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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적 평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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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본사 창간14돌 기념 특별기획 의식조사>
약 30만 명에 달하는 재미교포중 이 조사에는 39개 주요도시 및 그 외곽지역에 거주하는 한국인 2천1백92명이 무작위 추출되어 그중 1천6명이 두 차례에 걸친 우편설문에 응답했고 1백만 명이 전화「인터뷰」에 응했다. 본사 오택섭 박사(이사)가 주관한 이 조사는 7월과 8월 두 달 동안 실시되었고 유장희·이재원·신의항·김광정 박사와 「로런스·골드버그」박사 등 재미전문가들이 참가했다.<편집자주>
극단적인 표현을 쓰자면 재미한국인들은 몸은 미국땅에서 움직이고, 마음은 서울거리를 헤매고 있는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면 직장 가기에 바쁘고 직장에서 돌아오면 집안 일을 하거나 한국어 신문 읽는데 재미를 붙이는 것이 일과처럼 된 교포들이 많다. 그들의 세계는 생존에 직결된 직장과 가정의 울타리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지역사회나 사회집단에 침투하여 사회구성원으로 활약하는 예가 드물다.

<몸은 이국땅, 마음은 고향에>
미국인들과의 교류나 사회참여엔 소극적인 반면 그들의 고유한 풍습이나 전통은 철저히 고수하려는 태도가 뚜렷하다. 『빵과 「버터」』보다는 쌀밥에 김치를 상식한다는 가정이 전체의 78%나 되고 자녀의 국체결혼을 극구 반대한다는 사람이 응답자의 72%나 되는 것을 보면 재미한국인의 보수적 성향을 살필 수 있다.
재미한국인들이 이와 같이 사회참여에 소극적이고 미국사회에의 동화가 늦는 까닭은 무엇일까.
우선 재미교포들의 평균 이민햇수가 5·3년 밖에 되지 않고 87%나 되는 대다수가 지난 10년 사이에 도착하여 이민1세로서 처음부터 생활기반을 스스로 닦기에 바쁜 처지라고 본다면 이해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들이 미국사회동화에 소극적인 이유는 다른데도 있다는 것이 문제다.
남의 나라에 이주하여 생활안정을 이룩해 나가는 재미한국인들은 미국사회의 제도적 특전을 입고 있다고 보아야겠다. 「동등취업법」이 있기에 제도적인 인종차별을 면하여 능력에 맞는 직장을 구할 수 있고 「동등가옥매매법」이 있기에 돈만 있으면 원하는 지역에서 자유로이 주택을 구입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제도적 보장은 흑인들이 지난 20여년간 목숨을 걸고 투쟁하여 이룩한 법이다. 이러한 「특전」밑에서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는 일부 한국인들은 흑인이나 기타 소수민족집단으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될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소수민족의 지탄받기도>
가령 미국사회에서는 지금 의무교육에서 인종차별을 완전히 해소하는데 고민하고 있는 실정인데 재미교포들이 이러한 사회적 고민에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증거가 희박하다. 흑인이 드문 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2세들이 앞으로 흑인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는 가히 짐작할 수 있겠다.
재미교포들이 사회동화에 소극적인 경향은 다른 소수인종과의 관계에 국한되지 않은 일반적인 추세다. 또 이러한 경향은 태도상의 문제 이전의 재미교포의 구조적 특징에 근원이 있다.
설문에 응한 43%의 교포가 전문직에 종사하고 있다는 점부터 사회동화에 문제점을 던지게 된다.
사회동화가 비교적 쉽게 될 수 있는 전문직의 경우 그 직업적인 보답이 직업에서 오지 사회전반에서 오는 것이 아니므로 오히려 사회참여를 할 필요성을 절감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들은 같은 직업에 종사하고 있는 동료들과 「의식구조적 집단」을 구성하여 자기들끼리만 통화는 화제와 용어를 쓰며 사는데 만족하게 된다.

<전문직은 끼리끼리 만나>
주말「파티」를 보아도 의사는 의사끼리 모여 수술장에서 생긴 일이나 환자얘기로 화제를 끌어나가기 일쑤고, 대학교수끼리 모인 「파티」장은 흡사 연구논문발표회 같은 인상을 받게되는 경우가 많다.
이웃집 미국사람들과는 공통화제를 찾기 힘들뿐 아니라 굳이 그들과 친교를 맺지 앉아도 「밥벌이」엔 지장이 없기 때문에 미국인들과 교류가 없이 지내게된다.
교포의 65%가 주로 한국인들과 친하게 지낸다고 말하고 27%만이 한국인·미국인 반반이라고 응답한다. 직업에 연유한 따뜻한 인간관계가 성립되지 않으면 한국인은 한국인에게 끌리게 마련이다.
영어구사력이 모자람으로써 사회동화를 저해한다는 현상은 그 상관관계가 너무나도 현저하다.
언어문제가 없는 교포일수록 미국인과의 상호교류가 빈번하고 미국사회 침투율이 높아지고 그렇지 못한 교포일수록 소외생활을 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언어문제 하나의 해결로 교포의 사회적 참여가 크게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

<만족도가 귀국여부 결정>
지금까지 8회에 걸쳐 재미한국인들의 생활실태, 의식구조, 사회적응도, 그리고 만족도를 통계학적 처리로 추정해 보았다. 이에 근거해서 이민하는 동기, 지금까지의 중간결산, 앞날의 전망을 내려볼 수 있겠다. 미국은 「낙원」이 아니다. 흔히들 미국사회를 거대한 용광로(melting pot)에 비유하는데 그 뜻은 물론 각종 이질민족들이 혼합되어 하나의 개조된 사회를 형성해 나간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누구든지 그 사회에서 생존해 나가려면 스스로를 그 끓탕물속에 던져야한다는 의미도 있다.
이번 조사에서 노후엔 「조국에 돌아가겠다」는 응답이 적지 않이 나왔다. 많은 재미한국인들이 이민을 하나의 수단으로 볼뿐이지 그 목적으로 보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역땅에서 뼈를 묻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극히 드물다.
언어의 불편을 감수하고 인종차별을 견디며 고된 업무량을 잘 감당해 나아가면서, 혹은 학문적 목표를 성취하고, 혹은 치부를 하고, 혹은 자녀의 성공적인 교육이 달성되는 그 시점에서 스스로의 미국사회 적응도와 만족도를 가늠하여 귀국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것이 오늘날 미국에 사는 한국인들의 태도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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