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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들, 한결같이 통일과 동북아 협력 강조”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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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2호 12면

변선구 기자

이광재 전 강원지사(사진)가 지난해 중앙SUNDAY에 연재한 ‘원로에게 대한민국의 길을 묻다’ 인터뷰 시리즈를 책으로 냈다. 『대한민국 어디로 가야 하는가』(휴머니타스)란 제목의 책은 보수와 진보의 원로 42명과 이 전 지사의 대담을 담았다. 보수에선 고(故) 남덕우 전 국무총리, 김장환 목사 등이, 진보에선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 작가 조정래 등이 등장한다. 이 전 지사는 “원로들은 성향이 보수건 진보건 대한민국의 나아갈 길에 대해선 한결같았다. 국민통합과 교육개혁, 남북통일이 그것”이라고 말했다.

중앙SUNDAY ‘원로에게 길을 묻다’ 책으로 펴낸 이광재 전 강원지사

-“42명의 나이를 합산하니 3131년이었다”고 책에 적었다. 3131년의 경륜이 제시한 나라의 갈 길은 뭐였나.
“원로들은 입을 모아 ‘문명화된 대한민국’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대한문국(大韓文國)’이 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남북통일을 이뤄야 하고, 교육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하더라. 또 신자유주의를 넘어 ‘공동체 자본주의’를 추구하고, 배금주의 대신 정신과 문화의 가치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입을 모으더라. ‘뭉치면 살고 분열하면 망한다’는 주장도 공통점이었다. 바람직한 대통령상으론 ‘통일 대통령’과 ‘교육 대통령’을 제시했다.”

-교육문제 해결을 위한 원로들의 조언은.
“인간 지능의 80%는 태어나서 8세가 되기 전에 발달이 끝난다. 따라서 영유아 교육을 획기적으로 개혁해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최고 수준의 교사들이 유아교육을 책임져야 젊은이들이 안심하고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교대나 사범대 출신이 교직을 독점하는 관행을 혁파해 일반대를 나온 전문가가 교사가 될 길을 열어줘야 한다고 했다. 고교에서 문·이과 구별을 없애고 토론과 체육수업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것도 공통된 제언이었다. 그러려면 핀란드처럼 전 국민적 차원에서 교육개혁 기구를 세우고, 교육개혁에 반대하는 세력에 맞서 몇 년이 걸리든 토론을 벌여 결판을 내야 한다고 했다. 중산층 소득의 40%가 사교육에 소진돼 부모의 등골이 휘고, 아이들도 고통받는 지금의 교육 시스템으론 절대 미래가 없다고 원로들은 입을 모았다.”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성향의 원로들을 만났다.
“인류 역사상 이념 대립을 극복하고 통합한 나라는 제국을 건설했고, 분열한 나라는 패망했다. 조선사가 이를 증명한다. 국내 진보·보수 진영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서로를 실체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존재하는 건 다 이유가 있다. 상대를 현실로 받아들이고 공존해야 한다. 그러려면 서로 마음을 열고 끈기있게 토론하는 문화부터 만들어야 한다고 원로들은 지적했다.”

-진보·보수 원로들의 의견이 일치한 부분은.
“보수주의자인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가 ‘지금 한국은 삼국통일의 주역인 김유신·김춘추가 다시금 나와야 한다’며 남북통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재벌 1세대인 김우중 전 대우회장도 ‘한국의 인구가 1억이 안되면 어떻게 선진국이 되겠느냐. 남북통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그런데 진보계열 학자인 진덕규 이화여대 명예교수도 같은 얘기를 하더라. 또 보수 원조인 남덕우 전 국무총리와 진보 역사학자인 강만길 교수는 남북한과 중국·일본이 합작하는 ‘동북아 평화 개발 플랜’의 필요성을 한목소리로 강조했다. 우리 민족이 살 길은 남북통일과 동북아 협력 외에는 없다는 게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원로들의 한결같은 주장이었다.”

-원로들의 통일관은 남한 주도의 자본주의 통일론 아닌가.
“자본주의 외엔 길이 없다고 본다. 문제는 자본주의의 생산성을 높이려면 공동체적 요소를 강화하지 않을 수 없다는 거다. 즉 자본주의는 불가피하지만, 그 해악을 줄이는 모델을 찾아야 한다. 보수는 복지를, 진보는 성장을 추구하는 공동체 자본주의가 답이다. 보수진영은 그 자신이 보수주의자이면서도 사회보장 제도를 만들어 노동자의 권익을 신장시킨 독일의 철혈재상 비스마르크를 배워야 하고, 진보진영은 지지층의 반발을 무릅쓰고 노동시장을 유연화해 독일경제를 성장시킨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를 배워야 한다.”

-‘원로에게 길을 묻다’ 책의 가치는 어디에 있다고 봐야 하나.
“내가 만난 원로들은 장관이나 총리, 또는 그에 맞먹는 사회적 성취를 이룬 사람들이다. 이들이 들려주는 경험과 조언은 대한민국의 중요한 자산일뿐 아니라 요즘 세대들이 세상을 헤쳐 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누구보다 드라마틱한 삶을 살아온 원로들이 얘기하는 ‘인생이란 무엇인가’도 부록으로 실었다.”

-6·4 지방선거 결과를 어떻게 보나.
“지자체장 출신이 대통령에 오르는 시대의 서곡이라 본다. 남경필·안희정·원희룡 같은 젊은 인재들이 지자체장에 잇따라 당선 또는 재선돼 행정 능력을 평가받고, 대권에 도전할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말이나 이념이 아니라 실적으로 정치인을 평가하는 시대가 된 거다. 또 누가 옳고 그르냐에서 누가 더 똑똑하고 유능하냐로 지도자를 선택하는 시대가 됐음을 이번 선거는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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