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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명물 조랑말 종마장 만들어 보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한라산중턱 너른 초원에 삼삼오오 짝을 지은 조랑말과 망아지물이 기운차게 뛰놀고 있다.멸종돼가는 제주명물 조랑말의 보호 위해 제주도가 설치한 「조랑말 종마장」이 바로 이곳이다.

<도내 3천마리뿐>
당국이 조랑말보호에 눈을 돌린것은 지난해부터였다. 65년까지만해도 도내에 2만마리나 있던 조랑말이 불과 14년후인 초년엔 3천마리로 줄었음이 밝혀지자 각계에서 보호운동이 일어났다. 이대로 버려두면 5년안에 모두 멸종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이에 도는 한라산국유지 1백km에 종마장을 만들어 도내에서 우량종 조랑말 44마리를 확보, 번식작업을 시작했다. 금년엔 다시 50여마리를 더들여와 1백여마리의 종마를 확보키로 했다. 이 종마들로 우량종을 계속 번식시켜 조랑말의 멸종을 막아보자는 계획이다.
조랑말이 제주에 뿌리를 내린것은 7백여년전인 고로 충렬왕 원년인 1275년.
몽고계의 침략에 대항해 김통정장군의 삼별초가 제주에 건너와 진을 친후 마지막까지 항전했으나 고려정부군과 몽고계의 연합군에게 패하고「탐라국」은 원의 속령이 됐다.
원은 이곳을 일본정벌을 위한 군사기지로 삼을 속셈이었다.
이를 위해 충렬왕 2년에 몽고말 1백60필을 가져와 한라산기슭에 방목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제주명물 조랑말의 시원이다.
이때부터 제주에는 목마장이 설치돼 한때는 그 수가 3만여마리를 헤아릴 정도로 번성했다.
조랑말은 체구는 작지만 힘이 세고 성질이 온순한데다 병에도 잘 걸리지 않아 쓸모가 많았다. 또 잡초만으로도 기를 수 있어 인명이 부족했던 옛날에는 농업용가축으로 군마로도 이름을 날렸다.

<고려때 원서입?>
원을 멸망시킨 명나라에서도 제주조랑말을 보내말라고 고려와 이조 조정에 요구했을 정도였다. 이조에 들어와선 제주는 국축양마대목장으로 지정돼 판관·현감등이 감목관을 겸직하기도 했다 태종초에는·제주마의 번식규정과 말을 잃어버릴때의 벌칙을 만들었다.
이는 명나라가 계속 말을 보내줄 것을 강요하면서 『제주마는 당초 원나라가 방목한 것이니 이말들을 모두 중국으로 옮겨가자』는 말이 나돌았기 때문. 또 이조조정은 유학시 군마 수송이 어려운 점등을 고려, 진도·용해도·안면도·강화도·함경도에 마양장을 만들어 옮겨갔고 전라도등 내륙지방에도 목장을 조성해 보호했다.
이렇게 번성하던 조랑말도 현대화의 물결에 밀려 내리막길을 걷게했다. 농업과 교통수단의 기계화로 실용가치를 잃으면서 기껏 유원지의 놀이용으로나 쓰이게 됐다. 강원도 등 산악지방의 산림업무용으로 발탁돼 화제를 모으기도 했지만 그 수요는 불과 10여마리뿐.
제주주민들도 쓸모없는 가축을 기르기 귀찮아 해수는 급격히 줄었다.

<기계화에 밀려나>
71년부터는「개사료용」으로 마리당 20만원내외의 헐값에 매년 수백마리씩 일본으로 팥려나가는 어처구니없는「수모」도 당해야 했다. 이렇게 「수출」된 것이 75년까지만 1천4백60마리. 이후 수출은 중단됐었으나 금년들어 재개돼 벌써 1백마리가 팔려나갔다.
도당국이 뒤늦게나마 설치한 종마장으로 당장 멸종위기에선 벗어나게 됐지만 각계의 뜻있는 사람들은 이번기회에 아예 조랑말을 천연기념물로 지정 보호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제주=신상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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