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방의 딜레마 … 19세 동수는 전과21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1면

전과 21범. 내 나이 만으로 열아홉에 이렇게 됐다. 나이보다 전과가 많다.

 나는 큰아버지와 큰어머니 슬하에서 자랐다. 처음엔 친부모인 줄 알았다. 아주 어려서 부모가 이혼해 큰아버지 댁에서 자라게 된 걸 8세 때 알게 됐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친아버지와 살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일이 바빠 얼굴 보기가 어려웠다. 친구들과 어울리며 학교 밖으로 맴돌았다. 중1 때 친구 7명과 함께 가출했다. 생활비가 필요했다. 한 친구가 어디선가 어느 집 열쇠를 찾았다. 빈집에 들어가 뒤지고 있는데 주인이 들어왔다. 한 명이 붙잡혔다. 결국 모두 경찰서에 갔다. 조사는 받았으나 훈방됐다. 어리니까 그랬나 보다.

 담임 선생님도 별 얘기가 없었다. “(범죄란 게) 별것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빈집털이를 하고 오토바이를 훔치고, 그저 풀려났다. 갈수록 범죄란 게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졌다. 수시로 경찰서에 드나들면서 경찰에 남은 수사기록(전과)이 점점 늘어갔다. 중3 때 절도를 했다가 처음 구속됐다. 그것도 오래가지 않았다. “기회를 주겠다”며 보호관찰 처분했다. 그 뒤에 또 절도를 하다 붙잡혔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소년원에 1년3개월 있어야 한다고 했다. 두려워 엄청 울었다.

 3개월이 지나니 적응됐다. 소년원 생활은 단순했다. 자고 일어나면 씻고 밥 먹고 컴퓨터·한자·인성교육 같은 것을 받았다. 내가 왜 이렇게 됐는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상담받고 싶었는데 그런 건 없었다. 그저 “빨리 나가고 싶다. 다시는 범죄를 저지르지 말자”는 생각만 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2011년 말 나온 뒤엔 보호관찰소에 가끔 나가 상담과 교육을 받았다. 내가 하고 싶은 건 음악이었다. 학원비가 필요해 아르바이트를 했다. 하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일하다 “내일 보호관찰소에 가야 한다”면 범죄 경력이 있는 것을 알게 된 주인이 “내일부터 오지 마라”고 했다.

 학원비를 구하려 빈집털이를 했다. 결국 실형이 떨어졌다. 징역 1년 9월을 선고받고 지난해 4월 김천교도소에 왔다. 나의 10대는 그렇게 거의 다 지나가 버렸다. 다시 올 수 없는 인생인데…. 이제 나가면 다신 안 저지를 거다. 경북 김천소년교도소에 수감 중인 김동수(가명·19)군의 이야기다. 그는 1만 명을 헤아리는 전과 5범 이상 소년범 중 하나다. 법무부에 따르면 2012년 한 해 검거된 소년범은 모두 10만7452명. 그해 세종시 인구(약 10만3000명)보다 많고, 위례 신도시 수용 인구(10만8000명)와 비슷한 숫자다. 이 중 9974명은 전과 5범 이상이었다. 3년 전인 2009년 6158명에 비해 62% 늘었다. 지난해에는 1만 명을 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다중전과 소년범들은 대체로 가정 해체의 피해자였다. 본지가 전국 소년교도소와 소년원·보호시설에서 만난 전과 2범 이상 소년범 28명이 대체로 그랬다. 김군은 그중 전형적 사례였다. 가정 해체를 겪으며 방황을 시작하고 범죄를 저지르게 됐다. 훈방되고선 또다시 범죄의 수렁에 빠졌다.

 부모가 있는 경우 훈방된 아이들은 바로잡힐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결손 가정 아이들은 사정이 다르다. 곁에서 바로 세워줄 보호자가 없다. 이내 다시 범죄의 늪에 빠져들면서 다중전과 소년범이 됐다. 경기대 이수정(범죄심리학) 교수는 “딱히 보호자가 없는데도 무조건 훈방 조치하는 건 가정에서 아픔을 겪은 아이들을 국가가 다시 범죄의 세상에 버리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이런 아이들을 훈방할 때는 가정의 빈자리를 채워줄 기관을 찾아줘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위성욱(팀장)·신진호·최경호·최모란·윤호진·이정봉·구혜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