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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70년대의 한국예술…그 평가와 반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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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대담 이두현(제주대교수·민속학) 김열규(서강대교수·국문학)
이=70년대 전통예술 분야를 특징짓는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활발한 해외진출과 대학가의 전통민속「붐」, 정부지원정책의 본격화, 일반의 전통의식제고 등으로 요약될 수 있겠습니다. 전통예술의 빈번했던 해외순회공연은 국제무대에서의 한국문화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함께 서구예술에 대한 선망으로「자기비하」를 면치 못하던 고유전통예술에 대한 자신감을블어 넣어주기도 했지요.
김=정부 문화사절로 한국민속예술단과 국립국악원등이 나가 공연한 국악·민속예술이나민간분야에서 가진 『봉산탈춤』『꼭둑각시놀음』등의 해외공연은 괄목할만한 전통예술의 해외진출이었읍니다.「한국미술5천년전」의 일본과 미국순회전시회도 문화외교사상 일대의 개가를 올린 획기적인 진출이었읍니다.
이=정부도 이같은 전통예술의 해외진출에서 자신을 얻어 해외홍보를 경제개발과 반공위주에서 문학홍보 중심으로 전환하는 정책변화를 가져올 정도였지요.
김=대학가의 전통민속「붐」은 70년 서울대에 대학탈춤반이 생긴 이후 이대· 연세대·서강대 등으로 번졌고 73년부터는 각 지방대학에 확산돼 전국 대학에 학생 가면극반이나 전통무용· 국악· 민속놀이 「서클」 등이 없는데가 없게 됐습니다. 특히 민속극은 그 고유의 해학과 풍자로「캠퍼스」의 일종의 청량제가 돼 학생들의 열광적인 인기를 모았지요.
이=젊은층의 민속극「붐」과 함께 일반 극단에서도 음악·무용·「드라머」가 종합된 우리 고유연극의 양식과 기법을 도입, 새로운 창작을 시도해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한국을 비롯한「아시아」민속극의 특성인 종합연극은 최근 서구에서도 자기들의 대사극과 같은 것으로 이해돼 크게 인정을 받고 있읍니다.
한국가면극연구회의 『봉산탈춤』은 미국 (77년)과 「유럽」순회공연(78년) 도 처음에는상스런 대사 따위나 늘어놓아 무슨 성공을 거두겠느냐고 비관론이 우세했읍니다. 그러나 결과는 비관을 뒤엎고 기대이상의 성과였어요.
김=어쨌든 탈춤등의 전통예술이 현대연극에 도입돼 새로운 연극의 돌파구를 찾고 한국적인 「액션」이나 「스타일」이 서구에까지 자극을 주면서 세계를 향해 보편화돼 인정을 받게 됐다는 사실은 정말 대견하고도 강한일이 아닐수 없읍니다.
이=정부 지원정책으로는 우선 문화재의 지정보호와 인간문화재공예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등의 개최를 통한 전통예술의 진흥을 손꼽을수 있겠읍니다.
특히 전통예술 분야와 깊은 관련을 가진 중요 무형문화재는 69년까지 만 해도 9종에 불과 했던 것을 70년대에 들어 51종을 발굴 지정해 현재 60종 1백55명이 기능보유자로 지정돼 있어요.
이중 35종에 걸친 예능분야종목은 매년 발표공연을 통해, 16종의 기능종목은 인간문화재공예전을 통해 각각 후계자 전수와 일반 보급에 공헌하고 있지요.
김=전국민속경연대회는 지난해부터 최우수상의 상금을 5백만윈으로 대폭 인상, 정부주관시상금으로 최고가 됐고 인간문학재공예전 상금도 올해부터 국전규모로 인상한것은 전통예술분야의 경사였지요. 70년대에 들어 전통예술의 전승에도 관·민의 관심이 높아져 정부당국이 인간문화재 생계비를 본격적으로 지원해 준 것도 다소 미흡한 점이 있긴 하지만 잘한일이구요.
이=유형문화재쪽도 7O년대에 총2천7백건의 각종 문화재가 국보·보물·사적·지방문화재 등으로 신규 지정되고 문화재보수3개년계획(77∼79년)에 따라 국비와 지방비 총3백82억원을 투입, 1천5백여건의 대소 복원·보수정화공사를 실시한 것으로 압니다.
물론 경주고도개발등에서 보인 시행착오도 없지 않았고, 기타 문제점도 제기되긴 했지만이같은 문학재사업은 전통문화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제고하는데 크게 이바지했다고 볼 수 있겠읍니다.
김=70년들어 본궤도에 들어선 전승예술의 개발은 문학에서도 민속요소들을 도입해 현대의「알레고리」를 표현, 전통적인 무속신앙을 「니힐리즘」으로 보고 일방적으로 무시하던태도 같은 것을 지양하면서 고유민속을 오늘의 생활속에 새롭게 착실히 구현해보려는 시도가 활발했읍니다.
이=박물관사업과 각종 문화재의 발굴도 그런대로 활발했다고 볼수 있읍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을 비롯한 공주·경주·부여·광주박물관등이 모두 7O년대에 신축됐고 공주 무령왕릉의 발굴이나 신안해저유물의 발굴인양은 세계적인 「뉴스」의 초점을 모으기도 했지요.
김=민간분야에서 월간지 『뿌리깊은 나무』 사가 1백회까지 주최하고 끝낸「판소리감상회」나 김소희·박초월씨등의 해외국악공연등과 온양민속박물관·용인민속촌등의 민간박물관 설립도 훌륭한 전통예술사업들이었읍니다.
물론 관·민의 전통예술진작사업이 지속성과 주체성의 원리에 따른 진일보한 자연발생적인 것이냐, 보수쪽만을 강조한 단순한 복고적 취향에의 영합이냐는 문제는 신중히 평가분석 해야할 일이지만 이같은 일련의 현장은 일단 반가운 일로 받아 들여야겠지요.
이=지금까지는 주로 긍정적인 측면을 훑어 봤읍니다만 앞으로 시정되거나 개선돼야 할 문제점들도 적지 않습니다.
겉으로는 굉장한「붐」을 이루고 있는 것 같은 전통예술에의 발전적인 회귀도 원래의 현장문맥에서 유리된 채 대중속에 깊은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박물관 속의 유물처럼 전승돼서는 안되는 겁니다.
별신굿이나 부락제등의 세시풍속이 미신으로 타파되고 개발일변도의 정책추구에 밀려 전통예술이 오늘의 대중 속에서 문화화할 수 있는 기틀을 결여하고 있음을 볼때 우려를 금할수 없읍니다.
김=민속예술의 모태인 지망의 각종 굿거리가 주민들의 참여를 결여한채 「예술」로만 유리돼 떠돌아 다닐때 새로운 대중예술로 승화될수 있는 뿌리를 내리기는 어렵습니다.
전통 민속예술을 공연하는 상설극장이나 무대가 하나도 없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이=국립극장에 전속 민속극단과 무용단이 아직까지 없고 문화재의 발굴보존기능만을 주관하는 문화재관리국의 기능은 있어도 전통예술을 적극 진흥, 발전시키는 기구나 정책이 아직 신통치 못한 것도 앞으로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일 것 같습니다.<정리=이은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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