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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통거듭하면서도 민주원칙 고수(터키)|군·경찰의 중립이 사태악화막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한달평균 3백명희생>
외국인들이 보기에 「터키」는 지금 뜨거운 항아리같다.
의회민주주의의 의상만 걸쳤을뿐 몸은 만신창이가 된 꼴이다.
65년부터 시작된 학생시위는 70년대부터 정치적 폭력사태를 몰고와 난무하는 「테러」와 경제파탄의 시련은 10여년이 되도록 치유되지 않고있다.
우익과 좌익,회교두의「수니」 파와 「시아니」 파, 「쿠르드」족등 독립을 추구하는 소수민족등 파벌들의 극단적인 대립항쟁은 국민의 생존권을 위협할 지경으로 몰고갔다.
심지어 「버스」를 타거나「카페」 에 가도 모든 「터키」인은 파릍 달리하는 「적」 들의 살기에찬 시선을 의식해야한다.
「테러리스트」들은 경찰을 뺨칠정도의 무장을하고있다.
고급관리들은 경호원을 대동해야하고 신문기자들까지드 최소한 호신용 권총을 소지해야할 정도다.
지난 1년간 한달평균 3백명을 희생시킨 정치폭력에의한 사망율은 세계최고기록이다.
사정이 이렇게되니 경제가 말이 아니다.
「에너지」부족으로 전국은 하루평균 4시간씩 단전조치중이고 수도 또한 태부족이다.
공공수송수단도 위축되어「버스」 정류장엔 승객들이 수십m씩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코피」에서 화장지에 이르기까지 생필품이 태부족이고 수백만 인구가 겨울을 난방시설없이 보냈다.
1인당 국민소득 1천1백30「달러」(78년현재)인「터키」는 인구4천2백만에 실업자 3백만명(실업율25%)이상인데다 악성 「인플레」 는 지난1년간 1백%를 기록했다.
또 공장가동율은 55%에 그치고있다.
「이란」의 회교혁명과 소련의 「아프가니스탄」침공도 회교도 99%인「터키」의 안보를 크게 위협하고 있다.
미국은 올해 2억 「달러」의 군·경원조를 약속했으나 나라가 이 지경이므로 국제통화기금을 비롯한 세계기구나 외국으로부터 투자를 유치할 입장도 되지 못한다.
그래서 정치폭력→경제파탄→실업자→정치폭력의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다.
정치적 혼란을 보면 당장이라도 「파시스트」적인 독재정권이 출현할 것같고 경제파탄을 보면 공산주의정권이 수립될 것처럼 우려되지만 「터키」 국민의 의회민주주의에대한 집념은 23년,공화제이후 흔들려본적이 없다.
정치폭력의 양대세력을 형성하고있는 우파는 「반공」을, 좌파는 반 「파시스트」를 각각 「슬로건」 으로 내걸고 격돌하고 있다.

<작년한해 인플레백%>
국민 거의가 회교도라지만「이란」혁명처럼 종교지도자에 의한 신정정치를 허용하지는 않는다.
반「유럽」,반중동적 요소를 갖췄지만 서구지향적인 「터키」 는 지난40여년간 친서방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1677년이래 13번이나 대소전을 치렀던 역사 때문에 74년의 「키프로스」 침입후 미국으로부터 무기금수조치를 당하는 고초를 겪으면서드 「나토」가맹국의 임무를 저버리지 않고있다.
민주주의 수호의 노력은 군의 자제와 경찰의 중립자세, 여당과 야당의 신축성있는 협조에 의해 뒷받침되고있다.
특히 국가의 위기가 고조될 때마다 군의 움직임이 내외의 주목을 끌었으나 지난 20여년간 군은 「민주주의의 수호자」역할만으로써 자제, 「터키」군 특유의 전통으로 되었다.
그렇다고해서 군부가 전혀 정치에 초연한 입장만 고수한건 아니다.
65년 교육제도개선을 요구하고나선 학생운동은 좌파학생의 정치운동으로 탈바꿈,53개교가 수업을 포기하는 사태로 번져「테러리스트」들이 학교를 점거하기에 이르렀었다.
7O년에 접어들자 「마르크시스트」 들이 준동, 정부 전복에의한 공산국가수립을 시도하자 71년3월 군부는 계엄선포하에 정치에 개입했다.
계엄은 3년간 계속됐으나 소요는 그치지앉았그 73년10월총선에서 사회민주공화당의「에체비트」가 수상으로 당선,사대수습에 나섰다.
「에체비트」 는 계엄하에서도 좌익의 항쟁이 그치지않은것을 고려,좌파의 정치범들을 석방,공산주의자들을 합법화한것이 지금까지 계속 불씨가 됐다.
대항세력인 우파도 더욱 강경책으로 맞서 오늘에 이르고있다.
지난 5년동안 줄잡아 3천명이 정치폭력으로 희생됐다. 내각의 주역은 69년10월선거이래 정의당(현수상)의「데미렐」 과 사회민주공화당의 「에체비트」 (전수상)가 번갈아 맡아왔지만 해틀 거듭할수록 파벌의 대립은 더욱 날카로와지기만 했다.

<신정불허·친서방유지>
78년12월6일 좌·우 폭동으로 3백명의 사상자가 발생,3개도시의 대학교가 휴교조치, 67개성가운데 13개성이 다시 계엄하에 들어갔다.
좌·우의 대립은 회교도의「시아」 파와 「수니」파와의 알력과 결부돼 「터키」는 올들어 해만지만 정치 「테러」가 횡행하는 공포의 나라가 돼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군은 민주수호의 전통을 고집,아직까지도 질서유지를 위한 계엄임무만 수행하고 있을 뿐 그 이상의 정치개입을 않고있다.
「터키」 의 고민은 이념을 달리하는 반대파에 양보심이 없고 「테러」범들이 쉽사리 무기를 소지할수 있으며 경제파탄으로 실업청년들이「테러」행위에 가담하는 범위가 날로 넓어져 가고있는뎨 있다.
그러나 이같은 악조건하에서도 자유로운 언론과 노조활동,사법권독립,복수정당제등 민주주의의 기본「룰」에 대해서는 군을 비롯한 전국민이 지지를 거두지 않고있는것이 「터키」 정치의 특징으로 높이 평가받고있다.<조동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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