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맛대맛 라이벌] (19) 삼계탕 - 여름 대표 보양식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10면

다음 주 금요일(18일)은 삼복(三伏) 중 처음 찾아오는 초복(初伏)입니다. 삼복은 가장 더운 시기로 예부터 식욕이 떨어지는 것을 보충하기 위해 육식을 했다고 합니다. 특히 생닭에 찹쌀·인삼·대추 등을 넣은 삼계탕은 남녀노소가 즐기는 대표적인 여름 보양식이지요. 江南通新 독자가 뽑은 최고의 삼계탕집 두 곳을 소개합니다. 한 집은 호두·잣 등 견과류로 국물을 내고, 다른 한 집은 닭발과 생강·당귀 등을 넣어 육수를 냅니다. 두 곳 모두 주인장의 주관과 소신이 뚜렷하다는 공통점이 있네요.

32년 연속 성장의 비결? 대기업도 울고 갈 마케팅 감각 때문이라오

“율무·호박씨·해바라기씨 등 견과류 많이 넣어 구수한 국물
일본항공 책자에 소개돼 1980년대부터 외국인 관광객 바글
고 노무현 대통령, 기업 총수들과 다녀간 집으로도 유명”

1 토속촌에선 호두·잣·율무·호박씨·해바라기씨 등 견과류를 많이 넣어 육수가 걸쭉하다.

하루 팔리는 닭 2000여 마리. 한옥 7채에 좌석 300여개. 여름철 직원 수 80여명.

 토속촌의 규모와 인기를 가늠할 수 있는 숫자들이다. 2003년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국내 주요 기업 총수들과 식사한 집으로도 유명한 이 곳은 한국인은 물론 한국을 찾는 외국인도 한번쯤 들르는 맛집이다. 주말 뿐 아니라 평일에도 토속촌에서 식사를 마친 관광객이 사진찍는 풍경을 흔히 볼 수 있다.

 하지만 토속촌의 시작은 지금의 북적거림과는 달리 아주 조용했다.

 “마치 독도 같았어요. 인적 없는 그야말로 외로운 곳. 주변에 사람이 살고는 있었는데 왕래는 거의 없었어요. 지금은 잘 알고 지내는 한 지인이 당시에 ‘저 가게는 얼마나 갈까’라고 생각했다네요.”

2 토속촌은 한옥 7채가 이어져 있다. 미로같은 통로를 따라 곳곳이 100인석 큰 방부터 10인석 작은 방까지 모두 11개의 공간으로 나눠져 있다. 3 토속촌 입구.

 정명호(67) 사장은 1983년 토속촌이 처음 문을 열 때를 이렇게 기억했다. 원래 가게 자리는 지금 식당에서 경복궁쪽으로 길 건너, 그러니까 현재 섬마을횟집 자리에 있었다. 당시에는 자하문 터널도, 지하철역도 없어 이 길에 오가는 사람이 거의 없었단다. 테이블 18개 놓고 시작했다.

 “식당을 하기 전 한의사 고용해서 한의원을 운영했거든요. 당시 녹용을 많이들 먹었는데 가격이 비싸니까 몸에 좋다는 걸 알아도 아무나 다 먹을 순 없잖아요. 그래서 더 많은 사람이 싼값에 건강을 챙길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하다가 보신음식인 삼계탕을 팔기로 결심한 거죠.”

 제대로 된 삼계탕을 팔려고 그는 식당 열기 전 3개월 동안 본격적인 연구를 했다. 본인이 한의사는 아니고 전문경영인일 뿐이었지만 그래도 한의원 운영 경험이 있는 만큼 몸에 좋다는 약재 정보는 다 알기에 그걸 전부 넣어봤다고 한다. 사슴뿔인 녹각, 낙엽교목의 하나로 약재로 많이 쓰이는 두충, 구기자·엄나무·오미자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당시 연구용으로 닭 200여 마리를 썼다.

 “몸에 좋아야 하지만 음식이란 게 궁합도 중요하더라고요. 처음엔 녹각을 많이 썼는데 옛 문헌을 찾아보니 닭과 궁합이 안 맞는다고 해서 못 썼지요. 전복도 마찬가지고.”

 그러다 발견한 게 견과류다. 토속촌 삼계탕엔 견과류가 많이 들어가서 국물이 걸쭉하고 구수하다. 밤은 기본이고 율무·호박씨·해바라기씨·호두·들깨 등을 넣는다.

