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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명태풍」에 휘말린 국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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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신민 전체에 대한 징계다">
비상대책회의에 이어 9시30분 의원총회실에서 열린 신민당의원총회는 김 총재가 사회석 옆 총재석에 나와 앉고 의석에는 이철승·김재광·정해영·고흥문·이충환·유치송 의원 등이 맨 앞줄에, 정운갑 총재직무대행이 맨 뒷줄 구석에 자리잡아 모두가 침통한 분위기.
황낙주 총무는 인사말을 통해 『오늘 김 총재에 대한 징계안이 발의되는데 이는 신민당의원 67명과 국민전체에 대한 징계발의』라면서 『이 나라 민주주의가 죽느냐 사느냐하는 기로에서 이 순간에 67명 모두가 하늘에 부끄럼 없이 행동해 달라』고 호소.
그는 『생즉사요 사즉생이니 비겁하게 살려고 날뛰면 죽는다』면서 『이제부터 이택희 부총무가 전략을 설명하겠다』면서 비공개회의에 들어갔다. 「마이크」를 쓰지 않고 진행된 회의는 의원들에게 회의장 배치를 지시하고 의원들의 발언 없이 단 10분만에 끝났다.

<자리 앉은 여당측, 대화 없어>
의원들이 의총이 끝나 9시 40분께 2층의 본회의장으로 올라갔으나 회의장으로 들어가는 모든 문이 기자석 및 방청석으로 통하는 문과 함께 굳게 잠겨 있었는데 이는 본회의장에서의 신민당의원총회와 야당의원들의 단상점거를 예방키 위해 취했던 것.
그러나 9시43분께 문이 열리자 야당의원들은 재빨리 회의장안으로 뛰어들어가 김영삼·이철승·정운갑 의원 등을 제외한 거의 전원이 자리가 비어있는 의장석과 발언대를 완전히 점거하고 뒤따라 들어간 공화당과 유정회 의원들은 의석에 착석해 일체의 말을 건네지 않은 채 야당측 행동을 지켜보기만 했다.
이어 상오10시 최규하 총리 등 국무위원들이 들어가 착석, 대조를 보였다.

<방청석엔 외신기자들만…>
의장석에는 김제만·김종기·김현규·김형광 의원이 백의장 의자를 붙잡고 섰고 사무총장이 앉는 그 오른쪽 자리에는 이필선·유용근·최형우·조중연·이용희·김동영 의원 등이, 의사국장이 앉는 왼쪽에는 김수한·한병심·박영록·조세형·임종기·김동욱·박해충·한영수 의원 등이 포진했고 그 아래 발언대는 아예 김영배 부총무가 「마이크」를 불잡고 섰고 그 주변에 거의 전 의원이 주저앉거나 기립해 서성거렸다.
그러는 동안 정운갑 대행은 이철승 전 대표를 손짓으로 불러 희의장 밖으로 나간 뒤 한동안 들어오지 않았다.
김 총재는 옆자리에 찾아가 앉은 양일동 통일당 당수와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 모였다 흩어졌다 바빠>
침묵을 지키고 있던 여당석에서 『내려와라』(문형태 의원 등)는 등의 야유가 터지자 황낙주 총무 등 단상의 야당의원들이 목청을 돋우어『가만히들 앉아있어』라는 등의 고함으로 맞받아 여당석에서 폭소가 터지기도 했다.
여당석은 맨 뒷줄에 공화당의 박준규·구태회·신형식·현오봉 의원 등 당직자와 김종필·정일권·이효상·길전식·이병희·김용태 의원 등 전원이 나와 앉았고, 유정회는 맨 뒷줄 태완선·최영희·한태연 의원석을 중심으로 간단없이 전술회의차 모였다 흩어지기를 반복.

