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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월드컵] 삼바, 마지막 춤도 허망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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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962년 칠레 월드컵 우승 주역인 가힌샤의 이름을 딴 브라질리아의 마네 가힌샤 주경기장에서 열린 브라질월드컵 3·4위전에서 브라질은 네덜란드에 0-3 완패했다. 세 번째 골을 실점한 브라질 골키퍼 줄리우 세자르가 고개를 처박고 있다. [브라질리아 AP=뉴시스]

종료 휘슬이 울렸다. 리우 데 자네이루의 팬페스트(응원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얼굴은 눈물 범벅이었다. 중계방송 해설위원이 목놓아 소리쳤다. “펠레! 가힌샤! 지쿠! 호마리우!” 브라질 축구 옛 영웅들의 이름이었다.

 ‘축구 제국’ 브라질이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속절없이 무너졌다. 1950년 이후 64년 만에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여섯 번째 우승을 노린 그들은 13일(한국시간) 브라질리아의 마네 가힌샤 주경기장에서 열린 3·4위전에서 네덜란드에 0-3으로 졌다. 지난 10일 준결승전에서 독일에 1-7로 대패했던 브라질은 48년 만에 홈에서 연패를 당했다. 2경기에서 10골을 먹었다.

 브라질 선수들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주장 치아구 시우바(30·파리 생제르맹)는 “팬들이 야유를 보냈는데, 그게 정상이다. 팬들에게 사과한다”고 말했다. 브라질 국가대표 출신 주니뉴 페르남부카누(39)는 “이번 패배는 역사상 가장 부끄러운 일이다. 팀 정신을 바꿔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영국 BBC 해설위원인 개리 리네커(54)는 “브라질은 아마추어 같았다. 파리생제르망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다비드 루이스(27)는 수비수가 아닌 것 같다.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이라고 혹평했다.

 브라질에선 모두가 축구를 사랑하고 즐긴다. 흙바닥에서 맨발로 공을 차는 이들도 놀라운 실력을 갖고 있다. 브라질 대표팀의 별칭은 셀렉상(Sele<00E7><00E3>o). 특별히 선택받았다는 의미로, 이들은 단순한 축구 대표팀이 아니라 브라질 전체를 대표하는 상징성을 갖고 있다.

 브라질은 2002년 한·일 월드컵 우승 이후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1990년대부터 브라질 선수들이 유럽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더 많은 연봉을 주는 유럽으로 유망주들이 떠나자 뛰어난 개인기를 앞세우는 ‘삼바 축구’가 퇴색하고 있다는 평가다.

 ‘우 글로부’의 히카르두 메네겔로 기자는 “정말 치욕스럽다. 브라질다운 축구를 하지 못했다. 유럽에서 축구를 배운 브라질 선수들이 유럽식 축구를 하고 있다. 과거에는 크로케(Croque·경기 흐름을 바꿀 선수)가 4~5명 정도 있었지만 지금은 네이마르(22·바르셀로나·작은 사진)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66) 감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높았다. 원톱 프레드(31·플루미넨세)에게 집착했던 그는 3·4위전에서야 조(27·아틀레치쿠 미네이루)를 투입했지만 소용 없었다. ‘우 글로부’의 해리 세레스 기자는 “스콜라리의 선택이 틀렸다. 잘못된 선수를 뽑았고 멍청한 전술을 썼다”며 “대표팀에 미국이나 러시아·우크라이나 리그에서 뛰는 선수가 이렇게 많았던 적이 없다”고 비판했다. 호나우지뉴(34·미네이루)·카카(32·올랜도 시티) 등 베테랑을 제외한 것도 패인으로 꼽히고 있다.

  외국인 감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브라질 축구협회는 4강전 참패 후 주제 무리뉴(51·포르투갈) 첼시 감독에게 러브콜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스페인 언론 ‘마르카’는 ‘브라질이 무리뉴 감독의 에이전트와 접촉했다. 그러나 첼시와 계약기간이 남은 무리뉴 감독이 2년 뒤 다시 오라며 거절했다’고 보도했다. 브라질축구협회는 2년을 기다리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브라질 특유의 순혈주의를 버릴 만큼 축구 제국은 하염없이 몰락하고 있다.

리우 데 자네이루=김민규 기자 gangaeto@joogn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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