 그는 “견과류도 처음엔 그냥 무작정 넣었는데 적정 비율 등 비법이 생기더라”며 “율무는 너무 많이 넣으면 아린 맛이 나고 호두 역시 생으로 넣으면 떫기 때문에 살짝 데쳐 넣어야 한다”고 말했다.

 맛도 맛이지만 지금의 토속촌을 있게 한 결정적인 요인은 정 사장의 남다른 마케팅 감각이었다. 한의원 운영 전 한약재를 취급하는 무역업에 종사했던 그는 자신의 인맥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일본 여행객을 대상으로 토속촌을 홍보했다.

 “일본 쪽에 원래 아는 사람이 많았어요. 그 사람들한테 한국에 여행올 때 꼭 찾아달라고 했죠. 그러다 1980년대 중반쯤 운 좋게 일본항공 기내 안내책자에 우리집이 소개된 거예요. 그러면서 관광객들이 참 많이 왔죠.”

 국내 손님도 마냥 앉아서 기다리지 않았다. 언제나 틈만 나면 홍보했다. 지인 몇 명이 포장마차에서 술 마시고 있다는 말만 들어도 직접 찾아가 홍보했을 정도다. 94년 지금 자리로 이전했을 땐 8개월 동안이나 본인과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해서 거리에서 이전 사실을 알리는 안내를 하기도 했다. 가게가 큰 도로변에서 골목으로 살짝 들어가 못 찾는 손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장사 감각을 읽을 수 있는 일화가 있다. 어느날 손님이 화가 잔뜩 나서 주인을 불렀다. 삼계탕 안에 인삼이 없다는 거다.

 “확인해 보니 정말 없더라고요. 있을 수 없는 일이죠. 그냥 ‘죄송하다’고만 해서 될 일이 아닌 거죠. 그 자리에서 ‘축하한다, 복권에 당첨됐다’고 했죠. 한번도 이런 적이 없는데, 이렇게 드문 일이 발생했으니 복권 당첨이나 마찬가지라고. 그러면서 삼 중에서 가장 큰 것 10개를 골라 꿀하고 같이 줬어죠. 처음에 화 내던 손님도 재밌어하더니 그 이후에 단골이 됐어요.”

 이런 노력 덕분에 토속촌은 32년 전 문을 연 이래로 단 한번도 빠짐없이 매년 매출이 늘었다고 한다. 조류독감이나 경기 불황도 토속촌만은 비켜간 셈이다. 정 사장은 그 비결을 “매장이 딱 하나밖에 없어서”라고 말한다.

 “사람이 너무 욕심을 부리면 안돼요. 관리할 수 없는 환경을 만들면 반드시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죠.”

 다른 유명 맛집이 그렇듯 토속촌 역시 분점이나 프랜차이즈 사업 제안을 끊임없이 받는다. 심지어 해외에서도 큰 관심을 보인다. 하지만 한 곳에서 희소성의 가치를 지키고 싶어 그런 제안을 다 거절했다. 그러다 보니 웃지 못할 일도 많이 일어난다.

 “올 초 한 손님이 싱가포르에 분점을 냈냐고 묻더라고요. 싱가포르에 토속촌이 생겼다면서. 알아보니 어떤 사람이 우리 집안 친척이라면서 가게를 냈더라고요. 가게에 길게 줄 선 사진까지 걸어놓고. 토속촌 상호는 미국과 아시아 몇 개국 등 해외에 상표등록이 다 돼 있거든요. 그래서 변호사 통해 그 사실을 알려주고 간판을 내리게 했죠.”

 정치인·연예인·기업인 등 각계각층 인사가 다들 오지만 정 사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 기억이 많이 난다고 했다.

 “노 전 대통령이 기업 총수들이랑 같이 식사하던 2003년이 아직도 기억나요. 한국 사회의 핵심 인물이 다 모인 자리잖아요. 다른 손님 받지 말라고 요구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냥 정상적으로 영업하라고 하더라고요. 노 전 대통령은 식사하고 나가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줄 서 있던 손님이 안고 있던 아이를 ‘안아봐도 되겠냐’고 하더니 ‘사진 한번 찍을까요’ 이러더라고요.”

 이제 가게는 아들 성훈씨가 물려받아 운영하고 있지만 정 사장은 아직도 시간날 때마다 가게를 둘러본다. 그러다 손님상에 음식이 조금이라도 남겨져 있으면 주방에 가 맛을 확인한다.

