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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보름의 나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부럼·이명주·약밥·오곡밥·더위팔기·지신밟기·동신제·편전·답교·기세배·줄다리기·횃불쌈·놋다리놀이·사자놀이.
대보름날의 민속이 이처럼 수런스러운 것을 보면 사뭇 서민의 명절 같다. 원일은 원래「신일」이라고도 하며, 이날은 근신하고 경거망동을 상가는 .정적인 명절이다.
그러나 상원일인 대보름날은 우두둑 부럼을 깨물고 징·꽹과리·장구·북을 치며 온 동네를 누비기도 한다. 맵고 추운 동절과 결별을 하고, 새봄의 활기를 만끽하는 것이다. 이처럼 대보름은 동적인 명절이다.
귀를 밝혀준다는 이명주나, 부스럼을 막는다는 부럼(종과)등은 우두 심신의 건강을 기원하는 속습이다.
상원날 아침 오곡밥을 넉넉히 지어 적어도 세집 이상이 나누어 먹어야 했던 풍습도 정답기 그지없다. 역시 이날 아침이면 친구 집을 찾아가 『내 더위 사가게(매)!』하고 외치는 것도 이웃과의 정의을 다짐하는 세습에서 버릇되었을 것이다.
신춘의 생기 속에서 이웃과 함께 이처럼 정분을 나누고, 의리를 두텁게 하는 우리의 민속은 그지없이 아름답기만 하다.
청·장년들이 농악을 울리며 동네의 어른 집을 찾아가 『주인·주인 문 여소. 나그네 손님 들어가오』라고 흥을 돋우는 지신밟기도 신난다. 마당·뒤뜰·부엌·광을 돌아다니며 그 해의 복을 빌어주는 것이다. 주인은 서둘러 떡과 과실과 술상을 차려놓고 이들에게 답례한다.
『동국세시기』에 보면 변전·석전에 관한 기록이 있다. 정월보름날이 되면 서울의 동서 남 3대문 밖의 사람들과 애오개(아현)사람들이 두패가 되어 만리현(만리동 고개)에서 돌 싸움을 벌인다. 만일 삼문 밖 사람이 문안으로 밀려들면 경기지방에 풍년이 들고 「애오개」 편이 이기면 서지지방에 풍년이 든다고 했다.
한낱 풍습이지만, 청년들의 기세를 올려주는 민속이었을 것이다. 옛 기록엔 고구려 사람들이 돌팔매로 수당의 침략을 물리쳤다는 고사도 있다 일제 때엔 이런 민속놀이가 일인들의 마음에 걸렸던지 금령이 내리기도 했었다.
답골로 부르는 「다리(교)밟기」는 남녀와 노소가 없다. 대보름날 저녁, 달을 바라보며 다리를 밟으면 1년 내내 다리 병을 앓지 않는다고 한다. 일세에는 액땜을 한다는 얘기도 있다. 아무튼 아낙네들도 다리 밟기를 핑계삼아 저녁 나들이를 할 수 있었다.
기세배는 부락끼리 농기를 돌고 나서서 서로 인사를 나누는 민속이다. 이웃과의 정의는 동네와 동네사이로 번져 화의를 나누는 것이다.
지금은 이런 풍습들이 모두 고사가 되었지만 대보름의 민속정신은 세월이 갈수록 깊은 향수를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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