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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활로 찾아 내실다지는 화랑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불황의 늪을 좀처럼 헤어날것 같지 않던 화랑가가 봄기운과 함께 차차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호황기의 그때처럼 전시회가 줄 잇고 전시장마다 관람객이 넘치는 그런 활기가 아닌 조용한 속에 진정한 고객을 찾아보자는 화랑들의 변모가 그것이다.
내적인 면에서 충실을 다지는 것만이 불황을 이길 수 있다는 화랑들의 뒤늦은 자각은 아직은 미미하지만 확실히 80년의 봄을 새롭게 해줄 것 같다. 실상 전시회의 숫자로 본다면 올 봄의 화랑가는 지난해의 유례없는 불황이 여전히 도사리고있음을 증명해준다.
그러나 4, 5월로 예정된 각 화랑의 기획전은『변모해 보겠다』는 그들의 다짐을 엿 볼 수 있는 알찬 전시회들. 한동안 발표가 뜸했던 중진작가들을 초대, 진지한 작가의 세계를 보여주겠다는 것이 그들의 계획이다. 우선 지난해에 개점 휴업상태로 불황을 관망만 해오던 동산방이 올 상반기에는 굵직굵직한 전시회를 마련하고 있다.
극세필의 채색화가 정은영씨의 초대전에 이어 동양화가 김동수씨와 이영찬씨가 5, 6월에 있을 초대전에 대비해 준비가 한창이다.
신세계 화랑에서 개인전을 갖는(5월4일∼9일)조각가 전??진씨도 그간「그룹」전을 통해 산발적으로 발표해 왔지만 본격적인 개인 작품발표는 5년여 만이다.
근대조각의 선구자라고도 불러지는 김종영씨의 국립현대미술관 초대전 역시 올 봄의 볼만한 전시회로 손꼽을 수 있다. 50년대의 작품부터 전시되고 있어 김씨 개인의 세계뿐 아니라 우리나라 추상작가의 전반적인 흐름을 조감해 볼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한편 올 봄 화랑가의 최대 관심은 4일로 개관10주년을 맞은 현대화랑에 쏠리고 있다. 한두번의 전시회로 문을 닫는 화랑이 허다하며 5년을 채 넘기기가 힘들다는 우리의 풍토에서 10주년을 기록했다는 것은 이 화랑의 경사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고 미술계 인사들은 입을 모은다.
상업화랑의 첫 주자「그룹」에 끼어 유일하게 성공했다고 할 수 있는 현대 화랑은 이제 우리나라 화랑의 본보기로서 큰 책임이 지워졌다.
오늘의 현대 화랑을 이끌어온 박명자씨는『10주년을 맞고 보니 앞으로의 10년이 더욱 걱정될 따름이다.
이제는 역량 있는 젊은 작가에게 눈을 돌러 정도를 걷는 화상으로서의 책임을 다해야겠다』고 말한다.
화랑마다 서서히 변모의 양장을 보여주기 시작하는 것은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게 된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뜻하는 것이다. 몇몇 인기작가의 비슷비슷한 그림으로 호황을 누렸던 우리의 좁은 미술시장이 이체는 한계에 이른 것이다.
웬만한 수집가라면 가질만한 그림은 다 가졌고 이제는 안목도 그만큼 높아졌다는 이야기다.
『화가들의 작품남발시대도 끝났다. 이제 무언가 새로운 것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고객들을 다시 끌어들일 수가 없다』고 한 미술 관계자는 지적한다.
『작품본위의 미술시장이 형성되지 않고 자존심 없는 껍떼기만의 작품만 남발하면 더 깊은 불황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고 미술평론가 이경성씨는 말한다. <이재숙 기자><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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