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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는 태평양 격전지로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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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오세아니아 순방에 나선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왼쪽 앞)가 7일 뉴질랜드 오클랜드시 정부 청사에서 원주민인 마오리족 전사의 의식에 응하고 있다. 방문자가 왔을 때 치르는 것으로 그가 선의로 찾아왔다면 전사가 던진 나뭇가지를 주워 돌려줘야 한다. [오클랜드 신화=뉴시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거침없는 ‘우향우 안보 외교’가 가속화하고 있다.

 지난 1일 헌법해석을 변경해 집단적 자위권을 인정하기로 각의에서 의결하자마자 아베는 준동맹국인 호주가 있는 오세아니아로 달려갔다. 집단적 자위권에 대한 일본 내 반대여론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나아가 아베 정권의 안보정책에 적극적 지지의사를 보이고 있는 호주로부터 “국제사회도 아베의 ‘적극적 평화주의’ 노선을 지지하고 있다”는 ‘응원 메시지’를 얻어내려는 속셈도 깔려 있다.

 또한 일본 총리로는 29년 만에 태평양전쟁의 최대 격전지였던 파푸아뉴기니를 찾아 일본군 전몰 장병을 위령한다. 명분은 “유골수집 활동을 강화하고 평화를 다짐하기 위해서”라 한다. 하지만 일각에선 “해외에서 전쟁이 가능하게끔 평화헌법의 근간을 뜯어고치자마자 옛 군국주의의 향수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곳을 찾는 것 자체가 의구심을 자아낸다”고 지적하고 있다. 아베가 지향하는 목표가 ‘군사 대국화’에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이다.

 아베는 7일 첫 순방국인 뉴질랜드에서 존 키 뉴질랜드 총리와 정상회담을 하고 “집단적 자위권에 대한 이해를 얻었다”고 말했다. 안보 면에서도 물자 및 수송수단을 서로 융통하는 상호군수지원협정(ASCA)을 양국이 검토해 나가기로 합의했다.

 아베가 이번 순방에서 가장 공을 들인 국가는 7일 방문한 호주다. 동맹국인 미국·일본, 미국·호주의 관계를 ‘미·일·호 3각 동맹’ 체제로 사실상 승격시키고자 하는 게 일본의 노림수다.

 한·미·일 3각 동맹 체제가 역사·위안부 문제로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호주를 끌어들여 아시아 내 영향력을 확대하겠다는 의도다. 미·일·호 지역동맹의 결속을 과시하기 위해 아베는 이번 방문 시 호주의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도 참석한다. 매년 정기적인 ‘2+2 회담’(양국의 외교·국방 장관 회담)을 열고 있는 양국이 안보에 관한 한 전면적 협조를 할 것이란 과시의 성격이 강하다. 아베는 또 일본 총리로는 처음으로 호주 의회에서 연설한다.

 10일 방문하는 파푸아뉴기니에선 북부도시 웨와크에서 태평양전쟁 전몰자비에 헌화를 할 예정이다. 국내 보수층 결집을 위한 제스처다. 파푸아뉴기니에선 1943년 4월 부겐빌 상공에서 일본 연합함대의 최고통수권자이며 진주만 공격의 주역이었던 야마모토 이소로쿠(山本五十六) 사령장관이 전사하는 등 일본군 20여만 명이 전멸했다. 일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태평양전쟁 중 국외에서 사망한 일본인은 약 240만 명. 이 중 50만 명 정도가 파푸아뉴기니·솔로몬 제도(8만8600명) 등 남태평양 지역에서 숨졌다.

 당시 일제에 의해 강제 동원된 한국인이 가장 많이 희생된 나라이기도 하다.

 일본은 2004년 2월에도 아키히토(明仁) 일왕 내외가 남태평양의 격전지였던 마셜 군도, 미크로네시아 연방공화국, 팔라우 등 3개국을 방문하려다 논란이 일고 치안상 문제점 등이 제기돼 취소했다. 대신 이듬해인 2005년 6월 사이판 방문으로 대체했다. 당시 일왕은 비공식적으로 사이판 내 한국인 희생자 위령비를 찾아 헌화해 화제가 됐다. 이번 방문에서 아베는 일본인 전몰자 위령비만 찾는 것으로 알려졌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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