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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출신 지역이 어디일까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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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PK편중’ ‘사라진 탕평’ ‘특정 지역 독식’.

 고위 공무원 인사 또는 개각 때마다 나오는 지적들이다. 그렇다고 지역편중 논란을 피하기 위해 기계적으로 지역안배 인사를 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지역 비율을 맞추기 위해 국가정보기관 인사담당자가 승진 대상자의 출신지를 변경했던 사실이 대법원 판결문을 통해 확인되면서 출신지역 논란이 주목을 받고 있다.

 판결문에 따르면 2007년 말 김만복 당시 국가정보원장은 승진인사에서 지역을 안배하라는 지침을 김모 당시 인사과장에게 내렸다. 4급 승진인사 대상자를 추릴 때 영남 출신은 40% 미만, 호남 출신은 20%대 비율로 하라는 게 골자였다. 하지만 김 과장이 막상 대상자를 추리고 보니 영남 출신은 60.9%인 반면 호남 출신은 8.6%였다. 고민하던 김 과장은 인사 대상자였던 문모씨의 실제 출생지가 전남 해남인 점을 발견했다. 김 전 국정원장에게 이 사실을 보고한 후 문씨의 인사자료상 출생지를 전남으로 바꿨다. 출생지를 바꾼 덕에 문씨는 승진했고 김 과장은 인사 이틀 뒤 김 전 원장의 승인을 받아 문씨의 서류상 출생지를 다시 경북 영일로 바꿨다.

 하지만 1년여 뒤 국정원장이 바뀌면서 사달이 났다. 2009년 2월 취임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출생지 정보를 멋대로 바꿨다”는 이유로 김 과장을 해임했다. 이에 김 과장이 소송을 냈다. 1심 법원은 “허위정보를 입력해 징계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반면 항소심은 “실제 출생지가 전남 해남이므로 허위정보를 입력한 것으로 볼 수 없다”며 해임 취소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 3부(주심 이인복 대법관)도 “호적상의 출생지와 달라도 실제 출생지를 입력한 것은 위법하지 않다”며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4일 밝혔다.

 인사를 둘러싼 출신지 논란은 문씨가 처음이 아니다. 고위직 공무원 인사, 내각 인사를 앞두고 지역안배를 둘러싼 잡음은 불쑥 불쑥 터져 나왔다. 심지어 출신지가 상황에 따라 바뀌는 경우도 나왔다. 부산에서 태어난 김태정 전 검찰총장은 1997년 김영삼 정부에서 총장으로 임명했지만 이후 김대중 정부로 정권이 교체된 후 광주고를 졸업한 점이 부각되면서 호남 출신으로 통했다. 또 유인촌 전 문화관광부 장관은 서울에서 태어나 50년 넘게 살았지만 2008년 2월 장관 후보자로 임명되면서 전북 완주 출신으로 소개됐다.

 과거 정권에서의 지나친 지역편중 인사가 이런 논란을 부추겨 왔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는 해묵은 지역편중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해 1990년부터 공무원 인사기록 카드에 본적지를 표시하는 항목을 제외했다. 하지만 문씨 사례에서 보듯 각 부처 등에서 내부 인사 기준으로 출신을 고려하는 현상은 여전하다. 이 여파로 민간기업에서도 지역을 고려한 인사 관행이 자리 잡기도 했다.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회가 지난 4월 국내 100대 기업 입사지원서를 조사한 결과 17.9%의 회사가 지원자의 본적지를 기재토록 하고 있었다.

 하지만 출신지를 중시하는 비정상적 인사 관행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 인구 절반 가까이가 살아 출신지역 구분 자체가 모호해진 시대적 변화 등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굳이 고려해야 한다면 자기가 원하는 출신지를 선택할 수 있는 법조인대관(법률신문 출간)과 같은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박천오 명지대 행정학과 교수는 “지역안배 인사는 능력 위주의 인사보다 생산성이 떨어지는 데다 조직 내 사기 저하의 문제 등 부작용이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박민제·노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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