 “우리 삼계탕에 대한 자부심이 있어요. 토속촌만의 삼계탕을 개발했거든요. 가격이 비싸다는 사람도 있지만 재료가 다 최고급이에요. 인삼만 해도 다른 곳에 비해 단가가 2배 정도 비싸요. 다른 가게들도 무조건 남을 모방하거나 비난하기보다 자기만의 음식을 개발하면 좋겠어요. 돈 많이 버는 게 성공이라고 생각 안 해요. 자기만의 길을 개척해야 성공한 거죠.”

‘어머니’ 비법 그대로 이었죠, 조미료만 빼고

“한동네서 세탁소 하던 이웃사촌 인연으로 인수
20~30일 속성 닭 대신 50일 키운 웅추(수탉)만 써 쫄깃
육수는 닭발·당귀·생강·6시간 끓여”

강원정은 380~400g 나가는 웅추만 사용한다. 일반닭보다 끓이는 시간이 2~3배 더 들지만 육질이 더 쫄깃하고 맛있다.

“우리집을 취재한다고요. 우리집이 그럴만한가. 그냥 조그만 식당인데.”

 강원정을 취재하고 싶다고 하자 함호식(55) 사장이 내뱉은 첫마디다. 많고 많은 삼계탕집 중에서 신문에 맛집으로 나갈 만큼 유명하지 않다는 겸손의 표현이었다. 정작 만나보니 음식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했다.

 “36년 된 집이에요. 주위에 이렇게 오래 장사하는 집은 없죠.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 지 모르지만 난 이 동네에서 먹을 만한 음식점은 우리 집 하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창호지 발린 미닫이문·다락방·문지방…. 강원정은 100년 넘은 고택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아침부터 닭을 손질하고 삶느라 땀을 뻘뻘 흘리던 함 사장은 인터뷰를 요청받고는 “식당 역사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먼저 말했다.

 “1978년에 강경순(86) 할머니가 당신 친아들이랑 같이 장사를 시작했어요. 난 그 가게 앞에서 세탁소를 하고 있었구요. 혈연지간은 아니었지만 이웃사촌 인연으로 강원정을 자주 드나들며 전기·수도 등 집수리 해주며 가깝게 지냈죠.”

 바쁠 때는 함 사장이 대신 전화를 받아주기도 했다. 강 할머니는 그런 그를 큰아들이라 불렀고, 함 사장도 강 할머니를 어머니라고 부르며 따랐다. 식당을 드나들던 손님도 다들 함 사장을 강 할머니의 큰아들처럼 대했다.

 “어느날 어머니 말이 친아들이 식당 물려받기를 포기했다는 거예요. 비록 당시엔 세탁업을 하고 있었지만 평소 식당을 하고 싶다는 꿈이 있어서 내가 한번 맡아보겠다고 했죠. 워낙 가깝게 지내다 보니 어머니도 저에게 흔쾌히 비법을 전수해 줬구요. 아내와 함께 6개월 동안 본격적으로 일을 배운 뒤 2002년 인수했어요. 우연처럼 보이지만 한편으론 필연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북출신 어머니가 강원도 홍천에서 잠깐 살았던 인연으로 상호를 강원정이라고 지었는데, 저 역시 고향이 강원도거든요.”

 주인은 바뀌었지만 손님들은 가게에서 늘 보던 남자가 계속 장사를 하자 그저 대를 이었다고 생각했다.

평소 관심이 있었다해도 20여년 동안 세탁업만 하던 사람이 갑자기 삼계탕을 팔겠다고 나선 건 온 나라를 위기로 내몰았던 경제난이 결정적이었다.

 “21살 때부터 세탁 기술을 배워서 일을 쭉 해왔는데 1998년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세탁소 하기가 어려워졌어요. 전국 세탁소가 붕괴하기 시작한 거예요. 당시 명예퇴직한 사람들이 만든 체인형 빨래방이 우후죽순 생겨났거든요. 3개월 버티다가 도저히 안되서 정장 한 벌에 7000원 하던 세탁비를 5000원까지 내렸는데도 어려웠죠. 그때 얻은 빚만 1억원이 넘을 정도였어요.”

 세탁업으로 돈 벌기가 쉽지 않다는 이유 외에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세탁소는 옷 세탁에서 일이 끝나지 않는다. 옷감이 상하거나 분실되는 일이 발생해 손님과 늘 분쟁이 생길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또 옷을 금방 찾아가지 않으면 며칠이고 계속 신경을 써야 했다. 보관하는 동안 구김이 생기지 않게 수시로 다려야 하고 옷감이 상하지 않게 관리를 해야 했다. 하지만 식당은 손님이 음식 맛을 보는 순간 모든 게 끝났다.

