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풍랑에 휘말린 올림픽|카터의 조건부 불참선언의 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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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896년 현대「올림픽」이 재건된 이래 이 인류평화의 제전은 그 존립의 뿌리가 흔들릴 정도로 최악의 위기에 처했다. 「카터」미대통령이 20일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으로부터 앞으로 한달 안에 군대를 철수시키지 않을 경우 오는 7월의 「모스크바·올림픽」에 미국이 참가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식으로 천명한 정책은 영국을 비롯한다는 서방 국 「이집트」·「사우디아라비아」 등의 중동 회교국 및 「중공」·「말레이시아」 등 일부 「아시아」국가들의 호응을 받아 「모스크바·올림픽」을 충분히 파산시킬 만한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이에 대해 소련은 『미국이 「올림픽」에 정치문제를 개입, 냉전체제로의 복귀를 꾀한다』고 비난하면서 『「모스크바·올림픽」은 꼭 감행할 것』이라고 응수했고 최근 「모스크바」에서 「쿠바」 「헝가리」·동독·「베트남」 등과 회합, 서방 국의 대거 불참 시엔 사회주의 국가대회 경기로 전환한다는 방침까지 비치고 있다.
국제 「올림픽」위원장 「킬 러닌」도 「카터」대통령의 성급한 결정에 반기를 들고 「올림픽」을 결행시키겠다는 태도를 견지하고있다.
확실히 외견상으로는 이번 사태에 관해 미국이 「올림픽」과 정치를 연관시키고 있음이 틀림없다. 이 때문에 최소한 「올림픽」정신 및 국제 「스포츠」의 범주에서는 「카터」정책이 설득력 있는 명분을 잃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카터」대통령은 한사코 『「올림픽」을 「보이코트」하겠다』는 것이 아니고 『「모스크바·올림픽」대회를 다른 곳으로 이전하거나 연기, 또는 취소할 것을 요구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엔 「모스크바」에 선수단을 파견하지 않을 것』이라고 「올림픽」보다 「모스크바」에 초점을 둔 조심스런 표현을 썼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심각한 평화에의 도전』이라는 소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대해 미국과 이해관계를 함께 하는 서독·「프랑스」 등이 「카터」와 같이 『「올림픽」참가여부의 결정은 국내 「올림픽」위원회의 소관』이라고 소극성을 보이는 것도 고유의「올림픽」성역만은 최대한 존중하겠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올림픽」이 현실적으로 정치의 풍랑에 시달리게 된 것은 이미 오래된 일이다.
52년 「헬싱키」대회 이후 「올림픽」은 소련 등 공산국가들의 체제 선전 장으로 제공돼 미국으로선 「울며 겨자먹기」식의 곤혹을 느껴 왔었고 이번에 3억7천5백만「달러」나 드려 호화시설을 갖춘 채 「올림픽」의 선전도구화에 꽃을 피우려던 소의 기도직전에 묘하게 「아프가니스탄」사태가 폭발, 미국에 좋은 구실을 준 격이다.
56년 「멜번」대회 때 소의 「헝가리」침략에 항의, 「스위스」·「스페인」·화란이 선수단을 철수시킨 것. 72년 「뮌헨」대회 때 IOC가 「아프리카」국가들의 압력에 눌려 인종차별 국 「로디지아」를 축출한 것, 76년 「몬트리올」대회 때 「캐나다」정부가 IOC의 비호아래 자유중국 참가를 봉쇄한 것 등 「올림픽」과 IOC의 정치오염사례는 허다하다. 결국 「올림픽」 등 「스포츠」는 아무리 그 숭고한 가치를 강조해도 개 개의 국가이익을 초월할 수는 없다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IOC나 각 NOC(각 국「올림픽」위원회)의 정치적 한계가 자명해지며 자율성이 최대한 보장된 미국「올림픽」위원회가 -대부분의 서방 국 NOC와 같이- 현재로선 「카터」의 정책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으나 결국엔 정부의 압력에 추종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올림픽」의 위기를 구제할 관건도 역시 미소 등의 정부에 있다.
따라서 「스포츠」계로선 「카터」대통령이 제시한 앞으로의 한달 동안에 「아프가니스탄」사태가 호전, 적의 철군이 이루어질 것에 가장 큰 기대를 걸 수밖에 없는 처지다.

<박군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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