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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의 평양 오디세이] 평양의 워터파크 … 남자들 '치맥' 먹고 피부관리까지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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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더워지면서 평양 주민들에게 가장 인기를 끌고 있는 곳은 문수물놀이장입니다. ‘평양판 알파마레(Alpamare)’로 불리는 워터파크인데요.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이 10대 시절 6년 정도 스위스에 조기 유학하면서 종종 찾았던 취리히의 대규모 물놀이공원 알파마레를 본뜬 것이라고 합니다. 대동강변 문수지구에 위치한 이곳을 김정은은 공사기간 중 7차례나 직접 찾을 만큼 공을 들였죠. 북한 관영매체들은 “희한한 물의 궁전인 문수물놀이장에 인민의 기쁨, 행복의 웃음소리가 한껏 넘쳐나고 있다”고 전합니다.

 1994년에 처음 공원 개장을 했지만 지난해 초 김정은의 지시에 따라 리모델링이 시작됐습니다. 공사 지연으로 여름철 개장 목표가 늦춰져 올여름이 제대로 된 첫 손님맞이인 셈입니다.

 문수물놀이장의 속살이 궁금하던 차에 며칠 전 입수된 북한의 컬러판 소개책자를 접했습니다. 체제선전용 사진·자료란 점을 감안해도 솔직히 예상보다 잘 지은 시설이란 생각이 듭니다. 15만8000㎡의 넓은 부지에 60m와 80m 길이의 ‘물미끄럼틀(워터슬라이드)’과 다양한 체육·편의시설 등이 들어서 있습니다. 꼼꼼히 살펴보면 실내·외 풀이나 인테리어·가구 등이 예전과는 확 달라진 세련된 모습을 드러냅니다. 홀터넥(Halterneck, 수영복·드레스가 끈 따위로 목 뒤에서 매게 돼 있는 것) 스타일이 유행인 걸 보면 곧 비키니로 옮겨 갈 듯합니다.

 ‘벼랑 타기’로 소개된 인공암벽 등반과 미국 명품 헬스기구 브랜드인 프레코(Precor)의 러닝머신이 설치된 체력단련장에 볼링장까지 문수물놀이장 안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미안실(美顔室)로 불리는 방에는 여성 피부관리사에게 서비스를 받는 남성들도 눈에 띕니다. 입장료는 3달러, 자유이용권은 14달러에 이릅니다.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이 지난해 10월 고위 간부들을 대동하고 완공된 문수물놀이장을 돌아보고 있다. [사진 노동신문]

 가장 눈길을 끈 건 해당화청량음료점이란 간판을 단 곳입니다. 서구 패스트푸드점 분위기에 동화 속 인물 같은 복장을 갖춘 여성 의례원(판매원)이 햄버거와 프렌치프라이·치킨·핫도그 등을 팔고 있는 모습입니다. 서구식 식음료 문화인 이른바 ‘양풍(洋風)’이 주민 일상생활로 자리 잡은 겁니다. 음식을 다루는 여성들이 손에 일회용 비닐 위생장갑을 착용하고, 일부는 마스크를 하고 있는 점도 예전에 볼 수 없던 모습이죠.

 인접한 해당화맥줏집에서는 생맥주까지 만들어 냅니다. 해당화빵집에서도 수영복 차림의 남성들이 대동강맥주를 놓고 즐거워합니다. 이번 브라질 월드컵을 계기로 북한에도 ‘치맥(치킨+맥주)’ 문화가 상륙했다는 얘기가 들립니다. 평양판 한류(韓流)의 추이도 지켜봐야겠습니다.

 이런 변화상은 김정은의 등장과 함께 예고됐습니다. 집권 첫해인 2012년 7월 김정은은 부인 이설주를 퍼스트레이디로 데뷔시켰습니다. 미키마우스가 등장하는 공연을 보고 미니스커트에 노출이 심한 가수들이 등장하는 모란봉악단 공연을 관람했습니다. ‘이 좋은 세상’이라며 지상낙원을 선전하던 노래는 ‘이 좁은 세상’으로 가사를 바꿔 “세계 추세를 따라잡자”는 구호로 진화하기도 했습니다. 김정은·이설주 부부가 해맞이식당 커피숍에 들르고, 팝콘을 함께 먹는 장면도 보였습니다.

 요즘 평양의 수퍼마켓에는 쇼핑 카트와 자동계산대가 등장했다고 합니다. ‘전자봉사카드’라는 일종의 포인트카드도 선보였다는 게 최근 평양에 다녀온 인사들의 귀띔입니다. 북한의 근로자 평균 월급은 북한 원화로 3000원 안팎인데요. 공정환율이 140~150원 정도인 걸 고려하면 20달러 정도 되는 금액입니다. 하지만 암달러상을 통하면 달러당 7300원에 이른다고 하니 한 달 월급이 1달러도 채 안 된다는 얘긴데 3~4달러 하는 평양호텔이나 해당화카페의 커피를 즐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건 놀랍습니다.

 한·미 정보 당국은 북한이 이런 대형 공사를 벌일 수 있는 돈줄과 자재·장비의 루트에 주목합니다. 유엔 등의 대북 제재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큰 구멍이 뚫렸거나 숨겨진 자금 흐름이 있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도 고민스러운 모습입니다. 스키장과 워터파크는 물론 고급 아파트와 체제선전성 우상화물 건설에 거액을 쓰면서도 정작 북한 주민들의 살림살이는 챙기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북 비판여론에 북한 노동신문은 “알파마레가 어때서?”라며 반발합니다.

 김정은은 2012년 4월 공개연설에서 “인민들이 허리띠를 조이지 않고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누리게 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아직 가시적인 성과는 보이지 않습니다. 북한 국방비는 지난해 전체 예산 중 16%(실제로는 은닉 예산 포함 30% 선)에서 올해 4월엔 15.9%로 0.1%포인트 낮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재래식 무기 등 군비 지출이 핵 개발로 인해 확 줄어들었으니 인민생활로 돌리겠다던 약속이 지켜지지 않은 겁니다.

 올 9월 인천 아시안게임의 응원단 파견 비용도 우리에게 떠넘기려 할 기세입니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땐 13억5500만원의 국민 세금이 북한에 쓰였고, 그중 4억8300만원이 288명의 북한 응원단 체류 비용이었습니다. 1인당 167만원의 남한 방문 경비를 우리에게 부담토록 한 겁니다. 이번에 또 북측 요구를 들어줄 경우 평양 지도부와 집권층에 나쁜 메시지를 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까닭입니다.

 특권층에 초점이 맞춰지다 보니 평등을 강조하는 사회주의 북한이 ‘10% 공화국’이 돼 버리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옵니다. 2400만 명의 인구 중 300만 평양시민이나 350만~400만 명의 노동당원만을 위한 세상이 되는 게 아니냐는 지적입니다. 일반 주민들이 김정은이 약속한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누릴 날은 언제 올까요. 

이영종 외교안보팀장

사진 설명

북한은 지난해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의 지시로 평양 대동강구역(구) 문수동에 종합물놀이 시설인 문수물놀이장을 개·보수했다. 9개월간의 공사 끝에 지난해 10월 15일 완공한 문수물놀이장은 실내·외 수영장에 아동용 수조(어린이풀 ①)와 물미끄럼틀(워터 슬라이드 ②)을 갖췄다. 또 부대시설로 햄버거와 치킨을 판매하는 패스트푸드점(해당화청량음료점 ③)과 미안실(피부관리실 ④) 등 편의시설도 등장했다. [사진 통일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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