 함 사장은 “음식을 먹고는 맛 없다고 다시 안 올지언정 뭔가 해결되지 않아 일이 하루이틀 계속 늘어지지는 않는다”며 “게다가 음식 먹고 나가면서 ‘정말 맛있게 잘먹었다’는 한마디를 들으면 정말 신이 났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실 식당일이 처음부터 잘 굴러가진 않았다. 오히려 좌절만 안겼다. 식당을 인수한 다음해인 2003년 전국을 휩쓴 조류독감 때문이다.

 “물론 전에도 간간이 조류독감이 발생하긴 했지만 그 당시만큼 사회적 문제로 온 나리에 난리가 난 적은 없었어요. 손해가 말도 못하게 컸죠.”

 늦가을에서 초봄으로 막 접어들던 당시 손님은 하루 평균 60여 명이었다. 매일 닭 60여마리를 삶았다는 얘기다. 하지만 조류독감이 발생하자 하루 3~4마리 팔리는 게 고작이었다. 많이 팔아야 10그릇이었다. 준비해둔 나머지 재료는 모두 버릴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경험이 없었던 거죠. 장사가 안되면 준비하는 닭을 좀 줄여야 했는데 매일같이 ‘내일은 달라지겠지’라는 생각을 계속 하면서 똑같이 60마리씩 삶은 거예요. 닭을 버리면서 다른 사람이 볼까봐 창피했죠. 맛 없는 식당이라 그런다고 흉볼까봐.”

 장사가 안돼 직원들이 스스로 그만둘 정도였지만 강원정은 이제 예약이 밀려 손님을 더 받을 수 없을 정도로 달라졌다. 함 사장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는 닭을 오전과 오후, 하루에 두번 나눠 삶는다. 오후에 가게를 찾는 손님에게도 금방 삶은 최상의 고기맛을 느끼게 하고 싶어서다. 또 오후 2시30분부터 3시간 동안은 가게문을 닫고 쉰다. 전화도 아예 안받는다. 이 시간에 전화를 걸어보면 ‘쉬는 시간’이란 자동응답 메시지만 흘러나온다.

 “간혹 ‘배 불렀다’고 욕하는 사람도 있는데 다 이유가 있어요. 우린 매일 새벽 6시반부터 나와서 준비를 하거든요. 중간에 쉬면서 잠을 좀 자야 손님한테 더 친절할 수 있어요. 내가 아무리 주인이라도 피곤하면 표정부터 굳어서 아무래도 친절하기가 힘들거든요. 처음엔 그냥 무조건 많이 일하는 게 좋은 줄로만 알고 일요일도 없이 했는데, 좀 해보니 결코 좋은 게 아니더군요. 이젠 손님들도 익숙해져서 다 이해를 해줘요.”

 삼계탕에 들어가는 닭은 철저하게 웅추(부화한 지 50~55일 정도 된 수탉)만 쓴다. 보통 삼계탕집에서 많이 쓰는 20~30일만에 속성으로 키운 일반 닭에 비해 육질이 탄탄해 삶는 시간도 더 길다. 일반 닭 삶을 때보다 2~3배가량인 1시간 30여 분을 삶지만 확실히 살이 더 쫄깃하고 맛이 있단다. 육수는 고심 끝에 강 할머니가 알려준 비법에서 한 단계 더 발전시켰다.

 “원래 닭발과 생강·당귀 등으로 육수를 내는데 초창기엔 조미료가 조금씩 들어갔어요. 조미료 없이 맛을 낼 수는 없을까를 고민하다가 닭발과 당귀 양을 늘려서 국물을 더 진하게 만들기로 했죠. 닭 60마리를 삶는다고 하면 닭발을 약 30kg 넣어요. 이걸 6~7시간 푹 끓이죠. 손님 중에 ‘기왕 닭발을 삶으니 그걸 메뉴로 개발하라’는 사람도 있는데 뭘 모르는 소리에요. 6시간 푹 끓이면 거의 죽처럼 흐물흐물해져서 음식으로 만들수가 없어요.”

 조금 더 얘기를 하고 싶었지만 오전 11시가 되기도 전에 전화가 빗발치며 점심 예약이 꽉 차자 함 사장은 손님을 맞을 준비로 바삐 몸을 움직였다. 다른 여느 날처럼.

글=심영주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