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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박또박 증언…그 현장의 두 증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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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15일 열린 박정희 대통령시해사건관련 육군본부 계엄 보통 군법회의 7회 공판.
증인은 그날 만찬석에서 시해사건을 시종 목격한 손금자 (가명) ·정혜선 (가명) 양.
손 양은 자주색「벨베트」상의와 짙은 밤색「스커트」에 고동색「터틀네크·스웨터」차림이었고 정양은「베이지」색 「바바리·코트」속에 검은 「원피스」를 입고 밝은 색의 「실크·머플러」를 목에 둘렀다.
손양은 1m57cm 정도의 키에「K」자가 선명한 감색야구모자를 깊숙이 눌러 썼고 정양은 1m63cm의 훤칠한 키에 긴 머리칼과 반듯한 이마가 돋보였다.
김재규 피고인을 끝으로 8명의 피고인에 대한 보충 신문을 끝낸 재판부는 이날 하오 5시지금 까지 재판을 진행 해 온 대법정에서 같은 건물 2층에 있는 소법정으로 옮겨 손·정양의 증언을 들었다. 방청객을 제한4명의 기자만 입장시킨 증인신문은 정·손양의 순서로 하오 7시23분까지 2시간23분 동안 계속됐다.
하오5시 법무사가 『손금자(가명)·정혜선(가명)나왔습나까』라면서 앞으로 불러내자 손양은 쓰고 있던 모자를 그리고 정양은 입고있던 「바바리·코트」를 벗어 앉았던 자리에 걸쳐놓고 앞으로 나서서 오른손을 들고 『위증을 않겠다』 는 선서를 한 뒤 정양이 먼저 증언대에 나섰다. 그 동안 손양은 옆 대기실로 자리를 옮겼다.
선서에 앞서 법무사는 두 사람에 대한 인정신문을 했다. 생년월일은 모두가 알아듣기 어려울 정도의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고 직업을 묻자 정양은 『말씀드리기 곤란하다』고 했다.
주소를 묻자 정양은 「서울마포구염리동…」이라고 번지까지 말했으나 손양은「잠실」 이라고만 했다.
만찬석에 있었던 6사람 중 유일한 증인2명. 그래서 그런지 한마디 한마디에 검찰관과 변호인단은 신문과정에서 날카로운 항의가 오갔다. 그날 6명중 두사람은 유명을 달리했고 두사람은 피고인, 두 사람은 증인으로 그 자리에서 만났다. 김재규 피고인의 변호인(국선)인 안동일변호사는 정양에게 『검찰관이 묻는 대로 네, 네 하지 말고 사실대로 말해달라』고 일러줬다.
정양은 검찰관의 신문에 비교적 간단히 또렷한 목소리로 증언했다. 김수용 변호사가 정양에게 『본 법정에 어떻게 해서 증인으로 나오게됐느냐』 고 묻자 법무사 황종태 대령이 『사건과 관계없는 질문이다』라고 제지, 김 변호사는 『증언의 신빙력에 관계되기 때문에 묻는다』면서 『질문한 사실이라도 조서에 올려달라』 고 했다.
정양이 검찰신문에서 김재규·김계원 피고인의 표정이 초조하고 침울했다고 증언한데 대해 김수용 변호사가 『관상학을 공부한 일이 있는가. 조명도 흐린데 처음 보는 사람의 표정을 어떻게 그리 잘 아는가』라고 추궁하자 정양은 『조명은 말하기 곤란하고…』라고 말끝을 흐리다가 『모르겠다』 고 대답했다. 김 변호사가 이 부분을 계속 추궁하자 정양은 『어두운데 오래 있으면 알 수 있다』 고 잘라 말했다. 그러자 김 변호사는 피고인 석에 앉은 김계원 피고인을 가리키며 정양에게 『뒤를 돌아 보라. 지금 표정은 어떤가』라고 했고 이 때 검찰관이『증인은 나이도 어린데 그런 요구를 하느냐』 고 변호인 석을 향해 항의했다.
김 변호사가 『객관적 사실을 말하라고 한 것이다』라고 응수하고 정양에게『돌아보기도 말하기도 싫은가』라고 묻자 정양은 『돌아보기 싫다』 고 끊듯이 받아 넘겼다.
