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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진혁 칼럼] 記者들이여, 기죽지 말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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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언론계 대선배인 K씨로부터 며칠 전 이런 얘기를 들었다. 60년대 어느 해 정초 K기자는 당시 공화당 실력자의 한사람이었던 길재호(吉在號)의원을 만났다.

吉의원은 박정희대통령의 휴가여행에 따라가기 위해 막 나서려는 참이었다고 말한다. K기자는 그럼 나도 같이 좀 가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국가원수의 움직임은 공식이든 비공식이든 누군가에 의해 항상 관찰되고 기록돼야 한다.

옛날 왕의 언행도 사관(史官)이 일일이 기록했다. 휴가여행이라지만 기자 한사람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요지의 K기자의 말에 吉의원은 한참 묵묵히 있더니 "좋다. 같이 가자"고 했다. 그래서 吉의원의 주선으로 K기자는 대통령전용기를 탔다는 것이다.

*** '붕어빵 기사' 부추기는 정부

이 얘기를 소개하는 것은 민주주의와 언론자유와는 거리가 멀던 60년대 군출신 정치인까지도 정권이 '취재당하는 존재'임을 인정했다는 사실이 새삼 신통하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지금은 민주주의와 언론자유가 보장된 21세기다. 그러나 지금 기자들은 정부를 눈으로 보고 취재하는 기회를 봉쇄당할 위기에 처해 있다. 정부는 관청 사무실 취재를 금지하고 각 부처별 기자실을 없앤다고 한다. 대신 한 곳에 브리핑실을 만든다고 한다.

기자들은 브리핑과 발표를 들을 뿐 관청사무실을 찾아 취재할 수는 없게 됐다. 60년대 군출신 정치인도 인정한 '취재당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지금 정부는 사실상 거부하는 셈이다.

정부는 사무실출입을 금할 뿐 취재는 자유라고 말한다. 기자들이 요청하면 해당 관리가 별도 장소에 나와 취재에 응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세상이 다 알다시피 어떤 관리가 그런 방식으로 기자에게 진실을 털어놓을까. 하물며 대통령이 그걸 싫어하는 것을 다 아는 터에 관리가 그런 취재에 협조할까.

결국 정부는 관청취재는 하지 말고 일방적인 브리핑이나 발표만 들으라는 것이다. 발표란 '누군가가 관찰한 결과'가 아니라 자기 일을 자기가 말하는 것이다.

다 알다시피 자기에게 불리한 발표를 하는 관청은 없는 법이다. 제3자가 들여다 봤을 때 혹 발견할 수도 있는 문제점.부작용 같은 것이 발표에 담길 리가 없다. 같은 발표를 듣고 쓰는 기사는 같은 기사가 될 수밖에 없으니 그래서 '붕어빵 언론'이란 말도 나온다. '누군가의 관찰'이 없는 붕어빵 기사가 국민에 대한 올바른 정보제공이 될 수 있을까.

취재당하지 않으면 정부는 편할 줄 생각할지 모르나 아마 오산(誤算)일 것이다. 문제점이 언론에 노출되면 초기에 시정될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점이 있는데도 그냥 넘어가면 안으로 곪고 곪아서 터져버린다는 게 역사의 경험이다.

오래 감추다가 문제가 터지면 정부 전체가 휘청거리게 된다. 마음놓고 기자 접촉도 할 수 없는 막힌 관청에선 아마 양심선언과 같은 내부고발도 자주 나올 것이다. 일방적 발표에 분개하는 공무원이나 이해관계가 다른 관련기관 등에서 폭로.고발.제보하는 일이 왜 없겠는가.

이처럼 새 언론정책에는 허다한 문제점이 눈에 선한데도 새 정부의 많은 새 인물 중에서 고언.직언이 나왔다는 얘기가 없는 건 정말 이상한 일이다.

*** 官給기사 의존도 낮출 기회다

정부는 '오보와의 전쟁'도 선언했다. 오보는 당연히 없어져야 한다. 그러나 오보를 하고 싶어 하는 기자가 누가 있겠는가. 하지만 정부의 태도를 보면 마치 오보가 왜 좀 안 나오나 하고 벼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기자실 폐지든 브리핑제든 제도개선은 좋다.

문제는 그런 언론정책에서 느끼게 되는 적의(敵意).증오 같은 것이다. 오보전쟁이니 기사의도분석이니 하는 걸 보면 신문에 대해 칼을 갈아도 보통 가는 게 아니라는 느낌을 갖게 된다.

그러나 기자들이여, 기죽지 말자. 기죽을 이유가 없다. 군사정권의 계엄령과 검열과 보도지침을 다 겪은 우리다. 그때도 특종을 했고 폭로기사도 썼다. 유신과 5공(共)도 겪었고 DJ의 세무사찰 맛도 봤다. 관청에 못들어가고 관리 만나기가 힘들어도 취재할 길은 얼마든지 있다.

더 열심히 뛰고 더 전문지식을 확보하자. 취재원을 더 잘 보호하자. 그동안 우리 신문들은 관급(官給)기사 의존이 높다는 꾸지람을 많이 들었다. 이제 시정할 좋은 기회를 맞았다. 오늘의 시련과 강요되는 변화가 오히려 도약의 계기가 될 수 있다.

송진혁 논설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