다.
이러한「호메이니」의 노선에 모순되는 자원패권주의가 미국의 속셈이니 만큼 미·「이란」관계는 자연 팽팽히 맞설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서방측에 대한 「이란」 의 단유 조치가 전반적으로 실현된다해도 단기적으로는 세계석유시장에 파국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 전망이다.
현재 석유 소비국 들의 원유 비축 량은 약50억 「배럴」로 이것은 배급제를 실시하지 않고서도 1백일을 지탱할 수 있는 방대한 양이므로「이란」 의 석유구입이 불가능해지더라도 서방석유사정이 당장 혼란에 빠지는 것은 아니다.

<하루 백만 배럴 공급과잉>
서방세계는 올해 사용하기를 원하는 석유는 하루 2천9백만 「배럴」인데 현재 OPEC의 총 산유량이 하루2천9백만 「배럴」 가까이되고 비OPEC의 생산까지 합하면 세계석유시장은 하루 1백만∼1백50만 「배럴」 의 공급과잉이 빚어지고 있는 상태다.
공급과잉으로 인한 가격하락을 방지하기 위해 「쿠웨이트」 「리비아」는 4월1일을 기해 또다시 각각25%, 17% 감산을 단행해 자원보호 및 고유가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이밖에 「베네쉘라」 (16%),「나이지리아」 (10%), 「아랍」 토후국연방 (5%) , 「알제리」 (2%) 등도 금년 중 석유생산을 감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러한 감산을 고려하더라도 전체OPEC산유량은 하루2천9백만 「배럴」 수준을 유지할 것이고 이 정도의 공급은 서방 소비국 들의 80년도 수요량과 거의 일치하는 수준이다.
이러한 석유수급의 균형관계로「이란」 이 석유의 전면 금수를 단행하더라도 금년 나머지 기간동안은 세계수요를 충당할만한 석유가 현물시장에서 남아돌고 있는 실정이다.
시장질서로 봐서는「석유위기」가 도래할 소지가 없다. 그러나 미국이 군사행동을 취하든지 또는 장기간에 걸쳐 금수가 계속된다면 일부 소비국 들이 심리적 불안감을 느껴 현물시장(「배럴」당35∼38 「달러」)에서 석유를 구입하게돼 유가앙등이 일어날 가능성이 짙다.
또 하나의 변수로 중동 산유국 및 회교권이 「이란」 석유 금수조치에 가세한다든지, 대폭적인 감산을 통해 서방측 집단제재에 반발한다면 『제3의 「오일·쇼크」』가 일어날지도 모른다.

<일·서독은 뒷거래 가능성>
한편으로 「이란」이 단유한 석유 량을 동구 등 제3세계에 적정히 소화시키지 못하면 「이란」 자체 안의 재정적인 혼란을 면키 어려운 경지이다.
「이란」 의 단유 로 가장 타격을 받을 나라는 언뜻 일본처럼 보인다. 일본은 「이란」석유의 최대 수입국으로 공급 단절 때 총 석유 수입량의1O%에 해당하는 하루 52만「배럴」 의 수입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9할 가까이 완성된 30억「달러」규모의 일본·「이란」석유화학 (IJPC) 「프로젝트」가 걸려있고 철강·전자·기계제품의 대「이란」수출이 막연해지기 때문이다.
서독 역시 「이란」으로부터 하루 30만 「배럴」 (총 수입량의 10∼15%)의 수입이 불가능해지고 12억 「달러」규모의 대「이란」수출 길도 막힐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서독은 1백25일의 비축 분이 있고 일본은 95일의 비축 분이 있으며 「이란」 원유를 수입하지 않더라도 2년간은 충분히 견딘다는 것이 업계의 전망이다.
미국에 대한 경제적 이해관계 때문에 일본·서독이 겉으로 동조하는「포즈」를 취했지만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이란」과의 이해일치로 뒷구멍 거래를 통한 실리를 찾을 것이 뻔하다.
「프랑스」는 「팔례비」왕 때 투자하다 중단된 원자력·고속도로·지하철공사를 재개하기 위해 미국과도 등을 돌리면서까지 「이란」 과 의 관계를 유지하려 애쓰고 있다.
문제는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가난한 나라들이다. 2∼3일분의 비축 량도 없는 비 산유 개발도상국들이 마지막 손해를 덮어 쓸 수밖에 없다. 그것도 「이란」에 의해 「친미적」이라고 낙인찍히면 더욱 그렇다.

<세계전체의 이익 중요>
어쩌면 대「이란」관계에서 예기치 못할 사태로 또 한 차례의 석유위기를 몰고 올지도 모를 미국의 대 「이란」 석유 의존도는 총 수입량의3·9%.손해를 봐도 제일 마지막에 가서야 올 극히 안전한 나라다.
이 밖에도 미국이 「우방」 에 대해 대「이란」경제제재에 동조를 강요한 것은 인질석방이라는 도덕적 명분을 내세워 미·일간의 자동차·철강·전자제품 경쟁, 미·EEC간의 핵· 철강마찰에서 경제적 실리를 따내려는 고도의 정치 「데크닉」으로 보는 의견도 있다.
「이란」은 대외적으로는 단유 엄포를 연발하면서도 1백50억 「달러」의 외환보유고를 바탕으로 동독·「체코」·인도 등에 식량·의약품등생필품수입선의다변화를꾀하고있다.
73년 제4차 중동전이 발생하기 전 미국이 당시 「사우디아라비아」「파이잘」왕이 충고한대로 강경 조치를 취하지 않았더라면 제1차 석유위기를 몰고 오지 않았을 것이라는 교훈은「세계전체의 이익」을 위해 오늘의 미국이 깊이 되새겨 봄 직하지 않을까.

<이흥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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