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폭염 뚫고 산맥 넘고 … 미 대륙 4859㎞ 두 바퀴로 달리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12일간 자전거를 달려 미 서부 캘리포니아주에서 동부 메릴랜드주까지 4859㎞ 횡단에 성공한 이형모씨. 이씨는 지난달 10일(현지시간)부터 열린 미국횡단자전거레이스에 참가해 한국인 최초로 솔로 부문 완주에 성공했다. 22일 아나폴리스에 있는 결승점을 통과한 이씨가 자전거를 힘껏 들어올렸다. [사진 이형모]

무더위 속에 애리조나 사막을 건너고 두터운 점퍼를 입은 채 로키산맥의 해발 3000m급 고개를 넘었다. 대평원 지대의 강한 맞바람을 이겨내고 나니 다시 애팔래치아산맥의 오르막이 나타났다.

 지난달 중순 미국횡단자전거레이스(Race Across America·RAAM) 50세 이하 남성 솔로부문에 출전해 완주한 이형모(35·사진)씨의 여정이다. 미 서부 캘리포니아주 오션사이드를 출발해 동부 메릴랜드주 아나폴리스까지 4859㎞를 달렸다. 20년 만에 아시아 국가에서 이 부문 두 번째 완주자가 나왔다.

 완주는 했지만 기록만 놓고 보면 사실 이씨는 꼴등이다. 12일 안에 완주 해야 하는데 11일 21시간58분의 기록으로 결승점을 통과했다. 하지만 RAAM은 평균 완주율이 50%에 불과한 대회다. 이씨가 참가한 부문에서도 23명 중 14명만 완주에 성공했다. “우리나라는 얼마나 높이 올라갔나, 얼마나 빠르게 달렸나 성적만 따지잖아요. 그런데 RAAM을 겪고 나니깐 알겠어요. 어려움에 부딪히고 이겨내는 과정을 통해 삶이 더 단단해져요. 눈에 보이는 결과가 다가 아니에요.”

 그 역시 과거에 가장 높은 곳을 올랐고 가장 빠르게 달려봤다. 2006년 에베레스트(8848m)를 등정했고 2011년엔 RAAM 50세 이하 2인 부문에 참가해 우승했다. 당시 함께 출전했던 김기중씨가 지난해 RAAM 솔로부문에 참가했다 고배를 마시자 올해 이씨가 출전했다.

 이씨는 국내 아마추어 자전거 대회 우승경력이 화려해 동호인 사이에서는 이미 유명인사다. 올해 그의 완주를 위해 트레이너, 자전거 정비사 등 8명으로 구성된 지원팀이 꾸려져 현지까지 따라갔다. 첫날부터 잠을 2~3시간밖에 못 자고 자전거를 타는 강행군이 펼쳐졌다. 그런데 하루 400㎞씩 달리는 장거리 레이스가 힘에 부치기 시작했다. 주로 단거리 훈련을 통해 국내 대회를 준비해온 그였다. 신발도 말썽이었다. 장거리용 신발이 아니었던 까닭에 발이 붓기 시작했다. MTB·트레킹용 신발을 바꿔 신어가며 달렸다. 앞서가는 선수들과 간격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맞바람이 강하게 불어오는 대평원 지대에서 그는 중도 포기를 마음먹었다. “여기서 빨리 달려서 잃어버린 시간을 만회해야 하는데 맞바람이 너무 강하게 부는 거예요. 왜 나한테만 강하게 부나 너무 야속하고 포기해야겠다 싶었죠.” 길바닥에 주저앉아버렸지만 동료의 격려에 다시 페달을 밟았다. “다시 달릴 때 울면서 달렸어요. 그 순간은 너무 힘들었는데 지나고 나니깐 별것 아니었던 것 같고. 그 순간 달릴 수 있는 게 너무 감사해서요.”

 결국 꼴찌지만 완주에 성공했다. 그는 “앞으로 제가 달려온 RAAM이란 길의 가치를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레이스 도중 그가 만난 한 미국인 선수 얘기가 나왔다. 지난해 제한시간보다 1시간 늦게 들어오는 바람에 완주에 실패하고 올해 다시 도전한 선수였다. 꾸준히 자전거는 타지만 속도가 매우 느려 이번에도 완주가 어려울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하지만 올해 제한시간을 1시간 남겨두고 결승점을 통과했다. “사람들이 결과에 급급해 빨리만 가려고 하는데 그러다 보면 지치는 경우가 많아요. 느려도 꾸준하다면 결국 원하는 목표를 이룰 수 있지요.”

위문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