<"경호권 발동하려면 하라">
상오 10시28분쯤 백두진 의장이 이호진 사무총장과 함께 앞에 6명, 좌우에 4명 등 10명의 정복경위 호위를 받으며 좌측 문으로 들어서 의장석으로 향하는 통로를 내려오자 단상에 대기하던 야당의원들이 앞으로 몰려가 저지했다.
그 순간 여당석에서 정재호 이종식 조홍래 의원(이상 유정) 등이 근위대역할을 맡아 야당전열을 돌파하려고 뛰어나왔고, 그 뒤로 양찬우 김용호 김재식 구범모 이준섭 정동성 김봉호 의원(이상 공화) 등 40여명이 발언대쪽으로 뛰어나가 밀고 밀치는 실랑이를 벌였다.
상황이 이렇게되자 백 의장은 2분만에 다시 되돌아 퇴장했고, 이어 최총리 등 국무위원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나갔다.
이때 신민당의 황 총무는 큰소리로 『이제 경호권을 발동하려면 해 보라』고 백의장의 뒤통수를 향해 소리쳤고, 김영배 부총무는 사회봉을 두 번 두들기며 『여당의원들은 제자리로 돌아가라』고 고함을 치기도 했다.

<김동영·박형규 의원 격투>
10시 55분에 백두진 의장이 국회경위들의 호위아래 두번째로 입장을 시도하려 하자 단상을 점거하고있던 신민당의 김동영 의원과 유정회의 박형규 의원간에 멱살을 잡고 주먹이 오가는 등 육탄전이 벌어져 이를 말리는 여야의원들이 단상에 얽혀 고함과 삿대질.
김동영의원은 단상에서 뛰어내려 「넥타이」를 풀고 물러서 있는 박형규 의원에게 달려들려 했으나 이상민 (신민)의원 등이 말려 소동은 일단락.
상오 11시 57분 세번째로 백 의장이 16명의 경위에 둘러싸여 회의장에 들어서자 여당의 김봉호 김상석 김재식(공화) 윤식 이상익 의원(유정) 등 약30명의 의원이 의장석쪽으로 돌격해 김봉호 김재식 이상익 의원 등은 단상에까지 오르는데 성공했으나 야당의원들에게 밀려 다시 쫓겨 내려왔다.
이런 과정에서 최형우 의원 등 일부 야당의원들이 『이××야, 내려가』하고 고함을 치자 김봉호 의원은 『××가 뭐야』, 박준규 공화당의장서리는 뒷줄좌석에 앉은 채 『말조심해』하고 맞고함을 쳤다.

<입장시도 4번만에 성공>
하오 1시15분께 의당석 왼쪽 문에 정복경위들이 또다시 들어서자 단상과 발언대를 점령하고 있던 야당의원들이 함성을 지르며 긴장한 상태로 대비태세에 들어갔고 공화당과 유정회 의원들의 약 4분의 3정도가 야당쪽으로 살도해 들어가 밀고 밀리는 혼전이 벌어졌다.
이때 백 의장이 26명의 국회경위들에 의해 둘러싸여 뒤따라 출입구에 들어서 더 이상 의장석쪽으로 전진하지 않은 채 이 광경을 지켜보다가 무언가 입을 벌려 몇 마디를 했다.
그러자 야당의원들이 『지금 보고발의를 하고있다』『법사위로 가자』고 하며 일순간에 함성과 당황으로 뒤범벅이 됐다.
약 4분 후인 하오 1시19분 백 의장은 오른손을 들어 위 아래로 두어 차례 흔든 뒤 쏜살같이 퇴장했다.
이 출구로부터 의장실로 향하는 약 폭3m, 10여m 거리가 되는 통로에는 사복경관 40여명이 4중5중으로 팔과 팔을 끼어 「스크럼」을 형성해 차단함으로써 야당의원들의 의장실침입에 대비했다.
이들 경찰은 백 의장이 무사히 의장실로 들어가 의장실 출입문 4개가 모두 안으로부터 잠기자 조장인 듯한 사람의 『이제 지하실로 이동하라』는 구령에 따라 퇴각.

