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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의 전시] 키친-20세기 부엌과 디자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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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문화의 기능주의와 실용주의 디자인을 대표하는 프랑크푸르트 부엌(1926). 붙박이 싱크대와 찬장을 갖춘 요즘 부엌의 효시다. [사진 금호미술관]

오늘날 부엌의 역사는 192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스트리아 여성 건축가 마르가레테 쉬테-리호츠키(1897∼2000)는 이 시기 프랑크푸르트 신축 주택을 위해 대량 생산이 가능하고 설비를 표준화한 부엌을 선보였다. 6.5㎡(약 2평)라는 작은 공간에 모든 걸 갖춘 일체형 부엌이었다. 동선이 짧아 효율성을 높일 수 있었고, 청소할 필요가 없도록 수납장을 천장과 바닥에 붙여버린 것도 획기적 시도였다. 냄비 건조대는 바닥을 살짝 기울여 물기가 빠지도록 했고, 알루미늄 양념통에는 내용물의 이름과 눈금을 표시했다. 싱크대 겉면은 ‘파리가 가장 싫어하는 색’을 연구해, 푸르스름한 회색으로 칠했다.

  프랑크푸르트 키친은 이후 4년간 1만 가구에 설치됐다. 저가의 효율적 부엌 설비가 국가 정책으로 표준화하면서 급속히 확산한 거다. 중산층 주부가 가사를 본격적으로 도맡기 시작한 때와 맞물렸다. 부엌에서 하는 일이 ‘노동’으로 인정되는, 디자인이 만든 가정 내 문화혁명이라 할 수 있다. 스물 아홉 나이에 오늘날까지 이어진 시스템 키친의 효시인 프랑크푸르트 키친을 디자인한 쉬테-리호츠키의 삶은 파란만장했다. 나치 저항 운동을 했고, 오스트리아 공산당에서 활동하다 체포돼 감옥에 수감되기도 했다. 전쟁이 끝난 뒤엔 오스트리아에서 여성과 어린이를 위한 건축을 했다.

  지난 한 세기 부엌 디자인의 변천사를 조명하는 전시 ‘키친-20세기 부엌과 디자인’전이 서울 사간동 금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프랑크푸르트 키친부터 수납 공간을 일정 크기로 규격화한 독일 포겐폴사의 리폼 키친(1930년대), 항공기 디자인에서 영감을 받아 모서리를 곡선으로 처리한 미국의 룩 키친, 이탈리아 건축가 조엘 콜롬보의 바퀴 달린 이동식 부엌 미니 키친(1963), 1990년대 불탑(Bulthaup)사의 시스템20까지 부엌 역사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 서구 오리지널 부엌 13점 등을 소개한다. 전시용이 아니라 과거 누군가 직접 사용했던 것들이다. 그릇·가전 등 주방용품 400여점도 함께 볼 수 있다. 당초 지난달 29일까지였지만 8월 17일까지 연장했다. 02-720-5114.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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