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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79)제68화 개헌축사 발췌개헌파동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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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국회에 대한 정부의 압력은 터무니없는 것이었다. 계엄선포와 함께 서민호의원을 재구속한 것은 물론 주요 야당의원들을 국제공산당 관련혐의로 체포·감금하는 짓은 끔찍한 납치사건이요 불법적인 폭거였다.
국회에서 계엄령해제를 결의하고 체포된 국회의원을 석방하라는 결의를 했지만 정부로부터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정부의 이같은 태도에 통탄한 나머지 당시 부통령이던 김성수씨가 이승만대통령을 정면으로 공박하고 나섰다.
「5·26」정치파동 사흘후인 5윌29일 김부통령은 그를 선출한 국회에 부통령사임 청원서를 제출했다. 청원서는 다음과 같은 장문의 것이었다.
『내가 부통령에 취임한후 「각하」라는 칭호를 폐지하기로 국무회의에서 정식 결정되어 널리 공고됐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에게도 「각하」라고 부르는 자가 뒤를 그치지 않을뿐 아니라 극단한 예로는 「부통령폐하」라는 존칭을 써서 나에게 송환해오는 자가 있을 정도다.
이 웃지못할 사실에 접하고 나는 우리국민을 급속히 민주화하기 위해서는 한 사람이 거의 황제에 가까운 강대한 권한을 쥐고있는 현행 대통령제를 개변치 않으면 안되겠다고 통탄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직선제라는 것은 현 집권자의 재선을 의미하는 것이며 그가 재선되면 장차 국회는 그의 추종자 일색으로 구성될 것이며 그후에 그는 3선·4선을 가능케 하도록 헌법을 마음대로 주물러 고칠수 있을 것이니 이처럼 하여 종신대통령이나 세습대통령이 출현하지 않으리라 누가 보장할수 있겠는가.
그전에 이박사는 대통령직선제를 압도적으로 부결하고 내각책임제를 재석의원 3분의2 연명으로 제안한 국회를 「민의배반」이니 「의회독재」니 「반민족적」이니 하여 함구할뿐 아니라 무지막한 일부 정상배를 선동하고 관력을 이용하여 소위 소환운동, 국회의원 규탄운동을 개시하였다.
그리하여 전시속의 사회질서를 교란케 하고 도처에 혼란을 일으켜 국민을 불안 공포에 빠뜨리고 심지어는 난도들로 나의 집을 포위하고 「국회를 타도하라」「국회의원을 총살하라」고 규탄할 지경에 이르렀다.
한편으로 그는 단순한 정당방위 사건에 지나지 않은 서민호의원 문제를 구실삼아 암암리에 국회와 정부를 이간·반목케 함으로써 폭력행사에의 길을 닦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이때까지도 아직 이 나라 최고집권자가 그래도 완전히 사직을 파멸하려는 반역행동에까지 나오리라고는 차마 예기치 못했다.
그랬더니 그는 돌연 비상계엄의 조건이 하등 구비되어 있지 아니한 임시수도 부산에 계엄을 선포하고 소위 국제공산당과 관련이 있다는 허무맹랑한 누명을 날조하여 50여명의 국회의원을 체포·감금하는 폭거를 감행했다. 이는 곧 국권을 전복하고 주권을 빼앗는 반란적 「쿠데타」가 아니고 무엇인가.』
실로 신랄하고 대담한 비판이었다. 불안한 사태속에서 나온 김부통령의 사임은 소위 국제구락부사건의 불씨가 되었다. 독재를 위한 갖가지 술책과 이에 대항하는 여론이 맞서 사태가 점점 악화되자 재야중진 정치인들이 그냥 있지 않았다.
특히 민국당 간부들을 비롯하여 이박사의 시책에 반대하는 모든 재야세력들이 독재화를 막고 법치국가를 수호하기 위해 깃발을 올리려고 단합했다.
궐기대회의 준비위원으로 이시영·김성수·김창숙·장면·조병옥·서상일·전진한·유진산·최희송씨등 각계각층 지도자 60여명이 나서서 자주 회합을 가졌다.
「3·1」운동과 같은 강력한 구국운동을 전개하자는데 의견을 모으고 자금조달등 준비에 착수했다.
52년6월20일 부산시내 양식집인 국제구락부에서 드디어 대회가 열렸다. 회의장 입구에는 「문화인간담회」라는 표지가 붙어있었다. 많은 재야인사들이 모여들었다. 긴장된 분위기에서 개회가 선포됐다. 대회장 입구에 붙여진 표지와는 달리 회의장 정면에는 「호헌구국선언대회」라는 현수막이 나붙었다.
대회장인 서상일씨가 77명이 미리 서명한 호혜구국선언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한 때에 폭력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수많은 폭도들이 대회장에 돌입했다. 폭도로 가장한 일부 경찰관들까지 합세하여 대회장을 일시에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이들은 의자·화분등을 닥치는대로 내던져 중경상자를 냈을뿐 아니라 유리창등 기물을 파괴했다.
서상일·김창숙씨등은 타박상을 입었고 조병옥씨도 화분으로 면상을 다쳤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유진산·김동명·이정내·최희송·주요한씨등이 40여일간 경찰에 구속됐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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