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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영화 속 멋진 동양인 이소룡뿐? 편견 확 깨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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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한국에서 영화 ‘서울 서칭’을 촬영 중인 재미동포 벤슨 리 감독. [강정현 기자]

“(바나나 껍질을 벗겨 보이며) 아들아. 너 이게 뭔지 아냐?”

 “바나나요.”

 “아니야 이건 너야. (미국에서 바나나는 속어로 ‘백인처럼 행동하는 동양인’이란 뜻이다.)

 “요점이 뭐예요?”

 “넌 한국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내가 가르치려고 노력했지만 너를 비난하진 않겠다. 대신 이번 여름에 넌 한국에 갈 거다.”

 (2012년 7월 더 포트폴리오 TV 인터뷰 중)

 재미동포 영화감독 벤슨 리(Benson Lee·45)가 1986년 17세의 여름을 한국에서 보낸 이유다. 그는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고 있다. 제목은 ‘서울 서칭(Seoul Searching)’이다. 내년 1월 미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열리는 선댄스영화제 개봉을 목표로 현재 한국에서 3분의1 정도 촬영을 마친 상태다. 촬영이 없는 날을 골라 지난 20일 서울 한남동의 한 카페에서 리 감독을 만났다. 인터뷰는 영어로 진행됐다.

 캐나다 토론토에서 태어난 그는 갓난아기 때 2년 정도 한국의 조부모 손에서 큰 뒤 줄곧 캐나다와 미국에서 자랐다. 필라델피아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 아버지는 그를 한국에서 열리는 2주짜리 ‘재외동포 하계학교’에 보냈다. 당시 그는 미국 주류사회에 편입하길 기대하면서도 동시에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가르치는 부모와 갈등을 겪었다. 그는 혼란스러웠다. 그런데 캠프에서 역시 같은 문제를 겪고 있는 프랑스·브라질에서 온 또래 친구들을 만났다. 그들과 어울려 민속촌, 비무장지대(DMZ)를 견학 다니며 한국에 대해 배워나갔다. “부모님의 권위적인 모습이 굉장히 싫었다. 그런데 한국에 와서 보니깐 그게 부모님이 나를 사랑하는 방식이구나 싶었다. 한국에 대해 좀 더 궁금해졌다. 결국은 아버지가 날 한국에 보내신 게 좋은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86년 서울여름학교를 배경으로 모국의 역사와 문화를 배우기 위해 각국에서 몰려든 10대 한인 소년·소녀들의 사랑과 우정을 그린다. 영화 속 주인공인 뉴욕 출신 ‘시드(배우 저스틴 전)’에 리 감독의 어린 시절 모습이 투영돼 있다.

리 감독은 “미국에선 누구나 자아를 확립해 나가는 ‘소울 서칭(soul searching)’이란 시기를 겪는다”면서 “보통 미국인처럼 한국 아이들이 서울에서 시행착오를 겪고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그는 “영화를 즐겨보던 학창 시절, 브루스 리(Bruce Lee·이소룡) 말곤 영화 속에 멋진(cool) 동양인이라고는 없었다. 지금도 영화 속 동양인은 여전히 무술을 하거나 어눌한 영어를 쓰고 있다”며 “어린 친구들을 위해서 또 다른 롤 모델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점에서 이번 영화는 “나의 복수(revenge)”라고도 덧붙였다.

 그는 영화 속에서 80년대 한국 모습을 그릴 예정이다. 당시 활발했던 민주화 운동을 예로 들며 “내 또래 학생들이 거리에 나서는 모습이 숭고하게 느껴졌다”고 했다. 영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1992)이 아름답다고도 극찬했다. 좁은 교실 안에서 벌어지는 일상이 한국인의 사고방식·권력 구조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오히려 재미동포에 대한 일부 한국인들의 편견을 걱정했다. “이 영화를 통해 해외에서 자란 우리의 청소년기가 어땠는지 들여다 보고 이해를 해준다면 좋겠다. 한국어는 잘 못하지만 한국에 대한 자부심만은 최고다.”

글=위문희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벤슨 리=한국 이름 이경수. 하와이대에서 한국학을 전공하고 뉴욕대에서 영화를 공부하면서 영화계에 입문했다. 1998년 선댄스영화제에서 한인계 감독 최초로 ‘미스 먼데이’로 심사위원특별상을 수상했다. 주요 작품으로 다큐멘터리 ‘플래닛비보이’(2007), 영화 ‘배틀오브비보이’(2013)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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