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교장 자살' 재토론 결정했다 번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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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지난 13일 오후 11시10분부터 80분간 진행된 KBS-2 TV '100인 토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교장 자살 사건과 전교조'가 참석자들의 항의로 재토론이 결정됐다가 번복되는 등 진통을 겪고 있다.

특히 일부 참석자들은 "인터넷 토론에서는 압도적으로 전교조 반대 의견이 많았는데, 실제 투표에서는 그 반대로 결과가 나왔다"며 토론 조작 가능성까지 문제삼고 나섰다.

이날 프로그램에는 황석근 한국교총 대변인.송원재 전교조 대변인 등이 패널로 참석, 보성초등학교 서승목(57) 교장 자살 사건에서 전교조의 대응이 적절했는지를 놓고 토론을 벌였다.

이어 배심원으로 참석한 1백명에게 어느 쪽을 지지하는지 전자투표를 실시했다. 사전 조사를 거쳐 전교조 지지 30명, 반대 30명, 중립 40명으로 구성된 배심원단이었다.

제작진은 투표의 키를 쥔 40명의 경우 인터넷으로 토론 참가 의사를 밝힌 사람들 중 특별한 지지 성향이 없는 주부.대학생 등을 위주로 뽑았다고 설명했다.

사건은 배심원 투표 결과가 발표되면서 시작됐다. 투표 결과 (전교조 측의) '정당한 사과 요구'라는 의견이 57표로 '과잉대응'(40표) 쪽보다 많은 것으로 나타나자 장내는 술렁이기 시작했다.

분위기를 감지한 진행자 정진홍씨가 "인터넷 투표에서는 8대2로 의견이 거꾸로 나타났다"며 "숫자 자체에 큰 의미를 두지 말아달라"고 진화에 나설 정도였다.

그러나 대전학부모협의회 양한성(43) 사무처장 등 반전교조 입장 배심원들은 "버튼을 누른 순간에는 빨간불(과잉대응)이 훨씬 많았는데 결과는 반대로 나타났다"며 이의를 제기했다.

이들은 분명히 '과잉대응'쪽에 버튼을 눌렀다는 58명의 서명을 받아 오전 4시까지 정정방송을 요구하며 항의농성을 벌였다. 교총 측은 "실제 배심원들과 결과가 같은지 직접 일일이 대조 확인하겠다"며 제작진에 배심원 명단 제출을 요구했으나 제작진은 관행상 불가능하다며 이를 거부했다.

제작진은 "투표 조작이나 기계적 결함은 있을 수 없으며, 배심원들이 빨간색 버튼과 초록색 버튼을 바꿔 눌렀을 가능성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이런 설명에도 문제가 가라앉지 않자 김영국 책임 PD와 최석순 담당 PD는 배심원 대표에게 "다음주 같은 시간에 똑같은 패널과 주제로 토론을 하겠다"는 내용의 서약서를 써 줬다.

하지만 KBS는 14일 재토론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판단, 사실상 입장을 철회했다.

KBS의 한 고위 관계자는 "담당 PD가 거센 항의에 당혹한 나머지 그렇게 얘기한 것으로 본다"며 "방송사가 사실을 조작한 적이 없는데, 같은 사안으로 재토론을 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한편 이 프로의 전자개표기 운영업체 측은 조작설 자체를 부인하며 "평소와 달리 이날은 투표 버튼을 눌러보는 리허설이 없었다. 배심원들이 연습 삼아 버튼을 누른 것이 결과에 반영됐을 수는 있다"는 설명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방송계에선 이번 사건이 찬.반.중립 입장의 배심원을 3대 3대 4로 구성해 실제 여론과는 다를 가능성이 큰데도 민감한 주제를 굳이 투표에 부쳐 결론을 내는 기획 자체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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