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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규 집권 믿고 범행 은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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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정승화 전육군참모총장겸 계엄사령관(51)의 내란방조사건에 대한 국방부계엄보통군법회의(재판장 정원민해군중장, 심판관 최갑석육군소장·김재봉해군소장·김인기공군소장, 법무사 심한준육군중령)가 5일 상오10시 국방부군재법정에서 열렸다. 정 전총장이 합동수사본부에 연행된지 84일만에 열린 이날 군재는 정피고인에 대한 검찰관의 공소장낭독 및 인정신문에 이어 사실심리에 들어갔다.
관여 검찰관 원강희중령은 8「페이지」의 비교적 짤막한 공소장에서『정승화피고인은 김재규가 박정희대통령을 시해했다는 것을 알고도 그가 막강한 조직과 권력을 가진 현직 중정부장인데다 사건배후에는 방대한 추종세력이 있을 것이며 앞으로 그가 실권자가 될 것으로 판단, 그에게 동조하는 것이 현명한 처신이라고 믿고, 김재규의 내란행위를 도왔다』고 내란방조죄로 기소한 이유를 밝혔다.
검찰관은 정승화 전총장이 김재규의 내란행위를 도운 사례로 김재규가 박정희대통령을 살해한 뒤인 10월26일 하오8시25분부터 27일0시40분까지 4시간15분간의 정 전총장 행동을 들었다.
검찰관이 지적한 정 전총장의 내란방조 사례는▲10월26일 하오8시25분쯤 육본에서 보고의무가 없는 김재규에게 군수뇌소집·병력출동상황을 보고한 뒤 『계엄부대는 어디를 먼저 점령해야 되느냐』고 물어 옆에 있던 김정섭이 대답하자 이를「메모」했고 하오8시30분쯤 노재현 당시 국방부장관이 그곳에 도착하여『무슨 일이냐』고 물었으나 『각하가 만찬 중에 돌아가셨다』고만 말하고 김재규의 범행을 은폐했으며▲청와대 병력출동을 막아 김재규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 하오8시40분쯤 수경사령관에게 청와대포위를 지시하고 경호실차장에게는 수경사령관과 협조, 충돌 없도록 하라고 지시했고▲출동지시를 내렸던 육군○○부대와 ××부대가 통금전에 서울에 진입해 시민들의 동요로 김재규의 행동에 장애가 될까봐 하오9시20분쯤 당시 육군참모차장에게 출동중지지시를 내렸으며▲하오11시30분쯤 국방부장관과 함께 국방부장관보좌관실에서 김계원으로부터 대통령살해범이 김재규라는 신고를 받고 국방부장관이 체포지시를 하자 헌병감과 보안사령관에게『김재규를 시내안가에 정중히 모시라』면서 김재규의 신변안전을 도모하는 한편, 27일 0시40분쯤 김계원이 궁정동 만찬장에서 범인으로부터 빼앗았다는 권총1정을 제출받고도 사건현장의 위치·상황 등 파악에 신속한 대책을 취하지 않은 것 등이다.
검찰관 원강희중령은 검찰관 직접신문에서 정피고인과 김재규와의 관계를 소상히 물었고 정피고인은『김재규와는 62년 육군방첩부대장때부터 알게됐다』고 대답하는 등 김재규와의 관계에 대한 검찰의 공소사실을 대체로 시인했다.
정승화피고인은 검찰관의 직접심문에 답변하면서 『당시 김정섭차장보와 식사를 끝내고 과일과「코피」를 먹고 있을 때 총성이 들렸으나 나는 M-16의 오발정도라고 생각했고 청와대를 경비하는 초병들이 무슨 일이 있어 공포로 경고사격을 하는 것 정도로만 가볍게 생각했을뿐 박대통령과 김재규가 있던 곳에서 난 것으로는 생각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피고인은 『그때 총소리가 아주 멀리서 들려 나는 들었지만 김차장보는 못 들었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정피고인은『김재규가 범행 후 내가 있던 곳으로 와서 나를 납치」하려고 했다』고 말했으나 당시 나는 그때 상황을 별로 위급한 일로 생각지 않았기 때문에 정보부장이 육군중장을 납치할 이유가 없어 그가 차를 타자는 대로 탔을 뿐이었고 처음에는 남산으로 가는지도 몰랐다』고 말했다.
정피고인은 79년2월 육군참모총장에 임명될 때 김재규가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아느냐는 검찰관의 물음에 『그렇지 않다. 방해는 안 했지만 도왔다고 생각지 않는다』면서 김재규의 천거로 육군참모총장이 됐다는 말을 부인했다.
재판부는 검찰관의 사실심리가 끝나지 않은 채 낮12시 상오공판을 끝내면서 하오공판은 군사기밀에 관한 사항이 많기 때문에 비공개로 한다고 선언했다.
사실심리에 들어가기 전에 정피고인의 변호인 여동영변호인은 구두로 군법회의법3백6조에 따른 공판기일변경을 재판부에 신청했으나 재판부는 『이 공판은 이미 개정되어 있기 때문에 변호인의 신청을 기각한다』고 밝히고 공판을 진행했다.
여변호사는 『정피고인의 죄명은 김재규의 내란행위를 방조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김재규에 대한 내란죄 심리가 대법원에 계류중이며 그 결과에 따라 정피고인의 유·무죄가 큰 영향을 받기 때문에 김재규피고인에 대한 대법원 확정판결이 날 때까지 이 공판을 보류해달라』고 요구했다.
검찰부는 정 전총장을 내란방조죄로 기소하면서 형법87조1항(내란수괴)·동89조(미수범)·동32조(내란방조·종범)를 적용했다. 내란방조죄의 형량은 형법87조1항(수괴는 사형·무기징역에 처한다)과 동32조(종범의 형은 정범의 형보다 감경한다)·동55조(사형의 감경은 무기 또는10년 이상의 징역, 무기의 감경은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에 따라 무기징역이나 7년 이상의 징역에 해당하며, 계엄군법회의 관할관의 형량확인조치 과정에서 감경은 제한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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