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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금융시장 '변방의 북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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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포르투갈 최대 시중은행인 방코에스피란토산토(BES)의 지주회사 채무불이행(디폴트) 사태가 지난주 목요일 글로벌 금융시장을 한때 혼란에 빠뜨렸다. 사진은 여성이 11일 포르투갈 리스본에 있는 방코에스피란토산토 현금 인출기에서 돈을 찾고 있는 모습. [리스본 AP=뉴시스]

글로벌 시장이 주변부 위험에 긴장하고 있다.

 지난주 유로존(유로화 사용권) 변방인 포르투갈의 최대 시중은행인 방코에스피란토산토(BES)가 지주회사의 채무불이행(디폴트)으로 발생한 손실을 분식회계로 은폐한 사실이 드러났다. 순간 글로벌 시장의 주가가 출렁였다. 채권값도 휘청했다. 하지만 하루 뒤인 11일 BES가 지주회사 손실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고, 포르투갈 정부뿐 아니라 유럽중앙은행(ECB)도 도울 수 있다는 소식에 글로벌 시장은 진정됐다.

 그러나 12일(한국시간) 로이터와 블룸버그 통신은 전문가들의 말을 빌려 “경계경보가 해제된 게 아니다” 며 “또 다른 먹구름이 다가오고 있다”고 경고했다. 바로 미국 자치령인 푸에르토리코의 디폴트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푸에르토리코 빚 거품이 터지기 직전”이라고 전했다. 이를 대비해 푸에르토리코 지사는 전력회사 등 공기업이 부채의 만기 연장과 이자 탕감 등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주법을 지난달 말 발효시켰다.

 미국 연기금들이 바짝 긴장했다. 푸에르토리코는 중미의 작은 섬이지만 미 연기금들이 푸에르토리코 자치정부 채권 등을 대거 사들였다. 통화가 미국 달러여서 환율 변동에 따른 위험에 시달리지 않아도 됐다.

 게다가 푸에르토리코가 지난해 초부터 각종 세금을 깎아주며 미국 부호들의 자금을 유치했다. 세금평등 등을 주장하는 미국 시민단체들이 “푸에르토리코가 새로운 조세피난처로 바뀌고 있다”고 비판하고 나설 정도였다. 미 연기금들은 푸에르토리코 채권을 사들이면 연 7~8% 정도 수익을 챙길 수 있었다. 저금리 시대엔 드문 고수익 투자처였던 셈이다.

 로이터는 “미국 돈이 밀려들자 푸에르토리코 정부와 공기업들은 뒷일은 생각지 않고 채권을 찍어냈다”고 꼬집었다. 그 규모가 730억 달러(약 74조원)에 이른다. 미국 주정부 가운데 캘리포니아와 뉴욕에 이어 세 번째로 큰 빚더미다.

 무엇보다 빚이 불어난 속도가 너무 빨랐다. 2001년 푸에르토리코 부채 비율은 국내총생산(GDP) 기준 57% 정도였다. 12년이 흐른 뒤인 지난해 말엔 101%까지 높아졌다.

 미 신용평가회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11일 푸에르토리코 신용등급을 BB+에서 BB- 로 낮췄다. S&P는 이날 성명서에서 “푸에르토리코가 부채 특별법을 제정한 사실 자체가 재정적으로 아주 좋지 않은 상태임을 시사한다”고 밝혔다.

 푸에르토리코가 미 경제권의 한 켠에 지나지 않지만 연기금 채널을 타고 불안이 글로벌 시장을 강타할 가능성이 있다. 블룸버그는 전문가들의 말을 빌려 “푸에르토리코 사태가 본격화하면 연기금이 신흥국 채권을 팔기 시작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강남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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