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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양선희의 시시각각

박 대통령과 펑 여사의 패션대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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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희
양선희 기자 중앙일보
양선희
논설위원

파워 드레싱(Power dressing). 정치인의 옷입기를 통해 그의 성향과 정치적 메시지를 읽으려는 이 현상에 불을 붙인 건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로 거슬러 올라간다. 세계 수퍼파워 국가에서 여성 총리가 탄생하자 옷입기까지 들춰보며 호들갑을 떨면서다. 그의 옷차림은 실크 블라우스와 치마정장에 핸드백 대신 검정색 서류 가방을 든 정도였다. 실용적이었다. 하나 호사가들은 서류 가방은 자기 주장이 강한 그의 성향을, 푸른색 계열 정장은 뼛속까지 보수당인 그의 정체성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물론 이런 극성 덕분에 여성정치인의 전형적인 ‘파워수트’의 장르가 구축되기도 했다.

 이후 여성 정치인들의 옷차림은 노골적인 ‘탐구’ 대상이 됐다. 미국의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이 브로치를 바꿔 달면 언론들은 브로치와 외교적 현안을 엮어 ‘믿거나 말거나’ 식의 해석을 하곤 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여성적 디테일이라곤 없는 무난한 바지정장만 입는데도 디자인에 담긴 통치 철학을 추론하기도 한다. 한동안 우리 언론도 박근혜 대통령의 옷에 대한 종잡을 수 없는 의미를 분석하는 보도를 쏟아냈다. ‘여성은 옷으로 말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정말 많은 모양이다.

 퍼스트 레이디 패션이 각광받기 시작한 건 미국 재클린 케네디부터다. 그는 부유한 시아버지의 후원으로 올레그 카시니라는 전속 디자이너를 두고, 남편을 빛내 주는 패션 아이콘 역할을 했다. 이후 영부인들은 패션 전도사 역할까지 주문받았다. 특히 서구의 영부인들은 패션 산업과 연계되며 자국 디자이너와 패션산업 수준을 알리는 상업적 기대까지 받는다. 서구에선 이런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히며 영부인 패션 분석은 언론의 한 장르가 됐다.

 지난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펑리위안 여사가 방문했을 때 펑 여사를 둘러싼 주요 뉴스는 패션이었다. 흰옷은 백의 민족을 상징하며, 초록색 브로치는 화합의 의미라고 했다. 한데 만일 붉은색 옷을 입었다면 열렬한 우호를, 핑크색 옷을 입었다면 한·중 밀월시대를 상징한다고 해석했을 거다. 옷에 관한 한 어떤 해석도 가능하다. 이 말은 결국 옷은 아무 뜻도 없을 수 있다는 얘기도 된다.

 펑 여사와 박 대통령 혹은 조윤선 정무수석의 패션대결. 일부 언론은 이런 주제로 열을 올렸다. 한데 나랏일에 바쁜 대통령과 정무수석이 왜 중국 퍼스트 레이디와 패션대결을 해야 하나? 특히 펑 여사 의전을 맡았던 조 수석의 옷차림은 그저 의전적일 뿐 패션이랄 것도 없는데 무슨 대결까지 한단 말인가. 여성 정치인의 파워드레싱과 퍼스트 레이디의 옷입기는 애초 용도도 분석 내용도 다르다. 한데 여성은 대통령이라도 옷자랑이나 하고 남의 부인과 옷으로 경쟁한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남의 옷입기에 이러쿵저러쿵하는 건 서구적 관습이다. 서구 고전소설을 보면 사교계 여성들은 늘 남의 옷을 놓고 수다를 떤다. 누가 파리에서 옷과 모자를 맞췄다거나 옷감이 어떻다는 둥. 이들은 남을 조롱하거나 치켜세우는 등의 소재로 그 집안 여성들의 옷을 가지고 뒷담화를 즐겼다. 옷의 담론에 관한 한 그들은 상당한 내공이 있다. 여성 정치인 패션에 대한 담론도 이런 문화적 배경이 작용했을 거다. 게다가 최근 정치인과 그 부인들의 옷으로 법석을 떠는 나라들은 모두 패션 강국들이다. 그들은 이를 산업과 절묘하게 결합해 홍보효과를 올린다.

 우리나라는 옷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걸 금기시하는 문화가 있어 패션담론에는 약하다. 물론 그렇더라도 지금 세계화 시대에 발맞추고, 우리 패션산업 수준을 끌어올리고 세상에 알리려면 패션 담론은 필요하다. 사람들은 패션 자체보다도 스토리에 매료되는 경향이 있으므로 더 발전시킬 필요도 있다. 한데 공감받는 담론을 하려면 먼저 안목과 내공이 있어야 한다. 단지 여성 정치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애매한 패션에 중언부언하며 무리하게 엮는 건 시쳇말로 ‘안습’이다.

양선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