안동일 변호사는 정양에게『궁정동에 도착하기 전 대통령을 만난다는 걸 알고 있었느냐』고 물었으나 『본 건 공판과 관계없는 질문은 삼가라』 는 법무사의 제지를 받았다. 정양은 만찬석의 불의 밝기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다』 면서 입을 다물기도 하는 등 대답을 비교적 짤막하게 했다.
정양이 1시간10분 동안의 증언을 끝내고「코트」를 집어들며 법정을 막 나서려는데 피고인 석에 앉았던 김재규 피고인이 흔들거리며 몸을 가누지 못했다. 헌병 2명이 뛰어 와 부축하자 그들에게 기대면서 잠시 혼수상태가 됐다. 헌병이 의자에 부축해서 누이고 머리에 담요를 받쳐줬다. 그 동안 김계원 피고인은 자리에서 일어서서 가벼운 다리운동을 했다.
군의관이 들어와 『지금상태가 어떠냐』 고 묻자 누워서 5분쯤 지난 김재규 피고인은『메스껍고 어지럽다』 고 대답했다. 군의관은 눈꺼풀을 뒤집어 보고 『안정을 취하라』고 권고했다.
이때 옆에 섰던 헌병이『지난번에도 법정에서 서서 답변을 하던데 앞으로는 앉아서 답변하도록 하라』 고 일러줬다.
잠시 휴정됐던 공판이 하오 6시17분 속개되자 김재규 피고인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고 변호사가『누워있어도 좋다』 고 했으나『괜찮다』 고 사양, 앉은 채로 손양의 증언을 듣기 시작했다.
손양은 두 손을 모아 무릎 위에 얹은 단정한 자세로 또박또박 당시 상황을 얘기해 나갔다. 손양은 궁정동 현장에서 태릉 사격장에 다녔기 때문에 아는 안재송 씨를 만났고 차실 장과 김재규 피고인은 한번씩 그 전에 만난 구면이었기 때문에 그런 자리가 생소하지 않았던 듯 정양보다는 당시 상황을 생생히 기억해냈다.
총격직후의 급박했던 만찬석 광경에 대해 『김 부장이 우왕좌왕하던 기억이 난다』고 했고 첫 총격으로 차 실장은 화장실에 피신, 화장실 문을 열고 내다보며『각하, 괜찮습니까』하고 물었고 각하가 『나는 괜찮아』라고 해서『진짜 괜찮으십니까』하고 물었던 기억을 더듬었다.
술자리에서 남효주 사무관이 들어와 김재규 피고인의 귀에 대고 한 말을 『과장님이 뵙자는데요』라고 했다는 내용까지 어떻게 기억하느냐는 이병용 변호사의 질문에 손양은 『나는 기억한다』 고 야무지게 대꾸하기도 했다.
김계원 피고인에게 불리한 증언이 계속 나오자 김수용 변호사는 『첫 총성에 실장은 변소로, 김계원 피고인은 밖으로 도망쳤느냐』고 물었다. 이때 검찰관은『변호사의 발언이 중복되고 있다』 고 경고했고 김 변호사는 『증인이 하도 위대해 보여 그런다』 고 응수, 손양은 『어쩔 줄 몰라 서있었다』 고 대답했다.
정·손양에 대한 증인신문이 모두 끝났을 때는 하오 7시30분. 2시간23분간의 증언이 끝나고 두 젊은 여인은 들어갈 때와 마찬가지로 군복차림의 수사관의 안내를 받으며 소법정을 나섰다.
이때까지 법정밖에는 3O여명의 보도진이 기다렸다.
7시30분. 정·손양의 모습이 아래층에 나타나자 「카메라·플래시」가 여기저기서 터졌다. 손양이 잠시 모자를 바로 썼을 뿐,「베이지」색「바바리·코트」주머니에 두 손을 넣은 정양은 고개를 바로 든 채「카메라」를 피하지 않았다. 서두르지 않는 걸음걸이로 타고 와 대기시켜놓은「브리사」승용차에 올랐고 차는 육본영내 도로를 빠져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한편 이들의 증언이 끝난 뒤 법무사가 뒤에 앉았던 김재규·김계원 피고인에게 『증인에게 물어볼 말이 없느냐』 고 물었으나 두피고인은『없다』면서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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