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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미 준 佛서 회고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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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이타미 준(伊丹潤.66)은 "몸은 일본에 있지만 나는 한국 사람"이라고 말하는 재일동포 건축가다. 유동용(庾東龍)이란 본명 대신 쓰는 이름 이타미 준을 그는 "일본 생활을 위한 필명 또는 간판"이라고 부른다. 일제 강점기에 경남 거창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선친은 도쿄(東京)에서 낳은 그는 물론 칠남매 모두가 한국 국적을 자랑스러워하도록 교육시켰다.

이타미 준은 "한국인이라는 딱지 때문에 일본 국적을 지닌 이들을 대상으로 한 건축설계 경기에 나갈 수 없다거나 건축상을 줄 때 차별받는 불편 이외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했다. 불편이라는 한마디가 감추고 있을 상처와 슬픔을 그는 선한 웃음으로 덮었다. 2003년은 30여년 그의 건축 인생에서 한 정점을 이루는 해가 될 듯하다.

오는 7월 28일부터 9월 29일까지 프랑스 파리에 있는 국립기메동양미술관에서 한국 건축가로는 최초로 회고전을 열어 세계에 한국 건축이 일군 독특함을 자랑하게 됐다. 기메미술관의 피에르 캉봉 수석학예연구원은 "현대미술과 건축을 아우른 작가, 국적을 떠나 국제적인 건축세계를 지닌 건축가"로 그를 초대한 까닭을 밝혔다.

지난 11일 오후 서울에 온 이타미 준은 "이번 전시에서 한국의 힘을 보여주고 싶다"고 의욕에 넘쳐 있었다. 1968년 처음 한국 땅을 밟았을 때 그를 사로잡았던 조선 미술의 미감을 이제 세계인들 앞에 맘껏 펼칠 수 있게 됐다고 기뻐했다.

조선 도자기와 민화에서 흘러내린 전통이 배어든 것이 자신의 건축세계라고 말한 그는 지금도 한 달에 한번꼴로 서울 인사동과 장안평 고미술 골목으로 달려간다고 한다.

"따뜻한 우윳빛 표면, 손으로 만지면 절로 달라붙는 질감, 그 온기와 자연미를 그대로 집에 담고 싶었어요. 달항아리 같은 건축, 도시와 자연이 공존하는 건축, 손과 몸의 온기가 묻어있는 건축, 그 지역의 특성과 재료를 어우러지게 한 건축이 제가 만들고 싶은 집입니다."

지난해 그가 설계한 제주도 포도호텔은 제주의 오름과 전통 초가의 모양새가 잘 녹아든 건물로 벌써 제주의 명물이 되었다. 올 가을에 완공할 서울 인사동의 학고재 화랑도 전통의 거리가 품고 있는 세월의 흔적이 풍기는 나무를 소재로 썼다.

기메 회고전에 자신의 설계 도면과 모형 외에 대형 사진으로 실내를 현장처럼 재현한 뒤 도자기와 민화 등을 함께 선보이도록 꾸민 건 이런 그의 건축관 때문이다. 1백70여 출품작 가운데는 그가 그린 그림도 있다.

물감을 손가락으로 섞어 "캔버스 위에서 재즈 피아노 연주하듯" 움질거린 추상화다. 원래 화가가 되고 싶었던 그의 꿈이 늦게 꽃핀 셈인데 "곽인식, 이우환, 김창열씨 등 한국 화가들과의 교유가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이번 기메 회고전은 이타미 준, 아니 유동용이 한.일 건축의 다리 구실을 했다는 점도 평가받는 자리다. 일본 시세이도(資生堂)와 나란히 한국의 공간사가 협찬을 맡아 훈훈한 뒷얘기를 남겼다.

한국 국적을 지키며 이타미 준 건축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는 딸 유이화(庾梨花.29)씨에게 자신의 건축세계를 대물림하고 있는 그는 "제주 바닷가에 조그만 작업실을 짓고 파도처럼 살다 가고 싶다"고 했다.

글=정재숙,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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