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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화 개헌비사 발췌개헌파동(5)|민의 조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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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정부가 제출한 대통령 직선제 개헌안이 국회에서 겨우 19포의 지지밖에 얻지못하고 무참하게 부결되자 이승만대통령은 크게 노했다. 국회에 대한 노골적인 불쾌감이 표시되고 심지어 협박으로 해석되는 담화가 계속 발표됐다.
이박사는 자신이 제출한 개헌안을 부결해버린 국회를 가리켜 『하늘아래 둘도 없는 국회』라고 비난했다. 이래가지고는 국정이 이루어질 수가 없고 국회안에는 공산당의 조종으로 나라를 어지럽히는 극렬분자들이 있다고까지 폭언했다.
그리고 그는 『국회의원들이 민의가 어떻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각 선거구의 유권자들이 소환을 결정하고 그러면 그대로 실행할 따름이다』는 내용의 담화를 냈다.
이박사의 노한 담화에 따라 당시 여당노릇을 하던 원외자유당은 각 시·도 당부에「개헌안을 부결한 배신국회의원규탄운동」을 전개하도록 지시했다 정부제안개헌안을 부결한 배신국회의원을 규탄하는 「국민대회」를 개최하고 개헌지지결의문을 국회와 원외자유당으로 보내라는 것이 지시내용이었다.
대한청년단 총본부는「개헌안부결에 관한 국민운동전개」를 각도·구·군단부에 명령했다.
국민회·한청·노총·부인회등 각 사회단체와 공동으로 이 국민운동을 벌였는데 운동의 목표는 민의를 무시하여 국민의 기본 귄리를 박탈한 국회의원들을 국민의 이름으로 소환한다는 것이었다.
운동방법은 시 읍·면 단위로「거사」 하되 「민중회의」 와 「벽보전」 을 병행한다는 지시였다.
국민회 중앙본부도 민중대회 이외에 개헌안부결 반대 강연회 및 좌담회 개최·연만항의문 작성등의 방법을 지시했다.
정부의 어용단체들이 전국에서 들고일어났고, 일부 지방에서는 경찰이 이들과 합동작전을 폈다.
군민대회와 면민대회가 열리고 거기에서 결의문이 채택되면 국회로 보내졌다.
주로 청년단이 민의를 발동하는 선발대가 되었다. 그러나 이들보다도 「백골단」 이니 「땃벌떼」니 하는 정체불명의 단체이름으로도 「민의」가 표현됐다.
민의를 무시하고 국민의 주권을 말살하려는 국회의원은 「백골단」이나「땃벌떼」의 총권을 받으라는 식의 전단이 살포되는가하면 국회의원 집으로도 전달되고 거리에는 벽보가 나붙었다.
전쟁만으로도 생명과 가족의 신변, 나라의 장래가 걱정스러운판에 이러한 협박장과 공갈이 난무하니까 그 불안은 도저히 결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같은 소란속에서 근 한달이 지난후 국경감사로 휴회에 들어갔던 국회가 다시 열리게되자 국회의원 소환이 큰 쟁점으로 부각됐다.
2월16일 국회에 출석한 허정총리서리·장석윤내무·조진만법무장관을 상대로 의원들의 격분한 발언들이 터져나왔다.
서민호의원(고흥을) 이 맨 먼저 『헌법에도 명시되어있지않은 국회의원 소환운동에 대해 당국에서는 하등 조치가 없을뿐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는 장려하고있는 것같은 인상을 국민들에게주고있으니 이 나라는 민주주의를 지향하는가, 아니면 전제주의를 지향하는가』고 맹렬한 공격을 펴고 나왔다.
이어 태완선의원(영월)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싸우고있는 민주 우방들의 외국인이 전주마다 붙어있는 종이 쪼가리등을 볼때 이 나라를 과연 민주주의 국가로 여길것인가, 민주주의 체제로 볼 것인가, 창피하고 눈물이 나올지경』 이라고 비판했다. 장석윤내무장관은 벽보의 출처에 대해 국민회와 한청의 소행이라고 말하면서도 『법이 없어단속이 어렵다』 고 답변했다.
조진만법무장관은 『법무부나 경찰당국의 견해로서는 이것이 범죄에 해당한다는 단점을 내리기에는 아직 이른것 같다』 고 얼버무렸다. 그러나 사태는 국회가 의원소환 움직임의 합법성 여부를 따지는것이 무색해질 정도로 더욱험악해졌다.
2월18일 국회가 회의를 시작한지 약1시간만인 상오11시께 「전국애국단체투쟁위원회」 라는 이름을 내세운「데문대가의사당으로 몰려온것이다.
「민의」는 지방에서만 발동된게 아니라 백여명의「데모」군중으로 바뀌어『민의를 무시한 국회는 해산하라』 , 『민의를 묻기위해 국회의원을 새로이 선거하라』 는 등의 「플래카드」를 내세우고 전단을 뿌리며 피난수도의 한복판을 어지렵혔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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