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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어진 수요일] 청춘리포트 - 대학생 어깨에 걸린 무게 4.2kg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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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어떤 물건은 어떤 사람의 삶을 증명합니다. 청춘의 물건들도 그러할 것입니다. 청춘리포트는 서울·부산·대구·경기도의 12개 대학교를 찾아가 남녀 대학생 50명의 가방을 살펴봤습니다. 어학 교재와 텅 빈 지갑…. 가방 속 물건들은 요즘 청춘 세대의 고달픈 삶을 증언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의 가방 평균 무게는 4.2kg으로 결코 가볍지 않았습니다. 지갑에는 평균 카드 1~2장과 현금 1만3200원뿐이었습니다. 대학생들은 가벼운 주머니에 돌덩이 같은 가방을 메고 이 여름에도 도서관 계단을 오르고 있었습니다. 청춘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대표적인 물건 5개를 사전 풀이식으로 구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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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위 스마트폰·충전기(46명)

청춘의 시발역이자 종착역. 요즘 대학생들은 스마트폰으로 하루를 열고 닫는다. 이 전자제품은 청춘에겐 호흡과도 같은 존재다. 마주 앉아 있더라도 스마트폰 메신저로 대화를 하는 게 요즘 20대다. 각종 수험 정보나 취업 정보가 오가는 통로 역시 스마트폰이다. 스마트폰으로 TV 방송을 시청하거나 온라인 강의를 듣기도 한다. 스마트폰 배터리가 소멸되면 청춘은 숨이 꼴깍 넘어갈 것처럼 초조해진다. 절대다수의 대학생 가방 속엔 여분의 배터리와 충전기가 있었다. 마치 응급처치용 비상약품 같은 자태로 가방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20대의 스마트폰 보유율은 96.2%에 달한다. 20대의 67.3%는 일상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매체로 스마트폰을 꼽았다.

2위 화장품(33명)

젊은 육체에 남용되는 화학제품. 청춘의 얼굴은 싱그럽다. 싱싱하고 풋풋해서 별다른 치장을 하지 않아도 아름답다. 그러나 이런저런 화장품을 찍어 바르고 싶은 것 또한 청춘의 마음이다. 과거에는 화장품이 여자 대학생의 전유물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남자 대학생도 각종 화장품에 관심이 많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조사에 따르면 비비크림 등 색조 화장을 하는 남성의 64.4%가 20대였다. 실제로 청춘리포트가 만나본 남학생 10여 명이 비비크림·헤어왁스 등 화장품을 가지고 있었다. 쓸쓸한 것은 청춘에게 화장품은 더 이상 탐미적 도구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요즘 대학생들은 취업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꾸민다. 한 경희대 남학생은 “취업을 하려면 평소에도 이미지 메이킹 연습을 해야 해서 손거울과 화장품을 가지고 다닌다”고 말했다.

3위 노트북(20명)

청춘의 문구제품. 노트북은 노트북(notebook)이다. 20대 대학생들은 이 전자제품을 공책처럼 활용한다. 수업시간에도 종이로 된 노트 대신 모니터와 자판이 달린 노트북을 꺼내 필기를 한다. 요즘 20대는 신학기가 되면 공책이나 볼펜을 사러 문구점에 가지 않는다. 새로 나온 기종의 노트북을 사기 위해 온라인 쇼핑몰에 접속한다. 대학 도서관에 가보시라. 학생들이 펼쳐놓은 아찔한 노트북 행렬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책과 공책은 노트북 속으로 들어간 지 오래다. 대학생들은 책 대신 노트북 화면을 보며 공부를 한다. 노트북 속에선 인기 영어 강사가 토익 시험에 나올 만한 문제를 찍어주고 있다. 타닥타닥-. 도서관을 울리고 있는 노트북 자판 소리는 취업용 공부에만 매달리고 있는 청춘의 신음소리 같다.

4위 어학 교재(19명)

청춘의 생존 언어를 가르쳐주는 책. 한국인의 모국어는 한국어지만 한국의 대학생들은 너도나도 영어를 하지 못해 안달이다. 국제어를 익히기 위한 노력이야 필요할 테지만, 문제는 지금 대학생들이 매달리고 있는 영어 공부는 외국인과의 소통에 그 목적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요즘 20대는 다만 취업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영어 공부에 열중한다. 요컨대 지금 대학생에게 영어는 국제어가 아니라 생존어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 따르면 대학생들의 주간 학습시간은 평균 8.89시간으로 이 가운데 영어 공부에 투자하는 시간(3.94시간)이 가장 길었다. 청춘리포트가 만나본 상당수 대학생도 가방 속에 토익 교재나 관련 프린프물을 가지고 있었다. 지난해에만 200만 명이 넘는 청춘들이 토익 시험에 응시한 걸 보면 영어는 청춘의 생존 언어임에 틀림없다.

5위 칫솔·치약(17명)

해우소(解憂所)의 유일한 동반자. 불교 사찰에선 화장실을 해우소라고 부른다. 근심을 풀어내는 곳이라는 뜻에서다. 대학 도서관 화장실도 이와 다르지 않다. 도서관 의자에 꽁꽁 묶인 듯 종일 앉아 있다보면 화장실 가는 시간이 유일한 위안이 될 때가 있다. 여름방학이 됐지만 대학 도서관이나 대학가 카페는 취업 공부에 열중하는 청춘들로 북적인다. 이들은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많으면 하루 세 끼를 밖에서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휴대용 칫솔과 치약은 필수품이다. 출출할 때는 간식도 먹어야 하므로 20대 대학생들은 수시로 ‘해우소’를 들락거리며 양치질을 한다. 행정고시를 준비하는 서울의 한 사립대 남학생은 “집에서는 잠만 자고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 도서관에서 보내기 때문에 칫솔·치약이 없으면 생활 자체가 불편해진다”고 말했다.

정강현 청춘리포트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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