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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천년 전 모습 되찾을 신라의 대가람-충남 보령군「빗내리」마을의 성주사 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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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노송이 울울창창한 모란꽃 산세에 감싸인 폐허의 옛 절터는 천년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부처님의 자비광명을 번뜩인다. 충남 보령군 암산면 성주리「빗내리」마을의 성주사지.

<호남불교의 본거지>
신라의 대가람이었던 성주사 절터는 아무도 돌보고 가꾸는 사람이 없지만 국보8호인「낭혜화상백월손광탑비」를 비롯, 보물로 지정된 3개의 석탑 등 귀중한 문화재가 옛 조상들의 얼을 빛내주고 있다.
성주사는 신라 헌강왕 7년 (AD890년) 태종무열왕의 8대손인 무염국사가 창건한 절로 신라말 구산비문의 하나인 명찰이었다. 이 절터에는 원래 성주사가 창건되기 3백년 앞서 백제왕실이 구국법사들을 위한 제사를 올리던 왕사인 오함사가 있었다.
임진왜란 때 왜병에 의해 한줌의 재가 돼버리기 전까지 성주사는 호남불교의 본거지로 이름을 떨친 대가람이었다. 우선 가람의 크기부터가 어마어마했다.
기록에 따르면 대소 30여동의 건물추녀가 연 10리를 이었고 상주하는 스님이 2천5백여명 이었다고 한다. 삼천불전 (9간) 해장전 (9간) 대나전 (3간) 차면전 (3간) 권음전(3간) 향적전 (D간) 십왕전 (7간) 을 비롯해 종각 수각·정각 등의 크고 작은 불사들이 늘어섰던 그 옛날 성주사 앞의 성주천은 절간의 쌀 씻는 물로 늘 백수가 돼 흘렀다는 것이다.
이제 폐허 속에 간신히 이름만을 되새기는 성주사지이긴 하지만 백제와 신라 두나라 불교가 접합했던 명찰답게 절터경내에는 훌륭한 문화재가 많이 남아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신라 말의 대문장가 최치원이 비문 글을 짓고 그의 종제 최인곤이 글씨 (구양순체) 를 쓴 무염국사탑비-.
불명이 낭혜화상이고 진성여왕으로부터 받은 사호가 백월손광이었던 무염국사의 생애 및 불덕을 칭송한 이 탑비는 그 크기 (높이4.5m, 폭2.52m, 두께1.57m) 와 비신을 받친 귀부의 조각솜씨가 국내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대단하다.
거의 마멸이 없이 보존된 비문의 진가와 함께 거북대석의 머리에 양각된 48개의 용두조각솜씨는 그 정교함과 조화미를 한껏 발휘했고 중국 육조시대 병?체의 비문문장은 일반한문 해석법과는 다른 독특한 명문임을 자랑하고있다. 이 비는 전주 숭복사비문, 쌍계사 원감국사비문, 문경 봉암사 지등국사비문과 함께 현존하는 최치원의 사산비로서도 유명하다.

<무염국사탑비에 눈길>
불행한 일은 대석거북의 머리가 왜병의 돌칼에 잘려나간 채 아직까지 못 찾고 있다는 점이다. 전설에 따르면 성주사가 불탄 것도 이 비석의 영험 때문이었는데, 왜란 때 왜병의 군량미가 하늘을 날아 이 비석의 귀부로 들어가 없어져버리자 화가 난 왜병들이 거북이 머리를 자르고 귀부는 땅속에 묻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귀부는 74년 문공부가 탑비를 복원할 때 발견돼 제자리를 찾자 이를 감사하는 듯 사흘 밤낮을 울었다고 한다.
이밖의 4각형 5층석탑 (보물19호·높이9 m·폭2.8 m) 과 각각 보물19,20호인 높이6.8m, 폭2.3m의 2개 석탑 및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동삼층석탑·석등·사지·석계단 등도 옛 성주사의 후광을 빛내주는 귀중한 문화재들이다.
성주사지는 임란 때 소실된 이후 4백여년간 거의 방치돼온 채 주민들이 밭을 일구어 문화재들을 황폐화 해버렸다. 지난 74년 동국대 박물관이 절터일부를 발굴, 삼천불전의 돌계단을 발견한데 이어 문화재관리국이 국보와 보물들을 간이 정화한 외에는 아직까지 폐허상태로 버려져왔다.

<74년에 절터 일부 발굴>
최근에서야 정부당국의 백제문화권 개발계획과 함께 공주 마곡사의 황진경 스님을 중심한 대천지방 불자들이 구성한 성주사복원회, 보령군청 등이 우선 절터정화를 서두르고 있다.
백제권 개발의 기본계획을 수립중인 청와대 실무진과 용역을 맡은 대림「엔지니어링」이 지난달 성주사지를 직접 답사함으로써 이 지역 주민들의 기대는 한층 부풀기 시작했다.
성주사지는 이제 문화재당국의 철저한 발굴조사와 관·민의 적극적인 개발로 천년의 폐허를 벗고 귀중한 유적지로 크게 각광을 받게 될 것 같다. <글-이은윤 기자, 사진-최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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