<야의원들 "무효다" 흥분>
이렇게 징계동의안의 법사위회부가 전격 처리되자 신민당의원들은 일제히 『불법 날치기다』『무효다』고 고함을 치며 흥분.
박찬 의원은 『속기사조차 못 들었으면 무효다. 자기 이불속에서 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고함.
김영배 부총무는 발언대 밑의 속기사들에게 말려가 『의장이 무슨 소리를 했느냐』고 묻고 『아무소리를 못 들었다』고 하자 속기사의 이름을 적기도 했다.
황낙주 총무가 『모두 법사위로 가자』고 해 야당의원들이 일제히 본회의장 밖을 빠져나갔으나 곧이어 『법사위도 통과했다』는 소리를 듣자 다시 본회의장으로 몰려와 의원총회를 열자고 울분을 터뜨렸다.
시종 의석을 떠나지 않고 있던 김영삼 총재는 『관계없어. 어차피 해치울걸』이라며 흥분하는 의원들을 오히려 만류하는 여유를 보였다.
여야의원들이 법사위쪽으로 몰려가 텅 빈 본회의장엔 양일동 통일당총재가 침통한 표정으로 손을 모으고 앉아 자리를 떠나지 않았고 정재원 임시대변인은 즉석에서 비난성명서를 작성.

<사복형사 2백여명 배치>
이에 앞서 백두진 의장은 1시쯤 최영희 유정회총무, 서상린 법사위원장, 전부일 유정회부총무 등에게 여당측 행동개시 최후전략을 통고 받고 1시10분쯤 「토스트」를 방으로 시켜 점심을 들었다.
백 의장이 점심식사를 하는 도중 전재구 의장비서실장은 복도에 나와 시경경비과장 반용호 총경에게 행동지침을 시달.
경찰은 즉각 2백여명의 사복경찰들을 7인 l조로 편성해 요소요소에 배치.
경찰의 배치가 끝났다는 전갈을 받은 백 의장은 즉각 국회경호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본회의장으로 입장했던 것.
백 의장이 의장실을 나오기 직전까지도 전 실장은 『지금 행동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아니다. 몇 번 더 시도해보고 하겠다』고 위장했고 최영희 유정회총무도 『좀더 보고하자』고 말하는 등 연막전술로 일관.
한편 때를 같이해 본회의장에서는 공화당의 법사위소속인 오유방 대변인이 같은 위원회의 김수 의원을 박준규 당의장서리, 구태회 정책위의장이 앉은 좌석으로 데리고 와 머리를 맞대고 얘기하는 식으로 법사위작전을 사전지시.

<일 끝난 뒤에나 다시 만나자>
신민당의원들은 징계안이 법사위까지 전격 통과된 뒤 『신민당의원들은 지금부터 본회의장에서 무기한 농성에 들어간다』는 황 총무의 지시로 여당석이 텅빈 본회의장에서 허탈하게 앉아 대기.
그러나 당사자인 김 총재는 2층 의원식당에서 김재광 이용희 의원과 함께 「하이라이스」로 점심을 먹으며 수없이 터지는 「카메라맨」들의 「플래시」에 미소를 약간 머금은 잔잔한
「포즈」를 취했다. 그는 『무언가 한마디를 하라』는 기자들 요청에 『정재원대변인이 성명을 발표할 것』이라고 했다가 『한마디로 전 국민이 불쌍하다』며 『69년 초선세례를 받은 이후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만도 하나님에게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김 총재는 『여당이 오늘 다 처리할 모양이니 일이 끝난 뒤에나 다시 만나자』며 『혼자 있을 시간을 내달라』고 보도진들에게 물러가 있기를 요청.

<점심하러 가는체 법사위로>
전격적으로 본회의에서 법사위회부가 결정된 직후 여당의원들도 점심을 하러 가는체하며 본회의장을 나와 3층의 법사위로 통하는 복도를 가로막아 야당의 기습에 대비해 「바리케이트」를 쳤다.
하오 1시 22분 꼭 걸어 잠근 회의실에서 방망이소리가 세차례 울리면서 『끝났다』는 소리가 들리자 여당의원들은 「바리케이드」를 풀고 의원식당으로 몰려들었다.
이때 최형우·김동영·김종기·김형광 의원이 달려왔으나 이미 상황은 끝난 직후.
최 의원은 서상린 법사위원장에게 『이 역사를 두려워 할 줄 모르는 ×아』하며 실랑이를 벌였고 한병심 김동영 의원 등은 텅 빈 회의실에 들어가 『국회를 어떻게 하려고 하느냐』며 처절한 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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