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의 언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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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영어에「토디이즘」(toadyisn)이라는 말이 있다. 비굴하게 아첨 잘하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강자에게 매달려 살려는, 이를테면 종복의식.
이 말이 원래 「두꺼비」라는 말에서 비롯된 것을 보면 사못 경멸조의 협오감이 함축되어있다.
아무리 대영제국인일지라도 자신에게 아첨하며 매달리는 사람은 멸시하는 것 같다.
한자로는 그런 경우를 「사대」라고 한다. 맹자가 처음 쓴 말이다.
유지자위능이소사대.
지자만이 작은 나라로서 큰 나라를 섬기어 낼 수 있다는 뜻이다.
약육강식이 저항하던 봉건시대엔 사대가 미덕이었다. 맹자는 월왕 구천의 예를 들었다. 그는 한 때 오나라에 굽히고 오왕의 말고삐까지 잡았었다. 그러나 구천은 지자였다. 끝내는 오를 무찌르고 말았다.
무대를 바꾸어 19세기 한말의 석황을 본다. 청의 세를 업고 정권을 잡은 민씨일파의 이른바 사대교에 대항한 개화당파가 있었다. 이들은 일본을 배경으로 수구세력읕 밀어낼 음모를 꾸몄다.
그러나 일본은 석황를 관망하며 한때 우유부단한 태도를 보였다. 개화당파는 그런 일본의일관성 없는 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그대들의 까닭없는 의심으로 우리의 큰 계획이 모두 무너졌다』고 불평했다. 「큰 계획」이란 변란의 음모를 뜻한다.
그 후 어느쪽의 사대도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말았다 .오히려 대국들의 야욕만 북돋워 주었다. 정쟁은 더욱 격화하고 난도살육이 자행되고, 그야말로「풍운의 한말사」가 연출되었다.
열강들은 이틈에서 발호했다. 혼란은 민난을 부르고. 마침내는 일본의 현점을 자초하고 말았다.
사대주의는 주권의 상실과 민족의 비척과 암울한 역사, 그것으로 끝났다.
새 시대는 다시 열려 우리는 건국을 맞았다. 그 혼돈속에서도 한가지 인상적인 것은 어느 위정자도 외세에 섣불리 기대려하지 않은 일이다. 자유당정권에 정면으로 도전했던 조병옥박사의 인품이 생각난다. 그는 적어도 외국인 앞에서는 우리 자신을 헐뜯는 말은 삼갔다.
그것이 오히려 자신의 품격을 높이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요즘 세인의 시비가 되고 있는 미국의 한 신문에 실린 우리의 정황에 관한 기사는 그 맥락이야 어찌되었든 사대주의라는 여운을 풍긴다면 당사자로는 실언을 한 셈이다.
지도자는 마땅히 한마디 말, 한가지 거동에서도 세련된 자세를 잃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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