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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정국은 19세기 식 식민전쟁|소련출신 정치학자 보슬렌스키교수, 「슈피겔」지와 회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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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이유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레닌」이 1922년 당시 외상「치체린」에게 보낸 각서 중에 「아주 뻔뻔스러워야만 목적을 달성 할 수 있다」는 내용이 있다. 처형당한 「아민」대통령이 CIA첩자라는 소련의 주장은 이런 충고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소련은 「아프가니스탄」과의 관계에서 정치적으로 곤란한 점은 없었다.
근대 「아프가니스탄」정권이 소련에 적대국으로 간주된 일은 없었다. 냉전기간 중에도 양국관계는 오히려 소련-제3세계 국가 간 평화공존의 전형적인 모범이었다. 소련에 있어「아시아」의 「아프가니스탄」은 「유럽」에서의 「핀란드」와 같은 존재다. 「아프가니스탄」이 적대국도 아니고 문제를 일으키는 곳도 아니므로 오로지 세계적인 세력 상황관계에서 이번 사태를 파악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친소성향이 있던 전임 대통령 2명을 희생시켰단 말인가.
『이들 2명뿐 아니라 「아프가니스탄」과의 전통적인 친선관계까지 희생했다.
유감스럽지만 소련은 언제나 자기네와 우호적이라고 평가했던 나라들에 대해서만 무력개입을 해왔다.
1939년 소련은 「폴란드」와 「히틀러」에 대한 군사동맹을 맺은 다음 「폴란드」를 침공했고 「발틱」3국과는 우호조약을 체결하고 나서 합병했다.
"뻔뻔스러워야 목적달성"
「핀란드」에 대해서는 우호조약체결을 제의하고는 교섭 중에 이 나라를 침략했고 45년에는 소련과 불가침조약을 맺고 있던 일본과 전쟁을 벌렸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우호관계를 맺었던 나라들이 겪은 전례가 아니라 소련지도층이 이런 결정을 내릴 때는 우호관계라든가 전통·여론을 고려하지 않고 전반적인 세력상황만 염두에 두고 냉혹하게 행동한다는 점이다.』
-같은 공산주의 우방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인가.
『사회주의라도 「체크」「캄보디아」「아프가니스탄」의 예에서 보듯이 그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는 어떤 희생이라도 무릅쓴다. 최근 소련이 「스탈린」을 치켜세우는 것도 「스탈린」식 방법으로 소련 류의 공산주의를 세계적으로 실현할 수 있으며 그렇게 해야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크렘린」지도자들이 노쇠하여 현상이나 유지하려드는 보수주의라는 인상을 주어왔다. 게다가 대내적으로 문제가 산적하여 외부에서 위기를 무릅쓸 필요가 없으리라는 관측이었다. 서방이 긴장완화를 추구한 것도 이러한 판단에 근거를 둔 것이었는데….
『이번 문제와 긴장완화정책과는 연관이 없다. 긴장완화정책은 어느 정도 환상에서 출발한 것이다. 물론 소련은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소비사회의 눈으로는 소련이 만성적으로 뒤져 있다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당 관료 등 소련지배계급의 눈에는 소비보다 더 급한 게 있다. 그래서 소비를 억제하고 군비에 막대한 예산을 쏟아 넣는 것이고 이 군비가 이번 「아프가니스탄」에 투입된 것이다.
-일반국민은 「아프가니스탄」침공을 달갑지 않게 생각하는가.
『국민들은 분명히 대포보다는 「버터」를 좋아한다』
-소련이 모든 위험을 계산하고서 결정을 내렸을까?
『나는 「모스크바」가 한가지만 실수했다고 믿는다. 「아프가니스탄」의 반항이 소련에 의해 진압된다고 치자. 그리고 나서 소련이 얻는 점이 무엇이겠는가. 조그맣고 째지게 가난한 나라니까 계속 지원해 주어야할 것이고 반항을 진압하더라도 그전보다 더욱 불확실한 상황에 빠질 것이다]
소비억제·군비에 막대한 예산
-그렇지만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점을 차지하지 않았는가.
『그 대신 「이슬람」 세계와 제3세계와의 관계에서 심각하고도 장기적인 곤욕을 치러야 할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전쟁은 「무솔리니」가 「에티오피아」에서 저질렀던 것과 같은 19세기 식의 식민전쟁이다.』
-제3세계가 소련의 이 행동을 신 식민주의로 규정지을까.
『제3세계 국가들의 주요과제는 경제발전이다. 그런데 비군사적인 부문에서 소련은 자신이 취약하므로 이들 국가를 돕지 못할 것이다. 경제적 원조는 서방만이 할 수 있고 제3세계와 자연스레 맹방이 될 것이다. 소련이 스스로 제3세계편이라고 하지만 이번 식민전쟁은 정반대의 효과를 낳을 것이다. 그 대가는 아주 비싼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서방과의 긴장완화가 후퇴하는 것도 그 대가가 될 것 같은데….
『긴장완화는 그 자체가 바람직한 것이기 때문에 계속돼야 할 것이다. 그러나 서방측은 이번 소련의 행동에서 드러난 「놀이의 규칙」(Rule of Game)에 주의해야한다. 다시 말해 군사분야에서 힘의 균형을 취해 균형을 이룰 때까지 양측이 군비감축을 하든가 다른 한쪽이 군비를 증강한다는 점이다.』
-서방측이 「아프가니스탄」사태에 대해 취할 수 있는 반응은?
『「아프가니스탄」사태는 소련의 정치적인 호의라는 것이 금방 그 반대로 포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들어내 주었다.
「아프가니스탄」형제당의 위대한 지도자였던 「아민」대통령은 하룻밤 새 미 CIA의 첩자로 낙인찍혀 처형됐다. 이는 소련이 공식적으로 서명하고 발표했던 약속이 믿을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드러냈다. 서방은 무엇보다 이런 점에서 소련을 알아야 한다. 소련은 서방에 대해 세력상황에 따라 「규칙」을 약속하고 있다. 나는 서방측이 소련의 목표와 「이데올로기」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는 이 「놀이규칙」을 인식하고 정책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반군 진압해도 사태는 혼미
-서방 역시 군사적인 힘의 정치(Power Politics)를 추구해야한다는 뜻인가.
『그건 힘의 정치가 아니라 하나의 현실적인 정치다. 아무리 약한 상대와 장기를 두는 경우라도 많은 말을 떼고 두면 승부는 불리하게 마련이다.』
-이번 사태가 미칠 영향은….
『내 생각으로는 소련이 중동지역에 동구에서와 같은 인민민주주의의 연ㅇ를 이룩하려는 것 같다. 「아프가니스탄」다음에는 「이란」, 그 다음에는 「터키」 순서가 될 수도 있다. 더욱이 소련의 SS-20「미사일」개발은 심각한 문제다. 서방측의 견해로는 미국이 2차 핵 보복능력을 갖고 있으므로 소련이 1차 핵 공격을 못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그러나 「유럽」 은 2차 핵 공격능력을 갖지 못하고 있다. 소련은 SS-20「미사일」계획을 완료하면 「유럽」에 대해 1차 핵 공격능력을 갖게 된다.
-이룰 수단으로 한 제1목표는….
『그렇게 되면 소련과「아프가니스탄」의 예 같은 세력상황이 「유럽」에 형성될 것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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