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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충격 보고서…가해자 1위가 친 인척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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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다큐멘터리 `성폭력 보고서 - 난 악마를 만났다’ 캡처]

  중학생인 승미(가명·16)는 1년 넘도록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담당 전문의는 승미에 대해 "무기력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이 거의 없는 상태"라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걱정했다. 승미는 10살 때부터 3년간 교사인 의붓아버지에게 성폭력을 당했다. 뽀뽀를 한다면서 입 속에 혀를 집어 넣고 엉덩이와 가슴을 만지는 일이 다반사였다. 승미는 14살 되던 해 의붓아버지의 행동을 엄마와 가족에게 털어놨다. 그 과정에서 10살 위인 언니 영미(가명·26)씨 역시 똑같은 피해를 당해 왔다는 사실을 알았다.

승미 자매는 가해자인 의붓 아버지와 1년 째 법정 싸움을 벌였다. 가해자는 “아이들에게 뽀뽀를 한 적이 있지만 혀를 넣은 적은 없고, 귀여워서 엉덩이를 토닥거린 일은 있지만 옷 속에 넣어 만진 적은 없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법원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초범이라는 이유 등을 감안해 집행유예가 결정됐다. 영미 씨는 "몇 년 동안 수십번에 걸쳐 성폭력을 일삼았는데 초범이라는 이유 때문에 형이 감경될 수 있느냐"면서 "악마같은 사람이 처벌받지 않는 현실이 야속하다"고 말했다.

성폭력 가해자 중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집단은 다름 아닌 친인척이라는 충격적인 조사 결과가 나왔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조사다. 2013년 집계된 전체 피해 사례 3만 971건 중에 ‘부모 형제를 포함한 친인척’이 가해자인 경우는 4479건이었다. 가해자가 부모 형제(의부, 의모 포함)인 경우가 2297건으로 전체 친·인척 가해자 사례 중에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모르는 사람’이 가해자였던 경우인 4473건보다 6건이 더 많았다. 이어 동급생과 선후배(4374건), 직장 관계자(3913건), 동네 사람(2580건), 애인(2305건) 등에게 폭행 당한 경우가 많았다. 전체 성폭력 피해 사례에서 친·인척 가해자가 가장 많았던 경우는 처음이다.

이런 결과에 대해 황정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성폭력은 모르는 사람에 의해 저질러질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된 통념”이라며 “실제로 상담 현장에서 보면 가족에 의한 피해가 심각하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질적 처벌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혜선 변호사는 "성폭력 피해에 대한 심각한 충격은 아이가 자라서 성적인 의미를 이해하게 됐을 때 닥친다" 며 "가슴 정도 만졌다, 뽀뽀했다 이런 것들을 '큰 피해가 아니네' 이렇게 판단하는 건 맞지 않다"고 설명했다.

승미씨를 비롯한 친·인척 성폭력 피해자들의 충격적인 증언은 20일(일요일) 밤 10시 JTBC 다큐멘터리 '성폭력 보고서 - 난 악마를 만났다’(1부)를 통해 방송된다. 이번 JTBC-중앙일보 공동 프로젝트는 미래창조과학부·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의 제작 지원과 여성가족부의 취재 지원으로 진행됐다.

홍상지 기자 hong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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